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서관이 무대이면서도 똥과는 달리 깔끔하고, 적당히 유머러스하고 풍자적이며, 무엇보다 인간미가 넘치는 이야기. 그게 사람들이 선호하는 문학이다. 나는 그런 문학을 써야 한다. 전작들과 달리 심연을 건드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문득 떠오르는 건 우정이다. 우정만큼 인간의 심금을 울리는 건 없다. 더불어 우정은 문학의 은유다. 쓰잘데기없지만 있어도 나쁘지 않은 것. 그게 문학과 우정이다.
- 인간만세, 57쪽
너무나도 오랜만에 읽는 오한기 작가님의 소설. 소설을 덮은 뒤 이 부분을 보면, 이 문단만큼이나 이 소설을 잘 표현하는 부분이 또 있을까 싶어진다.
답십리도서관 상주작가인 화자는, 주민센터 9급 공무원으로 일하는 후배로부터 '리얼리티가 결여돼'(35쪽)는 있는 소설을 쓴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본래부터 자신의 소설에서 늘 성취하고 싶었던 리얼리티를 어떻게 구현해낼지 골몰해한다. 그러한 고민의 결과 '똥이야말로 인간의 트레이드마크'라며 똥을 통해 소설의 리얼리티를 구축해내고자 애쓰기 시작한다.
'똥'에 대한 리얼리티를 구축하려는 화자의 노력의 과정을 읽고 있노라면, 재밌게도 '똥'이 하나의 거대한 메타포가 되어 독자인 내게 다가오는 듯한 착각이 드는데, 소설 속에서 그가 집착하는 '똥'에 가장 격하게 반응하는 이들이 화자의 동시 수업을 듣는 초등생들이라는 점, 그 중에서도 민활성이라는 아이가 작가가 무슨 말만 하면 '똥!이라고 외쳐대며 미친듯이 웃어댔다는'(47쪽) 점 등이 묘하게도 은유적으로 다가왔다. 애초에 똥은 (의미가 있지도 의미가 없지도 않다는 점에서) 리얼리티를 위한 소재가 아닌 것이다. 그니깐 작가인 화자가 똥을 통해 리얼리티를 성취하고자 하는 과정 자체가 무의미하고 허무맹랑한 것이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분명해지는 건, 소설 속 작가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건 (모두가 리얼리즘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류의) 리얼리즘 소설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소설에서 그가 만들어내고 있는 온갖 허구의 이야기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술술 읽히고, 때때로 허무맹랑해 보일만큼 너무나도 기발하다. 그렇기때문에 소설 속 화자의 삶은 환상과 허구에 의해 전복된다. 즉, 그가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리얼리티의 결여'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지만, 그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는 화자에게 다른 리얼리티는 없는 것이다.
똥-괴물이라든지 도서관 상주작가 자리를 노리는 진진과의 우정이라든지, 문학의 가치를 부정하는 KC와의 논쟁이라든지.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독자는 굳이 그 의미나 상징을 파헤치고 분석할 이유가 없다. 그저 초등학생 민활성이 '똥'이라는 단어만으로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을 포복절도 시켜버리듯-즉 어떤 이들(동질집단)에게는 그들만의 리얼리티가 있듯-오한기 작가가 '똥'이라고 외쳐대는 소설에 화자와 진진처럼 '끄끄끄끄끄끄' 웃어대는 독자가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그러므로 소설을 덮은 뒤 "문학이 대체 무슨 소용이냐"며 너무 진지해지지 말고, 그저 웃게 되기를 바란다.
덧, 상기 내용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담을 수 없었지만, 강보원 평론가의 글을 읽으며 오한기의 이 소설 역시 '자급자족' 형식을 취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나는 강보원 님과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오한기식 자급자족이 이 소설 안에서 작용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오직 자신과 자신의 무의식 또는 생각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소설의 소재로 삼음으로 자급자족식의 소설을 쓰고 있는게 아닐까. 리얼리즘 소설이 소설의 소재를 바깥에서 구해오는 것과는 달리 그는 자급자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오한기의 소설이 나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도 큰 즐거움이 되기를 바란다.
똥-괴물이라든지 도서관 상주작가 자리를 노리는 진진과의 우정이라든지, 문학의 가치를 부정하는 KC와의 논쟁이라든지.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독자는 굳이 그 의미나 상징을 파헤치고 분석할 이유가 없다. 그저 초등학생 민활성이 '똥'이라는 단어만으로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을 포복절도 시켜버리듯-즉 어떤 이들(동질집단)에게는 그들만의 리얼리티가 있듯-오한기 작가가 '똥'이라고 외쳐대는 소설에 화자와 진진처럼 '끄끄끄끄끄끄' 웃어대는 독자가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