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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소음이다. 그러나 그러한 소음보다도 더욱 무서운 것이 있다. 바로 정적이다.(릴케, 박환덕 옮김,『말테의 수기』문예출판사, 11쪽)

 

“누구한테 불평을 해요? 들어줄 사람도 없어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나무를 깎아 알록달록 칠하고 덧대어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인 트럭들이 달린다. 그들 중 하나인 아나톨라도 아름답고 화려하게 치장한 자기 소유의 1966년산 트럭에 바나나를 실었다. 

주어진 지형에 따라 암석에 구멍을 파고 그 안에서 살거나, 자그마하게 예쁜 흙집을 지어 사는 이 나라는 무기 허용의 나라, 평화는 없다. 길에 강도들이 숨어 있다가 밤에 나타난다. 덕분에(?) 경비업체는 활황이다. 아나톨라가 국경에 다다르자 경비대는 벌금을 거둔다. 이유는 없다. “탈레반은 도둑이에요. 주머니 채울 생각만 하죠.”

 

트럭이 달려오면 비켜야 하지만, 아직 말과 나귀를 몰고 다니는 근본적이고 생태적이며 지속가능한 지혜로운 풍습이 잔존하는 나라(나는 북한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게 소로 쟁기 끌어 농사짓는 풍경인데, 이것은 낙후가 아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길이요, 생태복원의 시작점이다.

대한민국도 탱자탱자 놀고먹는 육우들의 코를 코뚜레로 꿰어 밭에 투입하고, 두 마리를 엮어 마차를 매달고 시속 20키로 이하로 경부고속도로를 달리게 하라. 도로 곳곳에 싸는 똥을 모아 퇴비로 쓰고, 말려서 땔감으로 활용하거나 물에 풀어서 종이로 만들도록 정책하라. 북한이 트렉터로 교체만 않는다면 생태 관광만으로도 충분히 잘 살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도로로 나온 트렉터를 보는 것은 때때로 얼마나 끔찍한가. 계엄 시 몰고나온 탱크 대용 트렉터. 마달이 잘게다가 건초를 넣어 에깨 울러미고 산타처럼 나타나라! 제 작년 내가 기후변화 관련한 집회에 가보니, 뜻은 있고 방법은 없단 걸 느꼈다. 반고흐 그림에 본드로 손을 붙여봤자 액자 갈면 그만이다. 정부관청 벽에 온갖 것을 갖다 붙이고 칠 한다고 그 안에 든 사람들과 기업들이 눈이나 깜짝 하겠는가.

외주 업체 인부들이 그 벽을 어떻게 지울지 생각해보라. 팔이 빠지지 않겠나? 이후 나는 안방연구소 설립을 절감했다. 오늘은 월차를 내고 하루 쉬는데, 눈 뜨자마자 천장을 보며 도는지 안 도는지 이석증 체크를 하고 컴을 켰다. 밖에 게 아무도 없느냐. 말을 준비하라. 내 오늘은 잠옷 바람으로 자판만 뚜들기고 있을 게 아이고 아이고! 곡하고 있을 때가 아이고 궁궐에 들어가 왕을 알현하고 돈키호테 후예로서의 책무를 다하려 한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하자는 승부수를 던지고 오겠다.

공주님을 포기할 터이니 AI육성할 자금으로 관련 기업 주식을 산 젊은이들에게 보전해주고, 나머지는 몽땅 아프가니스탄 산악지대 헐벗은 사람들에게 주라고 하겠다. 교육부에도 들러 서울대 10개 만들기로는 왠지 부족한 게 아니냐, ‘전 대학명칭의 서울대화’를 명하겠노라.

초등학교는 각 학생당 한 명의 교사가 옆에 앉아 학업을 돕도록 하는는는는는는 시스템을 만들고고고고고, 말을 더듬게 되는구나, 분하고 흥분하면 꼭 이러는 구나. 전국의 학원과 무직자로 인원을 충당하고, 평등하게 학생도 교사도 수업이 끝나기 전까지는 휴대전화를 끄고 바람직한 전자기기 사용법과 에티켓을 가르치고, 그렇게 1대 1로 기초교육을 똑소리 나게 시키면 고등학교는 폐지해도 무방하다.

장관 앞에서 이렇게 설파하면 나에게 티슈를 뽑아주면서 게라웃 어브 히어 나가라고 하면, 나는 세계 각국에서 익힌 글로벌 비즈니스 매너를 발휘하여 스미마생 노 쌩큐, 이래면서 눈물을 잠옷 소매에 닦고 다시 보송해지를 기다리며 물을 한 잔 청하여 마시고, 걷어 올린 잠옷 바지를 내리고 품위 있게 그 방을 나와, 스콧 니어링처럼 주머니에서 사과를 꺼내 한 입 먹고 양심껏 나머지를 말에게 건네겠다)다.

 

토요일 같은 일요일. 오늘은 밥상 차림 대신 정신 차림으로 허기를 달랜다.

묵시. 묵시록은 종교적 중립을 표방하려 요한계시록을 비껴간 낱말. 묵시론적 종말론은 필히 기독교적 시각이며 지구상에서 지금현재도 시차를 두고 진행되는 걸 <세계의 극한직업>을 통해 목격한다. 신이 빚은 아름다운 흙을 몸서리 내며, 사람들은 그 위를 아스팔트로 덮어주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특히 주님 믿는 기독교도와 그리운 사람의 환생임을 못 알아보고 한 달 살기도 ‘모지래게’ 월급 주는 해장님들아, 친환경으로 나아가라!

 

돌아가신 김종철 선생은 언젠가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라는 글을 썼는데, 맥락에 겨운 ‘내 입술로 모든 얘기 할 수는 없지만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하도 어이가 없어 불철주야 '뒤로 뒤로 더 뒤로'를 지향하며 한마디 아니 보탤 수 없는 까닭이다. 흉포하고 어지러운 바람을 몰고 오는 것들아! 순결한 내 몸을 거적 대기로 두르고, 이 나간 장검을 높이 치켜들며 너희들을 치러 오늘 나는 단지 말 달리노라.(feat.크라잉넛_말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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