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괴물 박사님으로 뜨기 전에도 곽재식 작가는 이미 ‘곽재식 속도’로 유명한 작가였다. 연구원으로 일하면서도 한 달에 단편소설 한 편을 써내는 놀라운 속도, 그것이 곽재식 속도였다. 지금 활동을 보면 더욱 놀랍다. 사이버대 교수, 방송출연, 소설 작가, 비문학 작가로 활동 중인 작가의 출간 소식을 보면 거의 한 달에 한 권 정도 신작 소식이 들려온다. 스스로가 곽재식 속도를 넘어버렸다. 이런 작가의 신작. 이번에도 소름 돋는다(긍정적으로).
이번 신작은 13편의 엽편을 모은 엽편집이다. 단편소설의 분량이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70~100장이라면, 엽편소설은 20~30장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짧은 것은 7페이지, 긴 것은 26페이지로 짧디 짧다. SF소설이 처음이거나 곽재식 작가가 처음인 독자에게 첫 소설로 추천하기 좋다. 물론 짧은 만큼 압축되어 있는 내용들이다. 그만큼 일명 ‘장르 문법’, SF소설에 자주 쓰이는 스타일을 잘 모른다면 어렵거나 그냥 넘겨버릴 수 있는 부분들도 있다. 그렇다면 SF소설에 익숙해진 나중에라도 한 번 더 읽어보길 바란다.
<세상에서 가장 불온한 사람>은 사랑이야기이다. 슬픈 사랑. 주인공을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 때문에 세상 망한 이야기>는 말 그래로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가장 인간다운 이야기이다.
<나비 혁명>은 이 책에서 가장 무섭다고 평하겠다.
<댓 이머징 마켓>은 곽재식 작가의 장점 ‘이게 말이 되네?’ 가장 크게 느끼게 해 준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다.
<공수처 대 흡혈귀>는 공수처란 이름에 놀란 필요가 없다. 귀엽고 안타까운 흡혈귀 씨가 나올 뿐이다.
<비트코>는 우주 산업 초입 시대에 자리를 잘 잡은 양 과장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러다 갑자기 작가의 다른 작품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양 과장 이야기가 제대로 끝나지 않았는데, 이런 식의 카메오는 소설이 비뚤게 완결되었다고 느끼게 만든다. 참고로 비트코란 이름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천장의 공포>는 대한민국 입시의 공포를 잘 느낄 수 있게 한다.
<소원의 정복자>는 로맨스를 좋아하면 꼭 추천한다. 첫 번째로 실린 <세상에서 가장 불온한 사람>처럼 사랑이란 감정을 잘 쓰는 걸 알 수 있다. 차기작으로 로맨스를 쓸 생각이 있으면 좋겠다.
<해탈의 길>도 무서운 엽편 중 하나이다. 직접 읽어보시길.
<하늘의 뜻>은 주인공이 선택한 길이 내가 그가 그렇게 하길 바라는 대로 되었기에 대리만족을 느꼈다. 짧은 옆편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백투 유령여기 X2 자주 묻는 질문(FAQ)>는 강아지를 좋아하는 독자가 미소 짓게 만들 엽편이다.
<이상한 여우 가면 이야기> 속 민속신화는 나도 알고 있는 내용이라 친근하였다. 작가가 한국 신화로 열심히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친숙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이야기만 있을 것 같은 책에는 반가운 얼굴들이 등장한다. 미영양식 시리즈의 미영과 양식, 가장 무서운 사건 시리즈의 이인선과 한규동이다.
두 시리즈는 항상 곽재식 작가가 애용하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여성 사장과 남성 부하 직원 둘이서 작은 사무소을 운영하며 엉뚱한 사건들을 해결해 가며 얼렁뚱땅 어떻게는 살아가는 이야기. 두 시리즈는 배경이 한국과 우주라는 것 외에는 비슷한 구성을 띄고 있다. 각 시리즈는 별개로 두 권씩 발간되었는데, 이번 책에서 드디어 만났다. 심지어 앞뒤 연속으로 수록되어 있으니 그 이름들을 봤을 때 놀라움이란!
물론 두 시리즈를 모르더라도 책을 읽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작가의 다른 책들을 읽다 그들의 이름이 보인다면 반가워하면 될 뿐이다.
곽재식 작가는 2012년부터 X(구 트위터)에서 ’140자 소설‘을 연재 중이다. 트위터의 글자 수가 140자로 제한되어있던 시절에 플랫폼에 맞게 140자로 완결나는 초단편이다. 같은 구픽 출판사에서 2016년에 동명으로 출판된 바 있다. 초단편을 10년 넘게 연재 해왔던 작가의 엽편 쓰기 능력은 의심할바 없다. 곽재식 작가의 책을 많이 읽어보았다면 140자 소설 내용들이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왜냐면 그것들이 작가의 다른 단편 소설의 소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깨달았을 때 통쾌함이란! 이래서 곽재식 작가를 알게 된지 8년 넘게 좋아하고 있다.
참고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은 본인이 창작물이란 것을 깨달아 통탄하는 탐정의 이야기이다. 작가가 해방 후 탐정물은 쓴 적 있지만 아직 이 친구는 소재가 된 적이 없다. 7년 넘게 제발 장편으로 써달라고 작가에게 (속으로) 빌고 있다. 언젠가는 만날 수 있겠지.
# 140자 소설 링크 : https://x.com/gerecter2?s=21
#본 리뷰는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구픽 서포터스 2기의 일환으로 작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