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본래 죽은 사람이 현생에 돌아와 사건이 벌어지는 류의 판타지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제목을 보는 순간 읽고 싶지 않았지만, 서평단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읽기 시작했는데, 아주 오래 전 읽었던 프랑스 소설가 기욤 뮈소가 떠오르는 소설이었다. 그니깐, 좋게 말하자면 페이지 터너, 그저 여가시간에 가볍게 읽기 좋은 소설이랄까. 소설이지만 영화나 드라마에 가까운 그런 소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토마는 5주기 기일에 유령으로 나타난 아버지와 마주한다. 처음에는 마리화나를 피운 탓으로 생긴 환영이라고 생각했고, 아버지의 유령에 시달린 나머지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 그 유령은 토마의 아버지 ‘레몽’이었다. 레몽이 토마 앞에 나타난 이유는, 그가 아내 모르게 휴가지에서 만나 수십년간 편지를 주고받으며 은밀히 사랑했던 카미유가 곧 죽게되는데, 그의 유골 잔해와 레몽의 잔해를 한데 섞어서 뿌려주면 그 둘의 영혼은 영원히 함께 하게된다는 것. 여기까지만 읽으면 굉장히 유치하게 여겨지는 스토리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건 주인공 토마가 처음에는 자신이 미쳤다고 여기다가 결국 유령으로 나타난 아버지를 받아들이고, 그의 부탁에 응수하여 파리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까지 날아간다는 것. 그리고 거기서 카미유의 장례식에 참석해 그의 딸 마농을 만나 마침내, 독자를 한참이나 궁금하게 만든 끝에 아버지의 소원을 이뤄주게 된다는 것.
자칫 진부할 수도 있고 예측 가능하게 여겨지는 이 이야기가 나름대로 독자를 매혹시키는 까닭은, 그니깐 이런 류의 소설을 싫어함에도 어쨌든 수월하게 읽게 만드는 힘은, 사랑 이야기로 포장된 이야기의 본질이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라는데 있는 듯 하다. 어느 독자에게나 가닿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위해 아버지를 유령으로 만들어야 했던 건지도 모른다.
죽은 뒤에야 깨닫게 되는 것, 누군가를 잃어버린 뒤에야 알게되는 것들이 있다. 아들 토마와 아버지 레몽의 재회는 도무지 현실에선 일어날 수 없는 방식으로 성사되었고, 결과적으로 그들은 죽음 이전에는 나눌 수 없었던 대화를 나누고 함께 여행을 하며 비로소 진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성을 되찾는다. 때떄로 소설은 우리가 현실에서는 도무지 해낼 수 없는 일들을 가뿐히, 힘을 하나도 들이지 않고 해내는데, 유령이 되어 돌아온 레몽을 대하는 토마의 태도가 냉소와 의심에서 믿음과 사랑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때, 나는 이 소설이 가진 힘을 충분히 느끼고도 남았다.
불쑥 어느 부자의 여행에 초대받았던 독자로서, 나는 이 여행이 무척 의미있었다는 생각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