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내가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깊게 생각한 적도, 진정으로 원한 적도 없지만, 어쩌다 보니 우연히 이곳에 있다.- P179
어린 시절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원통 모양의장난감이 네모난 구멍에도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놀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처럼 우리의 기질에 맞는 자리 역시 단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일 수 있다. 때때로 우리는 완전히 다른 장소에 맞춰 들어가기 위해, 새로운 공간에 자신을 내어놓기 위해, 우리의 삶을한 바퀴 돌려보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P180
호텔 방에서는 "그 누구든"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꿈꾸는것은 섬이나 오두막이 아니라 이 땅에서 저 방으로 옮겨 다니며 매번 새로워지는 유목민의 삶이다. 장소들이 지나치게 친숙해질 때모든 의무에서 벗어나 사라지는 것 아무도 모르는 존재가 되어 이방인으로서 사는 것이다. 정체성도 과거도 없는 익명적인 존재가되기 위해서,- P183
"어떤 사유가 자리 옮김을 무시할 수 있을까? 제자리에멈춰 있는 사유만이 그럴 것이다.
그것은 사물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존재하길 바라는 사유, 감각적 세계의 다의성이 지닌 무한한 풍요로움에 대해 그리 관대하지 않은 사유일 것이다."
-J.-B. 퐁탈리스, 『그림자 횡단』- P189
들뢰즈가 일러주듯 영토는 무엇보다 소리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곳,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에서 나는 자리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나를 위한 자리를 만들며, 그것을 쟁취해 낼수 있게 된다.- P192
떠난다는 것은 다른 지평선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며, 자신의목숨을 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떠난다고 해서 지정된 자리에서의 탈출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노스탤지어에 관한 에세이에서 철학자 바바라 카생이 말하듯, "우리는 오디세우스 이래로모든 오딧세이아가 정체성 할당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고 있다."292- P196
그러나 나는 내 안에 타인을 위한 자리, 그들의 경험과 사고방식과 감정을 위한 자리를 남겨둘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베르그송이
"마음의 예의"라고 부른 것의 심원한 의미이며, 이는 상대에게 모든 자리를 내어 주는 재량이자 겸허함이다. 304 이처럼 타인의 자리에서 그의 관점을 취해 보는 것은 단순한 관대함의 제스처를 넘어선다. 우리는 멀리 있는 바깥의 존재이길 그치고 가깝게 감지할 수있게 된 타인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을 배가시키고 수천의 삶을 살수 있게 된다. 그것이 곧 나의 삶은 아니지만, 잠시나마 타인의 자리에 서서 그를 더 잘 이해하고, 지지하고, 돌볼 수 있게 된다. 내가 그 자리에 서 보았기 때문에, 혹은 보다 정확히 내가 그 자리를내면화했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일인칭으로 실험해 본 모든 자리에 그의 자리가 덧붙여지기 때문에, 그것은 나를 침범하거나 어지럽히기보다는 풍요롭게 한다. 산 사람이건 죽은 사람이건, 현실의사람이건 허구의 사람이건, 타인의 삶이 우리 안에서 제자리를 차지하면, 이러한 동일시의 과정을 통해 우리의 삶은 보다 깊이를 갖는다.- P200
그렇다면 각자에게는 하나의 적합한 자리가 있을까, 여러 자리가 교체되며 이어질까? 제자리에 있다는 느낌을 받기 위해서는행운과 끈기,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또한 그것은 어느 정도무의식적인 부분일 수 있다. 자리 게임의 체스판에는 우리가 놓치는 움직임들이 있고, 말들을 쓰러뜨리는 돌풍이, 말들을 쓸어가버리는 분노가 있다. 그러나 앞으로, 대각선으로, 혹은 뒤로 이동하는 자리 옮김이 없다면 게임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회나 갈림길이 없다면 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자리는 그 자체로 이러한 내적 운동들, 일시적인 충동, 집착의 동요와 충격을 모두 담는 곳이다.- P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