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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2011/05/2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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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피를 입은 비너스
-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
- 9,000원 (10%↓
500) - 2009-12-21
: 825
사디즘, 마조히즘. 두개를 합쳐서 사도마조히즘. 변태성욕이라 불리는 것 중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단어이다. 마조히즘이라는 단어를 탄생시켜 수천년의 세월동안 자신의 성욕에 이름조차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자신의 이름이 영원하게 남게된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의 작품인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그래서 특별하다. 아니다. 어찌보면 정말 아무것도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자허마조흐가 이 작품을 통해 '그들'과 '그것'에 이름을 붙이게끔 한 순간 특별해지게 되었다. 그래서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해진 이야기를 다룬다.
작품은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이 가미되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게끔 진행된다. 어느날 자신의 이상형을 발견하게 된 제베린. 그는 그녀를 통해 삶의 영감을 얻게된다. 그는 그녀에게 청혼을 하지만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반다는 이를 거절한다. 그들은 1년의 시간을 두고 교제를 시작하고 제베린은 그녀에게 그간 자신이 가지고 있던 판타지를 이야기하며 이 판타지를 그녀를 통해 실현하려 한다. 그 판타지란 누군가의, 사랑하는 연인의 노예가 되는 것. 거절하던 반다는 결국 그를 위해, 그리고 그녀 자신의 쾌락을 위해 이를 점점 열정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하며 이야기는 절정을 맞이한다.
특별함.또는 비범함.또는 특이함
<모피를 입은 비너스>의 제베린은 학대받을 때 오히려 쾌감을 느낀다. 유년시절의 채찍질 이후 그 쾌감에 눈떠버린 제베린은 자신의 연인이 그 쾌감을 자신에게 선사해주길 원한다. 그리고 역시 반대로 학대할때의 쾌감에 눈을 뜨는 반다. 둘의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이 출간되었을 때 어떠한 사회적인 반향이 일었을지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선하다. 십여년 전 한국에서 영화 '거짓말'이 개봉되었을 당시에도 사도마조히즘과 관련한 부분이 크게 논란이 되었음을 생각하면 지금보다 백년도 전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그래서 이 책은 특별한 취급을 받는다. 이 책뿐 아니라 안의 내용도 아직 특별한 취급을 받는다. 우리는 아직 우리와 다른 것에 인색하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을 하는데 남들은 저렇게 사랑을 나눈단다. 그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들이며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 된다. 마치 아무도 그러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분명 수 백, 수 천년간 존재해왔을진대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우리 사회는 아직도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정상이 아닌 양 취급한다
특이함을 감싸는 평범함
잠깐 다른 얘기. 환자들을 보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이것 해도 되요? 저것 먹어도 되요? 라는 것들이다. 무엇이든 절대 해서도 안되고 절대 해야 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물론 존재하지만 대체로 환자들이 물어보는 질문에 한정해서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적당히 하는 것이다. 어떤 쪽으로든 극단을 달리지 않는 것. 건강을 위해서라면 절대 이것이것은 하지 않아야한다는 그 강박관념만이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랑을 나누는 방식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사랑을 나눔에 있어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것과 절대 해야 할것은 없다. 우리 안에는, 우리의 관계 속에는 항상 적당한 정도의, 표면화되지 않은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존재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사주고 좋아하는 것도 결국 마조히즘의 순하고 좋은 예이며, 연인이 귀여워서 깨물어주고 싶겠는 그 감정, 심지어 살짝 깨물어보는 그 표현 역시 사디즘의 다름아니다. 우리는 항상 모루, 아니면 망치의 다름아니다. 다만 그 표현방식과 방법이 극단으로 흐르는가, 흐르지 않는가가. 누가 항상 망치의 역할만 모루의 역할만 하는지 그 관계가 시소처럼 왔다갔다 하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관계.특별한, 평범한.
이 책은 결국 조금 특이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루가 되었다가 망치가 되었다가 하는 시소와 같은 관계, 탁구와 같은 관계가 아니라 한쪽으로 조금씩 쏠려 어느덧 균형을 잃고 그 극단을 달리는 관계의 이야기이다. 너무 극으로 흐른다고 지금까지 우리가 금기시 해왔던 그 관계. 물론 억눌린 금기속에서도 항상이 극단의 관계는 존재해왔으며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그 관계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극단적 관계를 보여줌으로써 결국 우리도 그 관계의 어느 한 중간지점에, 혹은 우리 역시 그 극으로 가까워지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누구도 예외는 아니다. 인간이라면, 연인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관계의 균형점 속에서 우리는 어떤 곳으로 흘러가는지. 나는 모루쪽으로 가고 있는지, 망치쪽으로 가고 있는지. 그 균형을 유지하는지 점점 제베린과 반다처럼 그 끝으로 달려가는지. 모든 연인의 관계는 특별하다. 그리고 특이하다. 또한 평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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