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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의 <자전거 도둑>이 다음 차례인데 쓸 수 없었다. 안중근 책도 쓰려고 했으나 빌렘 신부와의 면회 광경만 떠오르면 감정이 북받쳤다. 어제 늦은 밤에 인터넷에서 우연히 글을 하나 읽었는데 재밌어서 웃게 되고 드디어 물꼬가 트이는 기분이 들면서 고비를 넘게 됐다. 내용이 이렇다.


어느 문학동호회에서 전혜린 무덤에 갔는데, 일단 좀 헤매다가 도착을 했다(검색이라도 했으면 방문 실수요자를 위해 복잡하게 써 둔 내 글이 툭 뜨거나, 묘지 길안내 사진이 있는 다른 사람 글이라도 떴을 텐데).

글쓴이는 간판이 ‘슈바빙’이라는 이유 하나로 전혜린을 떠올리곤 그 레스토랑을 자주 찾아가 앉아 있곤 했고, 절판 전까지 지인들에게 전혜린의 수필집을 선물했을 정도로 ‘찐팬’인데, 세월이 흘러 처음 마주한 묘비에서 놀라운 것을 발견한다. 그리곤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을 터인데 왜 고쳐지지 않았는지 안타까워한다. 묘비 앞면 뒷면 모두다 ‘혜‘가 ‘헤‘로 잘못 표기되어 있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냐고(성새임! 항시 건강하세이. 덕분에 흐린 마음이 밝게 다림질 되었습니이다. 살았으면 구십이 넘었을, 언제나 젊은 청년 우리의 ’헤린‘은 자신의 이름을 원래 그렇게 쓰곤 했답니이다).

 

“즐겁게 놀랐다.” 

1959년 새해 아침 뮌헨의 전혜린은 스위스에서 온 헤르만헤세의 편지를 받고 이렇게 썼다. 이것에 맞설 표현은 “맛있게 맵죠?” 밖에 없다. 세살 때 천자문을 어예 띠겠노마는 그것을 해냈고(비룡소 마법천자문 카드로 6세에는 가능하다), 오로지 자신만이 쓸 수 있는 문장력도 겸비했다. 너무 쓸 게 많으면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 게다가 삶의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게임오버다. 직접 쓴 문학작품이 없음에도 있는 듯 착각에 빠트리는 독특한 이 번역가는 수필가로도 불리는데 ‘일기가’로도 불릴 수 있으려나.

지금현재 죽은 헤세에게 석장의 그림엽서와 축하인사를 받을 사람이 누가 있는가. 지금현재 크리스마스 답장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 우편으로 보낼 문인이 전 세계 어디에 있는지 그 미담을 나는 알지 못한다.

 

<늙은 말을 모는 늙은 마부와 늙은 마부를 아버지로 둔 상대적으로 젊은 딸> <젊었을 적과는 다른 말과 마부의 상태> <새 ‘말’ 살 돈이 없음을 ‘말’하라> <말하지 못하는 말> <한 방살이의 고뇌> <감자먹는 부녀> <뜨거운 감자와 생감자 사이> <족쇄의 가족> <소멸된 명랑함> <자동차 탄생의 계기> <나는 좀 쉬고 싶은 말이지 말입니다> <아비는 거머리놈이었다> <돌아온 집> <5촉 등을 켜다오> 라고 제목을 해도 어울릴 <토리노의 말>에서, 아침에 깬 딸은 왜 아버지 침상 밑에 떨어져 있는 자신의 겉옷을 집어 올리는가.

딸은 왜 자립을 꿈꾸지 않는가, 딸과 ‘할바시’는 왜 함께 종말을 맞아야 하는가. 생각의 폭을 넓힐 것을 주문한 혜린이 이것에 대해 쓴다면 일기장에 어떻게 남겼을까. 우리는 어느 대목에서 매혹될까.

 

알리고 싶은 것을 부드럽게 소개하되 마음이 여려 성찰적이 되고 마는 고종석은 <문학이라는 놀이>를 통해 전혜린 사후 발표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비판 한다. 1996년 발행된 김화영의 <바람을 담는 집>을 재인용하여, 그가 고백했듯 상당부분 글을 김화영이 아예 뜯어고쳤음을 상기시키고, 그러고도 그 책은 악문의 전시장이라고 한다. 정신들 차리라는 충고처럼 들리는데 맞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다음 사람을 찾기 전까지.

 

따사로워서 마음을 온순해지게 만드는 문장가 정찬은 언젠가 한겨레 칼럼에서 이덕희가 왜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자기 고유의 죽음을 가져야 한다. 죽음에 있어 모방은 하수다(내가 존경하는 스콧니어링 모방은 제외되어야 하나 그것도 알 수 없다. 백세는 이제 별 나이 아니므로). 죽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그럼에도 계속 산 것은, 아마도 자신의 죽음이 세간에 떠들썩하게 주목받는 것을 원치 않아 숱한 인내심으로 고유의 죽음이 올 때까지 끝까지 기다렸으리라.

 

혜가 헤라서 걱정인 문학동호회 성새임들은 전혜린 책들을 놓고 현수막을 펼쳐 사진을 찍고 막걸리를 바치고 풀이 자라있다고 걱정했다. 나는 이제 그곳이 조금 빠삭하여 어떤 동물들이 있는지를 알고 어느 계절이 방문하기 좋은지도 알고 풀은 장마가 와도 흙을 잡아주므로 오히려 걱정할 일이 아니고 막걸리는 동물을 부르니 맹물이 좋고 사진에 찍힌 무덤 옆 언덕의 꽃은 내가 심었는데 흙이 퍽 건조하여 며칠간 꼬박 물 주러 다녔고 그 물이 어디서 났냐면 그 밑의 도랑물을 떠다 날랐는데 여름엔 양이 많고 맑아 나도 많이 마시고 다음날 개운하게 일어났고 성새임들이 올라간 그 길은 풀이 극심히 무성하여 내가 낫으로 베었는데 여름풀은 금세 또 자라니 별 표가 안 났을 수 있는데 그 무덤과 그 비석으로 인해 이토록 반갑습니다.

(feat.홍민_잃어버린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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