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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정한 매일매일
  • 백수린
  • 13,320원 (10%740)
  • 2020-11-24
  • : 2,110

사는 것이 힘들고 생각대로 되는 일이 없는 어느 날,

온기가 남은 오븐 곁에 둘러앉아

누군가와 단팥빵을 나누어 먹는 상상을 해본다.

- 다정한 매일매일, 227쪽


이 책을 거의 다 읽을 무렵 나는 누군가와 빵을 나눠 먹었던 순간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최근 몇년 동안 나와 가장 많은 빈도로 빵을 나눈 이들은 다름 아닌 직장 동료들이었다. 아침 회의 시간에 인근의 파리바게뜨에서 사온 빵을 나눠먹다보면 회의는 자연스럽게 빵의 속살처럼 부드러워지곤 했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일단 밥을 먹으라던데, 무언가를 먹는 동안 사람의 마음이 무장해제 되어버리는 이 만고불변의 법칙이란, 어쩐지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다.

내게 퍽이나 진한 인상으로 남아있는 소설 「거짓말 연습」의 작가 백수린. 이후 소설집 『폴링 인 폴』과 『참담한 빛』,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여름의 빌라』 까지 그녀는 꾸준히 소설집을 내고 있는 성실한 작가이다. 그런 작가의 첫 산문집이라니. 그러다보니 이미 출간 전부터 책깨나 읽었다 하는 이들 사이에 감도는 기대감을 인스타그램 등의 소셜미디어에서 엿볼 수 있었다. 보통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법이라는 말이 마치 실과 바늘처럼, 한 쌍의 어두와 어미처럼 사용되지만, 안심하시라. 이 수필집은 마음껏 기대해도 좋겠다.


백수린 소설가의 첫 산문집인 『다정한 매일매일』은 대부분 '책 굽는 오븐'이라는 제목으로 경향신문에 연재한 글을 매만져 묶은 것이라 한다. (위의 책, 5쪽 참고)



이 산문집을 읽기 전까지만해도 나는 저자가 빵을 좋아할뿐만 아니라 직접 굽기도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 책의 중반부 정도를 읽다보면 저자가 '처음으로 연인에게 직접 구운 무언가를 선물한 것은 수물 두 살인가 세 살 때의 일'(147쪽)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부분을 읽으면 어쩐지 기분이 애틋하고 애잔해지는데, 아무래도 십년도 더 되었을 오래 전의 이야기라 그런 모양이다. 그 당시 "정말 네가 만든 거야? 네가 만들었어?"(148쪽)라고 연거푸 물어보며 자신을 위해 이렇게 맛있는 초코칩 머핀을 만든 저자를 보러 다시 집앞으로 찾아온 애인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도 생생하여 사랑의 온기로 내 마음마저 훈훈해지고야 만다.


저자에게는 이렇게 훈기 넘치는 빵에 대한 기억과 함께 그 빵을 떠올렸을 때 연관 검색어처럼 따라오는 책들이 있고, 반대로 어떤 책을 읽다가 불연듯 생각나는 빵이나 케잌이 있다. 이 산문집은 서른 여섯권의 책과 서른 여섯 종류 이상의 빵에 대한 기억과 생각을 담고 있다.


『울분』을 빵에 비유해야 한다면 파스트라미 샌드위치는 어떨까? 1800년대 후반 리투아니아 출신 이민자가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오늘날에는 뉴욕의 대표적인 유대인 먹거리가 되었다는 파스트라미 샌드위치. 이 샌드위치가 떠오른 이유는 단지 『울분』의 주인공이 미국에 사는 유대인 이민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언젠가, 파스트라미 샌드위치가 어떤 음식인지 궁금해 찾아보았을 때 발견한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던 것 같다. 호밀빵 사이에 켜켜이 쌓여 있던 훈제 고기의 피처럼 붉은색이 『울분』 초반에 작가가 공들여 그려놓은 코셔 정육점에서의 도살 이미지를 내게 연상시켰던 것이다.

- 다정한 매일매일, 45-46쪽


위에 옮겨놓은 문단처럼 어떤 소설과 빵을 연결하여 기술한 글들이 흥미로웠다. '빵'이라는 음식과 본업으로 삼고 있는 '소설 쓰기'가 아무래도 저자의 삶과 가장 근거리에 있기에 가능한 글이다. 한 편씩 읽어나갈 때마다 두 대상에 대한 해박함과 깊은 애정에 놀라면서도 조근 조근 들려주는 듯한 문체에 편안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이 책에 소개된 책을 은연 중 영업(?)당하기도 했다. 특히 백수린 작가가 즐겨 읽었다는 작가 중 몇번이나 언급된 '줌파 라히리'의 소설은 초기작 밖엔 읽어보지 않았는데 어쩐지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거의 마지막 부분에 소개된 앨리스 먼로의 소설 『디어 라이프』도 언젠가는 꼭 읽어보고 싶다.


친애하는 인생에게. 친애하는, 이라니. 이토록 쓸쓸함으로 가득할 뿐인데도 인생을 바라보는 먼로의 눈길은 어쩌면 이렇게 다정한 걸까?

- 다정한 매일매일, 227쪽


이 책을 모두 읽은 뒤에는 매일을 다정하게 만들어줄 책과 빵이 있음에, 어쩐지 감사하게 된다. 빵을 굽는 마음과 책을 쓰고 만드는 마음은 어쩌면 동일한 정성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둘 다 모두 누군가의 온기가 있어야지만 태어나는 것들이다.


* 이 리뷰는 작가정신 서평단인 #작정단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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