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들리는 클래식
햇살과 나무꾼 지음
일화로 만나는
클래식
요즘엔 음반이나 클래식 서적을 사지 않아도 누구가 유튜브에서 음악과 그 음악에 대한 지식을 넓힐 수 있다. 스트리머가 설명해주기도 하지만 댓글로 감상을 주고 받으면서 풍부한 지식들을 덤으로 얻기도 한다.
그런데 관심이 없으면 정보의 바다에서 스쳐 지나간다. 아이들은 딱딱한
설명이나 지식보다는
작곡가가 살던 시대적 배경과 곡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일화들을 통해 이야기 책을 읽듯 들려주면서 조금씩 클래식에
대한 이해를 넓혀갈 수 있다.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의 음악교육의 기적으로 유명한데 최초는 비발디의 피에타 음악원이 아닐까?
비발디가 오기 전까지 버림받은 어린 여자아이들의 정기 연주회 수입금으로 겨우 유지되던 가난한 보육원에 지나지 않았던
곳을 아이들에게 음악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깨우쳐서 음악학교로 승격시키고 아이들이 음악의 열정과 환희를 느낄 수 있게 했던 스승 비발디의 이야기는
그가 음악을 대하는 자세를 느끼게 해준다. 일화속에는 협주곡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고 전세계가
사랑하는 비발디 사계는 전곡 모두 아름다운데 음악속에 들어있는 4계절의 경치에 대해 설명을 잘 담아내고
있다.
비발디의 사계서부터 20세기 재즈와 클래식을 접목하여 대중화한 거슈인의
랩소디인 블루, 서머타임처럼 매력적인 음악과 작곡가를 만나게 되는데 내가 알던 에피소드보다는 모르던
에피소드들이 더 많아 매우 즐거웠다. 특히 음악의 신동 드뷔시는 형식과 규율을 엄격하게 지키는 보수적인
국립 음악원의 전통에 충돌하는 재능 있는 반항아였다.
교수님, 제가
아는 음악의 법칙은 오직 하나입니다. 듣는 귀를 즐겁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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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리석은 친구들아! 자네들은 그저 교수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지. 무슨 화음인지, 이 화음의 특징이 무엇인지 따위의 질문을 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음악을 즐길 수 없단 말인가? 음악이란 그저 자유롭게 듣는 걸세. 그것으로 충분해 쪽
전통적인 좋은 음악이란 틀을 파괴하고 음악의 현식과 규칙을
버리고 자유롭게 창작활동의 욕구를 가진 드뷔시는 음악의 짜임새나 형식에 벗어나 음악의 인상주의 시대를 열어 현대음악의 문을 열었다.
보들레르, 말라르메, 모네와 같은 시인과 화가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드뷔시만의 독창적인 음악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음악에 관련된
풍부한 삽화와 사진들
음악과 관련된 발레공연 사진과 삽화, 음악가와 음악에 관련된 그림, 작가가 살던 시대의 도시 사진을 함께 보면서 오감으로 음악적 지식을 접할 수 있다.
감상
여기에 나오는 클래식을 유투브로 검색해서 아이에게 들려주고 함께 들으며 읽으니 오감을 살려 읽는 맛이 난다. 이 책에 나오는 클래식 음악과 그 음악을 작곡한 작곡가는 너무도 유명해서 음악가와 곡의 제목을 몰라도 우리에게
익숙하다. 언어는 들리지 않으면 소통할 수 없지만 음악은 가사 하나 하나, 내용을 잘 몰라도 감상하고 교감할 수 있다. 인류 공통의 유산이다. 무슨 사전 지식이 있어야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이런 음악에 대한 생각은 드뷔시와 비슷하다. 드뷔시는
지나치게 형식적인 틀에 얽매이는 학교와 학생들을 비판한 것이지만.
어릴 때 아빠가 사주신 시계에 나온 멜로디가 쇼팽의 녹턴 2번이었다. 너무도 아름다워 계속 들으며 났던 기억이 난다. 학교에서 음악책으로
접했던 클래식에 대한 지식들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감각적으로 체험했던 곡은 시간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다. 학교 시작이나 쉬는 시간을 알려주는데 혹은 집집마다 쓰레기를 싣던 쓰레기 차에서 나오는 음악은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곡의 일부여서 그 음악을 들으면 쓰레기차와 시작종이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대중가요뿐 아니라 클래식은 우리들에게 친숙하다. 반야의 베토벤 바이러스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비창 3악장을 펌프게이용으로 만들어서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사랑하는 곡이다. 빠른 속도와 강한 비트가 현대인의 감각에 잘 맞아 떨어지지만 비창소나타 전악장은 베토벤이 살던 당시대뿐 아니라
현대인들이 사랑하는 곡이다 . 그 당시의 사람과 문화는 역사속으로만 접하지만 음악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사람들을 이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