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는 잘 몰랐는데 유럽에 대해 알아갈수록 아직도 계층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계층에 따라 쓰는 어휘도 다르고 다니는 학교도 다르다는 것에 유럽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이 많이 무너졌었다. 특히 아니 에르노의 경우 본인의 뛰어남 때문이겠지만 중고등과정을 상류계층의 학교로 진학한 덕분에 상당한 혼란과 어려움을 겪은 듯 싶다.
나도, 아니 에르노만큼은 아니겠지만, 서울의 소위 명문여대로 진학한 후 경제적, 문화적 격차가 과 동기들과 상당히 차이가 난다는 것이 혼란스럽기는 했었다. 과 동기 중 한 명의 한 달 순수용돈(책값, 옷값, 식대 제외)은 내 아버지의 한달 월급보다 많았고, 당시, 비록 IMF이전이기는 하나, 동기들이 주말에 홍콩에서 쇼핑하고 북경에서 식사하고 오는 1박2일 여행을 다녀왔다는데에 황당하기도 했다. 언젠가 한번은 한 친구가 자신의 생일파티에 나와 다른 친구를 초대하여서 덕분에 최초로 패밀리레스토랑이라는 곳을 간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런 비싼 식당에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로 그 식당이 다 찬 것과, 불과 셋이 식사한 것으로 그 친구가 무려 십만원을 계산한 것에(지금이야 웬만한 식당에서는 당연한 금액이지만, 당시는 학생식당 점심 1끼가 1200원이던 시대이다ㅡㅡ;;;) 공포감마저 든 것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다행히 나는 동기들의 경제력에 그다지 자존심을 상처입지 않았지만(내가 그 부분에 무뎠다ㅡㅡ;;;), 지방 출신 학생이 경제적, 문화적 차이에 크게 방황하고 어려움을 겪던 케이스는 분명 실존했다.
그나마 한국은 어찌되었든 한국전쟁덕분에 계층이라는 것이 사실상 사라진 상황이어서 그나마 계층적 이질감이 덕하였지만, 아니 에르노가 느꼈을 어려움은 충분히 짐작이 된다. 특히 자기 자신이 초라해보이고 모멸감을 느끼는 순간은 차마 견뎌내기 힘들었을 터이다.
이런 아니 에르노가 그 시기를 견뎌낸 것은 자신의 아버지 덕분이다. 아니 에르노의 아버지는 성실하게 삶을 살았고, 자신을 멸시하는 위쪽 세상에 자신의 딸이 속하게 되었음에 자부심을 가졌다. 아니, 결국은 그녀의 존재의 이유가 아니던가. 그리하여 그녀는 중등교사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정확히 두 달 후에 있던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이렇게 아버지에 대한 에세이를 써내게 된다.
나 또한 어려웠던 시절 아버지의 존재로 살아낼 수 있었기에 더욱 감명깊게 이 책을 읽었다. 아니 에르노가 묘사한 자신의 아버지와 그와 함께 했던 사건들, 그와의 관계를 보며 나 또한 나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결국 우리 모두에게는 아버지가 존재하고, 그의 자리로 인해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던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