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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eil

비비추 무더기의 이곳저곳에 렌즈를 들이대면서 김장우는 어쩔 줄을 모른다. 나는 그늘에 서서 그가 일하는 모습을 구경한다.- P116
"산이 있어 편안한 거야. 도시가 아니라서 그런 거야."
그는 마치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한다.- P117
그 밤, 어디로 어떻게 달려서 집으로 돌아왔는지 나는 모른다.
대문 앞 외등에 비춰 본 내 손목시계는 아직 열시도 채 되지 않은시간이었다. 사랑의 인사를 나누었던 젊은 남자와 여자가 헤어지기에는 너무도 이른 시각이어서 나는 잠시 어이가 없었다.- P120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P122
이모가 그 높은 소프라노로 이렇게 반박하면 어머니는 쇳소리로 악을 쓰다시피 격렬하게 이모의 말을 부인했다.- P131
낯선 곳에서 낯설게 만나는 혈육은 언제라도 늘 안쓰럽게 보이는 법이었다.- P134
"엄마, 오늘 또 뽀끌래 미장원에 갔었구나! 제발 그 집에서 파마하지 말라니까 왜 또 거길 갔어요?"- P139
"공부만 한다는 아이가 언제 귀에 구멍은 세 개씩이나 뚫었누."
"구멍 하나 뚫는 데 일 초밖에 안 걸려요."- P143
그때 이모가 식탁으로 돌아오면서 아들의 둥근 머리통을 아주잠깐 정답게 쓰다듬었다. 이제 나는 괜찮아, 라는 말 대신이었다.
아들도 그런 어머니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것으로 푸른 원피스의 이모는 다시 푸른 나무로 완전 회복되는 듯이 보였다. 이모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P145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싸우는 일보다는거대한 불행 앞에서차라리 무릎을 꿇어버리는 것이훨씬 견디기 쉬운 법이다.- P148
어머니는 ‘살인‘만 인정하고 ‘미수‘는 무시해버렸다. 내가 ‘살인‘
은 무시하고 ‘미수‘만 인정한 것과는 정반대였다. 하지만 나는 애써 어머니를 설득하지 않았다. 어머니야말로 가장 흥감하게 ‘미수‘를 받아들였을 것이 분명했다. ‘미수‘가 아니었다면 어머니는쓰러져버렸을 테니까.- P152
불행의 과장법, 그것이 어머니와 내가 다른 점이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진저리를 치는 부분도 여기에 있었다. 그렇지만 어머니를 비난할 수는 없었다. 과장법까지 동원해서 강조하고 또 강조해야 하는 것이 기껏해야 불행뿐인 삶이라면 그것을 비난할 자격을가진 사람은 없다. 몸서리를 칠 수는 있지만.-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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