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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esang11

로자가 저공비행으로 나는 것을 보러 갔다. 밑에서 쳐다보고 있자니 회오리 바람이 쌩쌩 분다. 그때였다. 예기치 않게 무언가 내 발 아래 툭 떨어졌다. 프로펠러가 일으킨 바람에 날아온 단어 하나, 그것을 들고 왔다. 그리곤 적어둔다. 끝없이 회피하고 입에 담을 수 없던 단어, 정.신.요.양.원. 회피를 잘 대면하자.


쇼츠의 시대에 저 딱붙은 줄을 보라. 같은 줄 또 읽을까 눈에 힘을 주고 읽어 본다.


로베르트 발저의 마지막 산책

                 (지은이, 로자...의 저공비행에서 퍼온 시)


발저의 도시는 따로 없겠지
발저는 산책가였으니
파리의 산책가 보들레르를 뺨칠
아니 따귀를 후려칠
산책가였으니
발저는 생의 마지막날까지
산책에 나섰던 거지
눈이 내리는 성탄절 아침에도
발저는 눈길을 꾹꾹 밟으며
걸음을 옮기는 일을
마치 성탄의식처럼
행했던 거지
눈덮인 산언덕에 이르러
마지막 열두 걸음을 옮기고
발저는 이제
생에서 손을 놓았지
지상에 남겨둔 두 켤레 같은
마지막 두 걸음 더
그러고는 누웠네
다 이룬 것처럼 누웠네
대자로 누웠네
그 바람에 모자가 날려
발저의 영혼길을 안내했다네
하늘에는 발저의 자리가 있을까
분명 정신요양원은 없을 테지
그래도 필시
발저는 산책을 멈출 수 없을 거야
경력 단절은 없을 거야
산책길 대화도 이어지겠지
연필로 쓴 작은 글씨도
다시 이어졌으면
그게 발저니까
로베르트 발저
눈길에 꾹꾹 새겨진
이름 로베르트
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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