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념과는 다르게 때로는 학교가 학생을 도태시킨다. 친구들과의 경쟁 과정에서 자연스레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음습하고 노골적인 손이 끼어들어 낙오자를 만든다. 부조리한 기득권은 안타깝게도 순수함이 지켜져야 할 학교에도 마수를 뻗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학생은 본분을 지키며 잠자코 그들의 권위와 폭압에 굴종하는 것이 맞을까? 저자 가네시로 가즈키의 대답은 다음 문장을 통해 분명해진다.
“무슨 잘못이 있는데, 그걸
사람들이 마치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여긴다고 해서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거야. 잘못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거나, 잘못을 인식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인간이 필요해.(154쪽)”
‘더 좀비스’는 바로 그 틀을 부수려는 소위 ‘꼴통’들의
반란을 주도하는 모임이다. 학교는 예년보다 200명이나 많은
신입생을 받아 교내 시설에 투자할 등록금을 챙긴 뒤, 온갖 이유로 그들을 자퇴하게 조장한다. 이러한 음모는 수학교사 아버지를 둔 노구치를 통해 드러나고, ‘더
좀비스’가 탄생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발단은 ‘저항’보다 친구를 지키려는 ‘의리’에 가까웠지만, 그들은 나름의 혁명 과정을 통해 부당함에 지지 않기 위해 맞서면서 진실을 밝히려고 한다. 미나가타가 수업 시간에 얼핏 들은 “생물의 진화는 언제나 위험과 함께한다.(29쪽)”는 말은 곧 ‘더 좀비스’가 앞으로 맞게 될 운명, 나아가 한 인간이
굴레를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게 될 운명을 암시한다.
학생들의 요새(要塞)가 되어야 할 학교와 울타리가 되어야 할 선생은 오로지 이익만 추구하며 학생들을 이용한다. 학교 안에서 믿을 사람이라고는 자기 자신과 친구뿐이다. 학교와 선생에
대한 불신은 “선생에게 기대해 봐야 어차피 실망할 뿐이다.(30쪽)”라는
미나가타의 독백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존경과 신뢰는 사라진 지 오래고 불신과 냉소, 적개심만이 교실을 채운다.
‘더 좀비스’는 앞서 말한 진화를 위해 위험을 겁내지 않는다. 심지어 ‘미나가타’에게는 만일의 경우 돌아갈 곳이 있지만, 친구들에게는
없다. 실패하면 낙오자의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 미나가타는
은근한 죄책감에 휩싸이면서도 차분하게 혁명을 준비한다. 폭군으로 대변되는 사루지마 선생과의 합숙 훈련에서
탈주하는 것이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어두운 밤, 10미터
아래의 벽을 타고 내려가 또다시 담을 넘는 과정을 겪으면서 이들은 일종의 해독 과정을 겪게 된다. 실패하면
어떤가. 이제 혁명은 두렵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용감무쌍한 ‘더 좀비스’의 혁명은 하룻밤 천하로 끝나고, 모든 것은 ‘0’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들에게는 언제든 깨치고 나아갈 준비가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학교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지켜낼 의지가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며, 누구의 억압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임무를 완수하고 혁명가가 된 그들은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No. 0에서 진화를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