다음 순간 경선은 갑자기 안도한다. 마지막처럼 느껴지는안나와의 작별이 지금이 처음이 아니란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시는 가족들을 볼 수 없고 결코 예전의 삶으로는 돌아갈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에 눈물이 멈추지 않던 순간. 그것은 오래전에도 겪어본 적 있었다.- P65
안나는 자신이 홀로 죽고 잊히리란 걸 알고 있었다. 살아 있는 동안 누구에게도 소중한 존재가 된 적이 없으니 죽음 또한누구도 안타깝게 만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특별히 억울함이나 서운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시간차가 있을 뿐 모든 존재는 사라지고 잊히는 운명을 피할 수 없으니까.- P69
그때 안나가 느낀 것은 아마 시간의 무자비한 일회성, 그리고 소멸의 감각인지도 모른다.- P71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을 차이로 삼을 만큼 신체가 섬세하지 않다. 시간이 흐르면서 특징이 모호해졌다거나 평가의 기준이 달라졌다는 뜻만은 아니다. 조건에 둔해진 것은 더욱 아니다. 관심의 시효가 다한 것뿐이다. 노인이라는 일반화가 너무 강력해서 개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P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