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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은 이상하고, 너는 그에게 이상해.”

 

롤랑 마나르는 비 내리는 날 고향으로 돌아온다. 차창으로 주룩주룩 흐르는 빗물은 카메라 빛에 어리어, 마치 그의 뺨에서 흐르는 눈물처럼 (우리에게) 보인다. 창 밖에는 우산을 쓰고 성당 계단을 내려오는 신랑신부와 거기 참석한 동생이 보이지만, 그는 버스에서 내려 달려가지 않는다. 십 오년에서 오 년 감형된 십 년 형을 채우고, 이제 막 감옥에서 출소한 것이다. 단 한 번의 면회도 오지 않은 동생, 그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감옥행을 택했던 그는, 동네에 다다라서야 버스에서 내리고, 능숙하게 산등성이 지름길로 가 자신의 집으로 간다. 형의 존재에 대해 왜곡된 사연을 들은 적 있는 여자는, 출소 후 그가 자신의 집으로 온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다. 피로연장에 남편을 두고, 보채는 아이만 데리고 집으로 왔다. 재우려고 안고 섰는데, 낯선 이가 눈앞에서 몸을 밀착하며 다그친다. 여자는 공포에 휩싸여 얼어붙는다. 자신과 아이의 평화를 깬 침입자로부터 되려 질문을 받게 된 것이다. (내 집에 무단 침입해 있는 지금 당신은) “누구세요?”

 

프랑스 북부 아미앵 근교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제라르마나르농업회사’를 운영하는 ‘They’는 아내와 세 살 된 딸과 살고 있다. 농촌의 넓은 농지를 가졌지만 별 뾰족한 수 없이 역시나 쇠락의 길을 가는 중이다. 회사라는 명칭을 붙였지만 직원이라곤 고작 자신과 조수 한 명인데, 그로써 충분하다. 그도 그럴 것이 혼자서 대형 제초기트랙터에 올라타고 달리기만 하면, 자동으로 순식간에 풀이 깎이기 때문이다. 조수는 적재함차량으로 그와 호흡을 맞추며 옆에서 나란히 달린다. 깎인 풀은 잘게 분쇄되어 원통형 굴뚝으로 뿜어져 나와, 옆 차량의 적재함에 쌓인다. 거칠고 메마른 정서를 가진 제라르는 짙은 풀 향내가 나는 그 순간의 음미도, 굉음과 대형 칼날이 지나가면서 불가피하게 짓이기고 파괴한 다른 종의 세계에 대한 ‘일말의 내적 갈등’도 없다. 그저 심란하여 행동이 더 난폭해질 뿐이다. (오 년이나 일찍) 형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롤랑이 돌아온 그날은, 파리에서 와 이곳에 정착한 지 십 년이 되는 이태리인 수의사 베리노의 결혼식이 있었다. 제라르가 그와 매우 오랜 친구인 듯 행동해서 아내는 속아왔지만, 그들이 은밀하고 석연찮은 관계임이 계속 복선으로 깔린다. 제라르 집 냉장고에 붙은 모든 결혼사진엔 제라르와 아내, 베리노, 셋이 있다. 롤랑은 ‘그것’을 보고 ‘그것’을 간파한다. 제라르는 형에게 진실의 일부만 말한다. 형의 주장이 옳았노라고. 소들은 아팠고 뇌수막염에 고기는 썩었고, 베리노가 보험을 위한 서류를 해주는 대신, 자신은 그의 정착을 돕고 고객을 모아주었노라고. 음흉한 롤랑에게 성적으로 이끌리는 제라르의 아내는, 그의 짐을 뒤지다가 들킨다. 롤랑은 짐 속 책을 꺼내 설명해준다. 미국인들의 점령에 맞서 싸운 플로리다 족장 오세올라의 죽음을. 원주민들은 고속도로에서 팔찌를 팔거나 히치하이커들이라고. 그것은 자신의 신세와 같음을 암시한다.


제라르는 자신의 자가용 겸 풀 깎는 기계인 노란색 트랙터 둘레에, 전구를 칭칭 감고 거칠게 밤길을 돌진한다(사람인 형이더라도, 형이 없었으면 싶은 그의 심정을 담고). 그의 트랙터가 달리면, 매달린 전구들은 크리스마스트리의 그것처럼 아름답게 반짝인다. 전구가 꺼지면 동시에 파티도 끝나고, 의무뿐인 집 문을 여는 일만 남았다. 십 년 청춘을 날리고, 범죄인 평판 낙인이 찍힌 형이 돌아오는 바람에, 그나마 있던 가정의 안온함도 깨졌다. 무섭고 불편한 객식구인 형을 내보내라는 아내와 손찌검도 오가며 싸우지만, 그에겐 형에 대한 부채감이 있다. 우리(추측건대 자신과 베리노)가 여기서 행복한 게 수치스러워서 면회를 안 간 거라고, 형이 뭘 원하든 (그것이 내 아내인 너의 몸이더라도) 줘야 한다고 아내에게 말한다. 형뿐 아니라, 아내 또한 형에 대한 감정이 심상찮음을 눈치 챈 제라르는 형에게 (줄 것 중에) 내 가족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형과 동생의 아내는 선을 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족 간 불협화음과 오가는 폭력이 괴로운 형은,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떠난다.

 

형이 멍청해서, 아버지가 농장 대신 제빵견습생이 되게 한 거라고 형에게 쏘아붙이지만, 여러 장면에서, 사람과 동물을 잘 다루는 진실하고 훌륭한 조련사로서의 면모를 형 롤랑은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은 늘 불안하고 아슬아슬하다. 감독은 롤랑이 유희를 목적으로 드라이브할 때 나란히 달리던 개를 치어, 차바퀴가 생명을 죽인다는 단호한 메시지를 낸다. 마지막 날, 롤랑이 지나는 차를 얻어 타고 떠나려고 길에 섰는데, 그녀가 달려와 붙잡는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지만, 아이와 같이 떠나자고 하자 ‘제수씨’는 망설인다. “아미앵까지 태워줄게요.” “처음부터 짙었던 당신 눈썹은, 내가 떠나는 게 낫다는 뜻이에요.” 히치하이커 롤랑은 대형 트럭을 얻어 타고 떠난다. 

 

날은 어둑하고, 제라르가 트랙터를 몰고 오다 멈춘다. 흙바닥에서 혼자 노는 아이 손을 잡고 집으로 데려가려 한다. 장난감을 집어 올렸으나, 머리 부분이 쏙 빠진다. 그것은 장난감 윗부분과 아래 부분이 분리된 것을 모르는 무심한 아빠를 의미한다. 또한 십 년 전 그날, 제라르의 과오로 불에 타 죽은 농장일꾼의 딸로서, 최근 목을 맨 알코올 중독자 카롤린 불레의 목을 의미한다. 부부사이의 종말이며, 형제간 파탄이고, 아주버님과 제수씨라는 족쇄의 박탈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제 형에 대한 부채가 소멸되고, 그것으로부터 분리됨을 의미함은 물론이다.  


제라르는 그간 사람들의 표준에 맞춰 산 덕에 입방아에 오르지 않았으나, 꺄페와 주스와 아르마냑을 파는 인간적인 사람인 아미르네 꺄페든 어디든, 동네사람들 수군거림을 들을 것이다. 그녀는 갔니더. 시즈곤, 엘레빠띠. 몸과 마음의 소리에 경도되어 둘 중에서만 고르느라, 여럿 중에 고르는 것도 방법이라는, 바람에 실려 온 소리는 안/못 듣는 그녀는, 그러므로 갔니더. 작고 다부진 그만이 이 세상에서 오로지 멋진 것이다.

 

 

 

원제:Peaux de Vaches(Thick Skinned)무정한 사람
Patricia Mazuy감독 1988년 프랑스영화
출연_ Sandrine Bonnaire, Jacques Spiesser, Jean Francois Steven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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