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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병자리님의 서재
  • 적은 아직 오지 않습니다
  • 은승완
  • 10,800원 (10%600)
  • 2012-09-28
  • : 133

<적은 아직 오지 않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바로 기다림에 대한 것이었다.

빠른 전개로 단숨에 읽히는 소설에서 느낀 정조가 한없이 느린 기다림이라니...... 그럼에도

인물들의 행위 너머, 그들의 의식 너머 무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한결같은 기다림, 혹은 갈망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장군의 죽음이 알려진 것은 정오 무렵이었다"라는 문장으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장군은 죽은 것으로 위장했을 뿐 살아남아 외딴 섬에서 은거하며 언젠가 있을 왜적의 침입을 기다린다.

성복은 점점 야인으로 변해가는 장군이 그 옛날 바다를 호령했던 장수의 모습을 되찾길 기다린다.

여진은 장군과 성복, 둘의 눈길을 기다린다.

그리고 억울하게 버려진 백성들은 오지 않을 장군이 되돌아와 자신들을 구원해주길 기다린다.

도적떼의 우두머리 춘삼마저 장군이 자신들의 우두머리가 되어주길 기다린다.

심지어 장군의 소문을 추적하는 암행어사마저 죽었던 장군이 어디엔가 살아있으면 하는 기대감이 채워지길 기다린다.

 

이처럼 이 소설의 이면을 지배하는 테마는 기다림에 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기다림은 제목에서 암시하듯 끝내 채워지지 않으며, 처음부터 오지 않을 기다림에 불과했다.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린다는 것은 때로 삶을 지탱하는 그 무엇이다.

왜적이 다시 쳐들어올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장군의 기다림 역시 그의 남은 생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를 살려 설득시킨 수하 장수들의 예상과 달리

왜적은 오지 않고, 오히려 조정은 왜적과 수교를 한다.

 

그 기다림이 무너져내렸을 때, 비로소 장군은 온전히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인데,

그를 다시 일으켜세워준 것이 바로 난중일기를 고쳐쓰는 것이고, 도적떼와의 조우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된

유민들의 생명력이고, 그래서 그들과 함께 살기로 결심했다가 결국 그렇게 죽지도 못하는 장군의 모습은

충분히 소설적이며 동시에 비극적이다.

 

작가가 의도했든 안 했든

이 소설은 그래서 이순신이 가장 위대했던 순간이 바로 모두가 아는 역사 속 죽음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작가가 그리는 소설 속 쓸쓸한 죽음이야말로 가장 이순신적이지 않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소설 전반을 지배하는 것이 기다림의 아이러니라면, 생존설로 결국 생존설을 부인한 것이야말로 이 소설이 거둔 예상치 못한 아이러니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은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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