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잡담 하나
요즘 라디오 켜기가 겁난다. 모종의 책임감이랄까 그런 것 때문에 경제나 시사쪽 프로를 고정적으로 틀어 놓는 편이다. 종부세, 파산보호신청, 금융위기, 세계적인 불황, 멜라민 파동...자꾸 듣다 보면 이러다 세상이 폭삭 주저앉고 말지, 하는 생각이 든다.
평평한 초원에 누군가 돌 하나를 놓았다. 그게 시작이었다. 어느 순간 밑면이 완성되고 돌은 한 단 한 단 올라간다. 어느덧 돌이 모여 거대한 사각탑이 된다. 단순한 것 같지만 규칙도 존재한다. 어느 한 쪽이 기울면 다음 단을 쌓을 때 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럴 땐 양쪽의 높이를 조율해야 하는 것.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돌쌓기는 게임으로 전락하고 만다. 여기저기 틈이 생기고 이 세계는 기울기 시작한다. 자꾸 자꾸 쌓이고 쌓여 이젠 누군가가 하나만 올려도 세계 전체가 흔들릴 상황이다.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높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밑면을 고려해서 꼭대기에서 흔들리는 돌부터 하나씩 다시 내린 다음, 밑면에 해당하는 바닥을 더 넓히고 그곳에 다시 돌을 쌓는 것. 위로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직하게 내려앉아 하늘과 산과 바다와 강과 들과 나무를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지는 것. 불행하게도 우리의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고 위로 올라갈 줄 만 알았지 서서 숨쉬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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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Gift)
한 발 더 나아가 젠가 게임을 하는 것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다. 그나마 한없이 위로 올라가기만 하던 것이 이젠 누군가가 중간에서 하나씩 야금야금 덥석덥석 돌을 빼내고 있는 형국이다.
아슬아슬하게 젠가 하나를 빼낸다. 그리고 휴,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 이젠 위험한 바톤을 상대방에게 넘긴다. 상대방도 최대한 리스크를 줄이면서 휴, 하고 상대방에게 바톤을 건넨다. 하지만 무서운 것은 결국 하나라는 거다. 내팀 네팀이 아니라 몸은 하나인 내팀 네팀이라는 거. 흔들거리다가 무너지면 결국 모든 것이 끝장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그렇다.
아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젠가보다 더 위태롭다.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
자, 이제부터, "더 빨리 더 많이 더 높이"라는 올림픽 구호 대신, "더 느긋하게 더 적게 더 낮게"를 외치며 우리 삶의 모든 과정을 참되게 구조조정하는 건 어떨까? (본문 157)
2. 책 이야기 - 구성과 기획에 대해서
(일단 책 이야기 하기 전에 밝혀 둘 것은 나는 다소 감상적인 부분을 가진 독자에 속한다는 것.)
먼저, 경제와 사회 우리 삶을 이어주는 주제를 가진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문서가 아니라 일반인이 읽을 수 있도록 더 말랑말랑해졌으면 좋겠다. 말랑하다는 건 얄팍하는 게 아니다. 이를 테면 철학과 이론이 들어가 있으면서도 재미있고 쉽게 와닿는 책, 내가 선 자리를 다시 되돌아보게 만드는 책을 희망한다.
하지만 이 책은 구성면에서 보면 다소 밋밋한 수준에 머물고 만다. 1장 2장은 내 삶과 맞물려 있어 소화하기 쉬웠고, 3장은(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 열 가지) 느닷없었지만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어째 흐름을 끊어놓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배치가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4장, 5장, 6장은 다소 딱딱했다. 물론 이해 못하거나 그럴 정도는 아니지만 눈에 쏙쏙 들어오지 않았다. 나열식이랄까.
7장 넘어갈 때 다소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경쟁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사랑'이 중요하다는 건데, 어째 할랑하다는(감상에 기댄)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사랑'이야말로 '경쟁'을 아우를 수 있다는 점에서 마무리 주제로는 알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 흐름이 자연스러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 책을 읽고 주변을 다시 둘러볼 수 있어 좋았다.
3. 그 외.
* 나는 경제 관련 책은 거의 안 읽은 편이다. 이 책을 읽은 후부터 라디오를 들을 때 더 골똘히 생각하게 되었다. 왜 저런 논쟁이 일어나는가? 그들은 왜 추운데도 피켓을 들고 저기에 서 있는가?
예를 들어 이런 것들.
노동집약적이고 저부가가치형의 경제구조를 자본집약적이고 고부가가치형의 경제구조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이 과정에서 노동배제적 자동화나 정보화가 가속화되고 따라서 인간 노동력은 가차없는 합리화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실업자나 임시직의 형태로 길거리로 내몰리고, 오로지 소수의 고급 기능인력만이 상대적으로 좋은 대접을 받게 되었다. (본문 96)
저자는 경쟁력 중심의 구조조정이 아니라 삶의 질 중심의 구조조정으로 나아가자, 는 말을 한다. 왜 이렇게 일자리는 없고 실업자는 많은지.
* 경쟁이 일정 부분 우리를 성장시키기도 하지 않는가. 이를 테면 선의의 경쟁 같은 거 말이다.
*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 않나 싶다. 다만 이론적으로 정리가 안 된 것뿐이지. 정말 중요한 것은 외부와 연결되어 있는 우리의 내부를 들여다 보는 일일 것이다. 저자가 강조한 연대란 것도 '나' 스스로 경쟁의식을 버릴 때 가능하다는 건데 어디 그게 쉬운가? 사실 나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위태로운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나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
(* 알라딘 서평단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