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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파파의 서재
  •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 노희경
  • 9,000원 (10%500)
  • 2008-12-15
  • : 12,595


7p

나이가 들어가며 좋은 게 있다

험한 말로는 뻔뻔스러움이요,

조금 포장을 하면 어떤 성과도 과오도 시간이 가면

다 별거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생각하고 싶을 때면 늘 걷는 산길이 있다

어느 날인가 그 길을 걷다가 갑자기 굉장히 서글퍼 진 적이 있었다

예전에는 그렇게나 내게 절실하고 중요해서

그걸 떼어내면 내가 송두리째 없어져 버릴 것만 같던 그런 일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게...

 

18p

그 20년의 세월 안에서 나는 정말 뚜렷이 알아차린 것이 있다.

진실이나 사실이란 말은 함부로 써선 안 된다는 것,

모든 기억은 내 편의대로 조작될 수 있다는 것.

 

떠올리면 굉장히 좋고 행복했다고 기억되는 시절이 있었다

그 때만 생각하면 마음을 꽉 채울 정도로 행복이란 감정이 부풀어 와

회상만으로도 따뜻하고 포근한 감정이 들곤 했다.

그 당시 일기를 읽어봤다

웬걸...

분명 행복했기도 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힘들고 괴로워했던 내가 거기 있었다

그 후로 나는 기억보다 기록을 믿기로 했다

내가 지금 가능하면 지금의 내게 솔직하게 일기를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24p

이제 부디 나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라.

사랑에 배신은 없다.

사랑이 거래가 아닌 이상, 둘 중 한 사람이 변하면 자연 그 관계는 깨어져야 옳다.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마음을 다 잡지 못한 게 후회로 남으면 다음 사랑에선 조금 마음을 다잡아볼 일이 있을 뿐,  

죄의식은 버려라.

이미 설레지도 아리지도 않은 애인을 어찌 옆에 두겠느냐.

마흔에도 힘든 일을 비리디 비린 스무 살에, 가당치 않은 일이다.

가당해서도 안 될 일이다.

그대의 잘못이 아니었다.

어쩌면 우린 모두 오십보 백보다.

더 사랑했다 한들 한 계절 두 계절이고, 일찍 변했다 한들 평생에 견주면 찰나일 뿐이다.

모두 과정이었다.

그러므로 다 괜찮다.

 

나란 사람은

보내는 것과 떠나는 것 중에 어떤 것을 택할까...

 

36p

이십대는 아주 좀 나았다.

일단 담배를 필 수 있게 됐고, 연애를 하면서 학교를 맘대로 땡땡이치면서 원하는 대로 좀 망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사는 게 재미없었다.

애인들은 툭하면 내가 싫다고 떠났고, 친구들도 게으른 나를 비웃고,

전공으로 택한 시는 지도교수로부터 대부분 엉망이란 말을 들었다.

 

42p

인생을 살면서 절대 잊혀질 것 같지 않은 장면들이 잊혀지고,

절대 용서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용서되면서 우리는 여자로 혹은 남자로 성장한다.

누구는 그러한 성장을 성숙이라고도 하고 타락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나는 다만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 소중했던 일이었는데

그게 이젠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렸다는 걸 깨달은 때...

나는 내가 성숙해진 걸까, 라고 자문했었다

손에 한 줌의 모래를 꼭 움켜쥐고...

어느 날인가 손을 펼쳐보니 그 손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45p

은수는 그 남자의 처지보다 순수가 버거웠을 것이다.

사랑이 변하고, 권태가 일상이 되고, 키스도 무료해지고, 생계가 치명적인 걸 이미 아는 여자에게

사랑만이 전부인 남자는 부담스러웠을 뿐이다.

이제 이 나이에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상우처럼 묻는 남자가 내게 온다면,

나 역시 은수처럼 당연히 그 남자를 피해갈 것이다.

아직도 사랑이 안 변한다고 사랑이 전부라고(직장마저 그만둘 만큼)생각하는 남자와

격한 인생의 긴 여정을 어찌 헤쳐 나가겠는가.

은수와 상우의 결별은 그런 의미에서 너무도 다행한 일이다.

 

사랑이라는 말은 연정을 품은 이성에게만 적용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나 형제들에게 사랑이라는 말을 쓰는 건 낯간지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참 사랑의 모양새도 다양하더라

이제는 말로 하지 않아도 분명히 느낀다. 나는 내 가족들을 사랑한다.

이제는 말로 하지 않아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연인과의 사랑...?

지금 내가 사랑하는 모습 그대로  평생을 그 사람과 함께 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의 사랑이 내일이 되면 변하고, 내일의 사랑도 모레가 되면 변하겠지

하지만 오늘의 사랑도, 내일의 사랑도, 모레의 사랑도

모두 사랑이다.

그렇기에 언제까지고 함께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64p

참 묘하다.

살아서는 어머니가 그냥 어머니더니,

그 이상은 아니더니,

돌아가시고 나니 그녀가 내 인생의 전부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녀 없이 세상이 살아지니

참 묘하다.

 

70p

내가 즐겁고 싶어서가 아니라,

남이 즐거운 모습을 보기 위해 마술을 익히고, 쇼를 하고, 모델이 된 야스민.

남을 웃기려다 끝내 자신마저 즐거워져버린 야스민.

나는 그녀가 너무 예뻐서 그 밤 울어버렸다.

 

기념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기념일에 무얼 할까 고민고민을 했다

무얼 해야 그 사람이 좋아할까

그런 마음을 안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준비하는 자신이

정말이지 더할나위 없이 신나고 행복해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빡빡하고 무료해서 건조해진 내 일상에

이거 하나만이 내 낙이 되는구나...

유치하지만

나는 역시 이렇게 사랑해야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80p

어느 날

말로만

글로만

입으로만

사랑하고, 이해하고, 아름답다고 소리치는 나를 아프게 발견하다.

이제는 좀 행동해보지.

타일러 본다

 

머리를 암만 굴려서 정인군자같은 답을 찾아내고

겉모양만 그럴 듯하게 마음먹으면 뭐 하니?

정작 자기 일이 돼서 부딪히면 욕심만 앞서는 걸...

어리고 한심해서 바보같아서...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은 나...

 

107p

드라마 속 인물처럼 살고 싶었다.

동료가 잘나가면 가서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자격지심 같은 건 절대 없으며, 어떤 일에도 초라해지지 않는,

지금 이런 순간에도, 큰소리로 괜찮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인물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왜 나는 괜찮지 않은 걸 이렇게 들키고 마는지.

 

괜찮다...괜찮다...괘안치 않다... 괘안하지 않다...

나 혼자만 생각하면 별 것 아닌 일인데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면 못견디게 자신이 보잘 것 없어질 때가 있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지.

나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사랑하겠어

 

112p

남의 상처는 별 거 아니라 냉정히 말하며

내 상처는 늘 별 거라고 하는, 우리들의 이기

 

148p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이유는 저마다 가지가지다.

누군, 그게 자격지심의 문제이고,

초라함의 문제이고,

어쩔 수 없는 운명의 문제이고,

사랑이 모자라서 문제이고,

너무나 사랑해서 문제이고,

성격과 가치관의 문제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 어떤 것도 헤어지는데 결정적이고 적합한 이유들은 될 수 없다.

모두, 지금의 나처럼 각자의 한계들일 뿐.

 

사람을 대할 때 한계를 느낀다면... 그 관계는 어떻게 될까?

내가 좁아서, 깊지 못해서

그 사람을 내 안에만 몽창 담아두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내 한계를 느끼면...

과식해서 소화불량상태가 된 나는... 토해낼까?  

토해내면... 버릇돼서 나중에 또 그럴 것만 같은데... 

그렇다고 계속 그러고 있으면 병 날지도 모르구...

그래도 병은... 나으라고 있는 거지, 죽으라고 있는 게 아니잖아 

 

180p

어느 자식 하나 안 사랑한 자식이 없다.

다시 태어나면 니들한테 좋은 애비이고 싶다.

니 엄마를 다시 만나면 살자 하고 싶은데,

그 말을 들어줄까 모르겠다.

원 없이 세상 살았다.

내가 나중에 누워 있게 된다면 호흡기는 달지 마라.

니가 참 안 됐다.

 

189p

나는 작가다.

그런데, 작가란 사람은 사람이 죽든 말든 오직 제 밥벌이 글쓰기에 몰두하는 그런 사람인가?

 

 

 

정말 오랜만이다

얼마만일까... 글을 읽고 이렇게 마음이 동해서 리뷰를 쓴 게...

참 오랫동안 생각도 없이 그냥 일상만 반복하며 살았던 것 같다

한동안 뭔가 가슴이 짠한 영화를 보고 싶어서 안달을 했었는데

아무래도 뭔가 쪼그라들어 메말라가는 감정이 다시 부풀어오를만한 게 그리웠나보다.

 

원래의 나라면 읽어보지 못했을 이 책을 읽어보게 됐다.

 

누구나 자기 인생을 살아간다.

차이가 있는 듯 없어서

'그게 인생이지'

라고 뭉뚱그려 말할 수 있는 게 인생이라면 

이렇게 누구나가 공감하고 애끓을 수 있게

글만으로써 그것을 표현해내는 건 분명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에 팍팍 꽂혀서 나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구절들도 있었고

분명 내 마음에 다가오는데 그걸 뭐라고 단정짓지 못하겠는 부분들도 있었고

지금 나는 아직 어려서 차마 내가 뭐라고 이야기를 할 수 없는 부분들도 있었다.

 

다만 확실한 건

작가의 솔직한 글에서

나는 분명 진실된 인생의 단편을 보았고

그것이 지금의 내게 어떻게 다가왔는지를 생각하는 것뿐 아니라

나중에 또 다시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또 어떤 것에 감동받고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까... 

까지를 생각할 정도로 마음에 남았다는 것...     

 

점점 하기 힘들어지는 게 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한다는 것

하지만

진심만큼 확실하게 전달되는 것도 없잖아

진심만큼 와닿아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없잖아

진심으로 다가서 보자

모든 죄가 없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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