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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새로운 세상
  •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 진 리스
  • 15,120원 (10%840)
  • 2024-10-11
  • : 1,894

각 시대마다 소설가들은 훌륭한 작품들을 써내지만, 소설가도 인간인지라 자신의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는 한다. 하지만 후세의 소설가는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고 과거의 고전을 소재로 새로운 창조물을 완성하게 되고, 그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새로움과 관점을 안겨주곤 한다. 바로 이 소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처럼.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의 출발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이다. 우리는 여주인공 제인 에어와 로체스터의 사랑에 주목하지만, 진 리스는 소설에서 허무하게 사라져버린 로체스터의 첫 부인 '버사'에 주목한다.

'제인 에어'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버사는 서인도제도 출신이며, 로체스터는 재산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아버지와 형의 농간에 걸려 서인도제도까지 가서 버사와 결혼한다. 하지만 로체스터에게 버사는 자신의 어머니에게서부터 광기를 물려받은 미친 여성일 뿐이다. 로체스터에게 버사는 책임감의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후세의 소설가 진 리스는 그런 버사에게 주목했다. 진 리스 또한 서인도제도 출신 여성이었고, 그러하기에 서인도제도에서 살고 있는 크리올 여인들이 가지는 미묘한 사회적 위치를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하기에 진 리스는 '제인 에어'에서 쓰여진 버사의 서사에 격분했고, 결국 버사의 이야기를 다룬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완성해냈다.

이 소설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인종에 따른 여성들의 계급관계다. 샬롯 브론테 또한 '제인 에어'에서 19세기 가부장사회에서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매력적인 여성을 그려내지만, 제인 에어는 결국 백인 여성이며, 그녀는 버사라는 크리올 여성에 대한 경멸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즉 그 당시에 깨어있는 여성이라 할 수 있는 샬롯 브론테에게도 식민지의 혼혈 여성에 대해서는 조금의 이해력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19세기 영국 사회에서 식민지는 단지 수탈의 대상이었고, 식민지 사회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 샬롯 브론테에게도 당연한 사고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같은 여성임에도 제국의 여성과 식민지 혼혈 여성간에도 계급이 존재했던 것이다.

진 리스는 이것을 파악했고, 버사를 너무나 아름다우면서도 불행한 삶을 살다 간 매력적인 여성으로 재탄생시켰다. 그녀는 결코 제인 에어에 꿀리지 않는 강인한 여성이었으나, 제인 에어와는 달리 가부장제와 제국주의에 의해 희생되어 버리고 만다.

솔직히 기존 소설을 다시 해석해 새로 써내는 소설들을 몇 번 만나봤지만, 이 정도로 압도적인 소설은 본 적 없었다. 정말 창의적인 재해석이 어떠한 것인지 교과서적으로 보여주는 대단한 소설이다. 나도 이런 날카로운 시선을 갖고 싶은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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