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거 리
자살하려고 했다가 살려진 명희는 당분간 여옥이와 함께 지낸다. 그러다가 명희는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고 여옥이를 떠난다. 윤국이는 어떤 마음인지 빨래터에 자주 가 숙이를 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곤 한다. 길상이 출옥하게 될 날이 다가오자 구마가이 젠타가 서희 집으로 찾아와 기웃거린다. 복연이는 붙어사는 언니 순연(귀남네) 가족을 보고 보란 듯이 성환할매편을 든다. 중간에서 성환할매는 난처하지만, 속도 없이 친정엄마에게 붙어사는 언니에게 한소리 시원하게 해 붙이는 동생 복연이다. 오서방은 우 서방을 의도찮게 살해하게 되고 옥살이를 하는데, 오서방네도 이에 방황하기도 한다. 인실과 조용하는 대면할 계기가 생겼다. 인실이 방직 감독에게 추행당하는 걸 뿌리치던 여학생의 팔이 부러진 걸 보고 기예 학교 선생으로 항의 편지를 썼기 때문이다. 조용하가 인실에게 묘하게 관심을 갖게 된다. 인실과 오가타는 주변의 만류와 내적인 갈등에 부담을 가지면서도 끌리는 정으로 만난다. 관수가 독립운동한다고 자신의 많은 시기를 보내고 허탈해 할 때 한복이 옆에서 힘을 북돋워준다. 관수는 자신의 딸 영선을 데리고 해도사집을 지나 강쇠네 집으로 가고, 강쇠 아들의 처로 삼아주길 부탁하며 맡긴다. 강쇠또한 흔쾌히 받아들이며 혼인준비를 한다. 인실과 찬하, 오가타는 명희를 찾으러 진주로 내려간다. 명희는 매몰차게 그들을 거부하고, 여기에 더 할 게 없어진 찬하는 오가타와 인실을 두고 먼저 떠난다.
읽으면서...
비록 백정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지만, 독립운동에 주축이 되며 강직하게만 보이던 관수. 그의 집안 사정과 위기 때마다 긴장하며 대피하던 삶을 깊이 들여다본다. 자신이 쫓던 가치에 모든 것을 걸었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건 남의 집 딸과 가출한 아들과 힘들어하는 가족들, 그리고 독립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조국뿐이다. 여기에 허탈해 하며 자신이 따라왔던 독립의 길에 다시 의문을 갖는다. 이에 한복이 관수에게 보이는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살인자의 아들로, 아비와 똑같은 삶을 사는 형을 둔 자로 죄인 된 삶을 살아온 한복의 삶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리며 애국자로의 삶을 다짐을 보이는 것이다.
"형님, 지는 말입니다. 지는요, 지는 말입니다. 후회 안 할 깁니다. 겁이사 나겄지마는요, 발 빼지는 않을 겁니다. 영호하고 약조를 했인꼐요. 살인 죄인으로 세상 끝내기 보담이야 애국자로 세상 끝내는 편이 안 낫겄십니까."
그간 독립운동을 하는 계층들과 동학 무리의 대화를 보며 답답한 마음이 있었는데, 오히려 관수의 이런 한스럽고 갑갑한 마음은 독립에 대한 진실된 속내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을 울렸다. 정말 관수의 관점과 상황이라면 아무 소망 없지 않은가? 그럼 어떻게 살아야 했을까? 아득하고 답답한 현실에서 해결책을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 인생의 의미 있는 삶을 제시하는 한복의 짧은 말은 그가 살았던 한스러웠던 인생이 어우러져 감동이 된다.
명희를 찾으러 간 길에 금광여관에서 나온 오가타와 인실의 대화 또한 인상적이다. 절대 하나가 될 수 없어 보이는 남녀... 오가타와 인실은 두 남녀이기 전에 현실을 따라 한 나라를 빼앗은 나라와 빼앗긴 나라의 백성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다. 오가타는 그래도 일본이었기에 민족주의적인 데서 살짝 벗어나 사랑하는 마음을 더 좇았지만, 모든 것을 빼앗은 일본의 사람과는 하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갇힐 수밖에 없는 인실은 달랐다. 그런 간절함과 절실함 가운데 부르짖는 그녀의 한 마디가, 그녀가 붙잡으려는 의지를 드러내는 듯하다.
"일본은 절대 조선을 지배할 수 없다! 못 할 거다!"p.423
<토지>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이루어질 수 없는 애절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역시나 <토지>는 토지다!!! 계속 ~~ 쭈욱!!! 끝까지 가자!!
마음에 담은 문장
"양반이 될려고 양반집에 태어난 것도 아니며 상놈이 될려고 상놈집에 태어난 것도 아니며 양반, 상놈 씨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밥그릇 크고 작은 것으로 인하여 수세기에 걸쳐 횡포와 설움이 대립하여 싸워왔다면 마음이 비고 찬 것은 그 누구와 누구의 싸움이던고." p.47
"조밭을 매면서 이런 말을 하시지 않겠니? 일이란 억지로는 안 되지라. 하루아침에 성을 쌓지는 못허니께로 개미 뫼 문지듯이, 일이란 그렇기 혀야제잉. 세월이란 것도 개미 뫼 문지 듯 가는 거 아니더라고? 해서 할머니, 개미 뫼 문지듯 뫼 문진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하고 물었지. 개미가 모래흙 하나하나 물어나르는 거 못 본 게라? 아아 개미가 집 만들려고 땅속에 굴 파는 것 말이지요? 그려, 하며 할머니는 웃더구먼." p.108
... 그건 인간의 본질의 문제지 질투하곤 별로 관련이 없어. 그러나 내가 그 절망의 늪에서 일어나서 세상 밖으로 기어나왔을 때 처음 느낀 것은 이방인이구나, 그거였다. 명희 너도 이제부터 그것을 뼈저리게 느껴야 할 게야. 시골에 가도 도시에 가도 교회당 안이나, 밖에서도 흐흐흐흣...... 여자들은 나를 침입자로, 결코 과장이라 생각지 말어. 농가에 들어서도 농가 아낙은 남자의 어느 한 부분, 눈빛 하나라도 도둑맞을까 봐 경계하고, 물론 내가 혼자 있는 여자라는 것을 전제해서 말이야. 아찔하고 눈이 멀어질 것 같은 충격을 헤일 수 없이 받았다. 해서 남자라면은 벽을 쌓고 또 벽을 쌓아놓구 여자들과 친해볼려구, 그야말로 쓸개 다 빼어놓구서 그럴수록 오히려 그게 약점이 되는 거야, 방자함이란.... 아니면 위세당당하게 동정이나 베풀고, 인간을 어떻게 포기해. 난 복음을 전하는 사람 아니니? 도시 인간이란 무엇이냐, 수없이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주여, 나는 어찌해야만 하옵니까? ... p.120
... 넌 줄곧 온실에서만 살아왔으니까, 어느 정도 견디어낼지는......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담을 쌓아도 제발 내 앞만 가리는 이기주의자만은 되지 말아라 그 말인데, 노처녀나 이혼녀나 과부나 편협하고 옹골차고 물기 없이 말라서 자기 둘레만 깨끗이 하고 자기 식량만 챙기는 그런 습성은 밖에서 오는 핍박 때문에 형성된 것이지만 그것을 이겨야 해. 더한 정신적 고통을 받겠지만 우리도 살아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거야. 명희야, 우리 물기 빠진 나무는 되지 말자." p.122
"그런 감정까지 싫어할 권리는 없어. 아무튼 내가 전도를 하면서 가장 수월하게 대할 수 있었던 사람은 뱃사람들이었다. 예수꼐서 처음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와 시몬의 형제를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셨는데 그들이 어부였다는 것은 상당히 암시적인 일이 아니었나 하고 난 가끔 생각할 때가 있어. 어부한테선 뭔지 모르지만 인간의 원형 같은 것을 느낄 수 있거든. 마음이 늘 파도에 씻기기 때문인지 땅에 정착하여 울타리를 쌓아 올리는 생활이 아니어서 그런지, 어부들한테 비하면 농민들은 차라리 교활한 편이고 상당히 방어하는 자세로 나온단 말이야. 웃고 떠들고 했다면 너의 아름다움 떄문에 그들이 즐거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p.141
... 서서히, 떠날 아침 배를 타기 위해 사람들은 모여들고 있다. 떠날 사람 전송 나온 사람 짐짝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떠나는 사람 돌아오는 사람, 산다는 것은 결국 오고 가고, 뱃길이든 육로이든 인생은 길이라는 말로 요약되는 것인 성싶다.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저세상도 황천길 저승길이라 하지 않는가. 길이 있기에 시간도 있는 겐가. 탄생은 시간을 가르고 나오는 것, 죽음은 다른 차원의 시간으로 가는 것, 해서 정거장이나 부둣가는 대부분 비애스런 곳이나 아닐는지, 영원한 정착이 없듯 떠남도 영원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 p.148
"이런 말 하면 뭣하지만, 처지도 다르고 하지만 한복이를 보게. 그런 기맥힌 일이 어디 있겠나. 그러나 마을을 떠나지 않고, 그 사람들은 타곳에 가도 살 만한 것인데 자식들은 모르지만 내 당대에는 이곳을 떠지 않겠다 그런다지 않던가. 한복이야말로 그 천대, 이로 말할 수 없었지." p.241
"어떤 선배 언니가 한 얘긴데요, 남녀동등주의의 여자들 꼴불견이라는 거예요. 물 빠진 나무막대지 같은 여자라 혹평하면서 그들 주의나 사상에는 인간에 대한 휴머니티의 뒷받침이 없고 에고이즘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거예요. 자기 처지에 대한 불만, 원망, 열등감 그런 것 때문에 핏대를 세우거나 아니면 시류를 좇아가는 의식화되지 못한 경박함, 해서 자칫하면 여성의 특성이 향상되기보다 말살되는 결과가 된다, 남녀는 다 같이 서로 장단점은 있게 마련이라는 거지요. ..." p.272
"형님, 지는 말입니다. 지는요, 지는 말입니다. 후회 안 할 깁니다. 겁이사 나겄지마는요, 발 빼지는 않을 겁니다. 영호하고 약조를 했인꼐요. 살인 죄인으로 세상 끝내기 보담이야 애국자로 세상 끝내는 편이 안 낫겄십니까."
...
"그라고 그래야만 나는 빚을 갚는 기이 안 되겄십니까? 빚 안 지고 살겄다 그기이 지 평생의 소원인꼐요. 관수형님이 처음 지보고 만주 가라 했을 직에는 원망스럽기도 했제요. 하지마는 만주 가서 길상형님을 만나보고 그곳 사정을 보이, 야, 길상형님이 나를 깨우쳐준 기라요. 니는 과거의 굴레를 벗어라 벗어라 그것은 니 잘못이 아니다...... 남이사 머라 카든지 서럽어도 억울해도 이자 나는 기대고 떠받칠 기둥 하나를 잡은 기라요. 사람답게 살자. .... 나는 발 못 뺍니다. 나도 이 강산에 태어나서 소리칠 곤리(권리)가 있인꼐요. 형님이 훌륭하고 그 발밑에도 못 가는 거는 지도 압니다. 하지마는 형님! 지 앞에서는 울믄 안 됩니다. 형님 우는 거를 보이 조금은 같잖다는 생각이 듭니다. 와요, 지 말이 틀맀십니까?" p.343
... 탐욕은 손에 넣기 쉬워도 진실은 잡기 어렵다. 해서 사람들은 진실을 외면하고 맑은 물줄기에서 탈락한다. 숫자만 기억하고 숫자만 믿으려 한다. 숫자는 질이 아니다. 양이다. 양은 원래적인 것, 그러나 사람들은 원래적인 것을 조작한다. 조작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은 숫자를 믿는 것일까, 신봉하는 것일까.' p.371
... 당신은 결코 일본을, 일본인을 초월하지도 극복하지도 못할 거예요. 제가 조선인인 것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당신은 깨끗해요. 드물게... 더러운 게 너무 많은 세상에, 심지어 우국지사라는 허울을 쓰고 소름끼치게 더러운 인간도 많은 세상에.... 지난 진재 때 조선인 학살의 지옥에서 전 죽창과 곤봉을 든 일본아이들을 목격했습니다. 조선아이들에게 돌 던지는 일본아이들은 흔히 보는 일이구요. 그것은 저주받은 일본의 미래입니다. 당신네 역사의 산물이구요." p.415
... 그리고 오늘 조선의 처지를 일본의 처지라 가상한다면 그렇게 치열하게 끈질기게 저항했을까요? 당신네들은 내심 무서운 거예요. 중국에서 만주에서 연해주, 미국, 또 일본 내에서 조선 국내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독립투쟁, 당신네들의 야만적인 탄압은 공포에서 오는 거예요. 거듭되는 학살은 당신네들 공포의 표현입니다. 당신네들이 용기다 생각하고 있는 것은 용기가 아닌 잔인성이에요. 어처구니없이 미화된 셋푸쿠에서 난 그것을 느낍니다. 잔인성, 길들여진 잔인성 말입니다. ... p.420
'어쩌면 세 사람의 관계는 오늘의 현실의 축소판인지 모른다. 아니 역사의 축소판이라 할까? 거창하지만.'
... 오가타와 인실의 경우 한 때 동지였고 서로 깊이 사랑하지만 넘을 수 없는 이민족, 그것도 지배자와 피지배자, 참으로 격렬한 적대 관계가 이들 등 뒤에 있다. 오가타와 조찬하와의 관계는 또 좀 다르다. 개인적인 일이지만 일본여자를 아내로 한 남자, 조선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동병상련 같은 것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며 이민족이라는 것도 비교적 극복한 우정으로 맺어져 있다. 상반되고 상합되는 이들의 관계는 바로 갈등 그 자체이지만 세 사람의 공통점은 지식인이라는 점이다. 첨예하게 인식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 기둥 하나를 잡고 이들은 상반된 것, 상합된 것 때문에 갈등하고 역사가 안고 내려온 숙제를 물려받아 이들은 고뇌한다. 참 묘한 짜임새라 아니할 수 없고 찬하가 말한 대로 축소판임엔 틀림이 없다. p.471-472
"잘 쳐묵고 잘 살믄서 유세 부리고 살던 사람들, 그 잘난 사람들 때문에 백성들은 헐벗고 굶주리야 했는데, 이 강산에서 젤 덕을 많이 본 그 잘난 사람들이 내 강산을 팔아묵고 연명을 하는데 백성들은 설 땅 조차 없으니 이자는 그 잘난 사람들 처분만 기다리서는 안 되는기라. 내 살길 내가 찾더라고 언제꺼지 백성들은 이렇기만 살아야 하노 말이다." p.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