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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가의 일
  • 조성준
  • 16,200원 (10%900)
  • 2021-09-09
  • : 249


예술가라고 하면 보통 어떤 사람들과 이미지가 떠오를까. 나의 경우에는 '피나 바우슈' 보다는 '디터 람스'가 떠오른다. 이 책에서 다뤄진 인물들 중에는 DDP를 설계한 이라크 출신 건축가 '자하 하디드'에 대한 인상이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다. 보통 예술가라 하면 어쩐지 일반인들과는 달리 전위적이거나, 자기만의 독보적인 세계가 있으리라 기대하게 된다. 일종의 예술 에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는 그러한 예술가 33인의 이야기가 담겨있으며, 무엇이 그들을 예술가로 만들었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어 흥미롭다.


나는 33인의 예술가들에 대한 글을 편집순으로 읽었지만, 목차를 보고 흥미나 관심이 가는 이들에 대한 글들을 발췌독 하는 식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이 책의 뒷표지에는 "예술가의 일이란 사람들이 예술에 대해, 더 나아가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적혀있고, 그런 의미에서 책에서 다룬 예술가들의 삶을 모두 읽지 않아고 몇몇 예술가들의 삶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예술가의 일'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사실 내게는 이 책에서 다룬 33인의 예술가들 중 생소한 이도 더러 있었다. 무용수이자 안무가였던 도 그들 중 한 명이었는데, "10년은 자라고, 10년은 배우고, 10년은 춤추고, 나머지 30년은 암흑 속에 가려진 채 살았다"는 무용평론가 리처드 버클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예술가들 중에는 니진스키 처럼 시대를 앞서가는 생각과 시도로 인해 당대에는 이해받지 못하고 오랜 시간을 어둠 속에서 괴롭게 살아갔던 이들이 많았다는 사실이 늘, 내게는 아이러니로 다가온다. 하지만 니진스키가 사라진 세상에서도 그의 예술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예술가의 생은 여느 인생들과 마찬가지로 짧지만, 그들이 남긴 작품들의 수명은 내가 죽은 뒤에도 이어지리란 생각이 들자 어쩐지 소름이 돋는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역시 살아 생전엔 그저 디에고의 아내로 더 유명할 뿐이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그녀의 사후 20여 년이 흐른 후에야 페미니스트들을 통해 발굴돼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예술가로서 여자로서, 인간으로서의 프리다 칼로는 정말이지 도무지 그림으로 승화시킬 수 없는 고통의 삶을 살았을 뿐인데 말이다. 그녀가 남긴 작품이 그녀의 삶을 대변하며 후대에게 큰 울림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걸 바라보며, '예술가의 일'이란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을 허무는 일임을 다시금 실감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프리다 칼로를 관통한 삶의 고통과 외로움과 슬픔의 무게가 박제된 그녀의 그림이, 고통받는 또다른 여성들의 삶에 계속해서 가닿는다는 사실이 묘하게 느껴진다. 이는 프리다가 살단 세상과 21세기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반증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뤄진 여성 예술가들의 삶은 비슷한 면이 적지 않다. 이는 그들을 그냥 예술가라고 칭하지 않고 '여성 화가', '여성 건축가' 등으로 부르는데서 시작되는 어떤 폭력이 시대를 관통해 여태 청산되지 못한 까닭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DDP를 디자인하고 설계한 는 '여성'이라는 꼬리표 뿐만 아니라 '아랍계'라는 수식을 달고 살아야만 했다. 주류 건축계는 하디드를 외계인 취급했다고 한다. (241쪽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약돌, 구름, 물결, 우주선 모양의 건물을 그린 하디드의 설계도는 하나의 사건'(241쪽)이었고 '설계도 안에서만 존재할 것이라고 손가락질 받았던 하디드의 청사진은 독일, 미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덴마크, 스코틀랜드, 러시아, 한국, 벨기에, 중국에서 현실이'(242쪽) 되었으며 그는 심지어 2004년에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의 여성 최초 수상자가 되었다.


예술가들은 때때로 당대에는 인정을 받지 못하기도 하지만, 자하 하디드 처럼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주류의 인정을 받기도 한다. 그들은 애초에 자신의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생각이 세상에 통할지, 혹은 무시당할지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시작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에 묘하게 위로와 도전을 받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무모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삶의 많은 부분을 우울과 광기, 고독 속에서 보내야 했음을 본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을 때면 의 연주를 찾아 듣는다. 단연코 해당 곡에 대한 전무후무한 최고의 연주이다. 그는 살아 생전 '천재는 괴짜'라는 세상의 편견을 공고하게 만든 인물(262쪽)이라 여겨질 만큼 특이했고, 기존의 문법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의 해석을 밀어붙이는 이였는데, 그러한 독특함이 그의 말년을 불행하게 만든 것일까. 물론 스스로 은둔과 고립, 고독을 선택하며 32세의 다소 이른 나이에 은퇴한 것이기에, 그걸 불행으로 보는 건 적절치 않을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결과적으로 완벽한 음을 표현하기 위해 더이상 무대에 서지 않기로 결정하고, 스스로 은둔한 결과 두 번째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유작으로 남길 수 있었으니 말이다.


『예술가의 일』을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예술가들은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삶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이들인 동시에, 자기 자신보다 예술이 중요했던 이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때때로 고독하고 아프고 우울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가는 와중에도 예술을 세상에 부려놓았다. 문득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다뤄지는 챕터에서, 데이보드 보위의 추모 퍼레이드에 참여했던 이들이 춤을 추고 환호성을 지르며 그와 그의 노래로 인해 모두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글이 떠오른다. 어쩌면 저마다의 예술작품들은, 이 땅을 살아가야할 평범한 사람들에게 예술가들이 던지고 간 구호품 같은 게 아닐까.


* 작가정신 서평단 '작정단' 활동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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