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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외로운 게 뭔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이 생길 수 있다는 데에는 수긍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엄마랑 내일 학교 같이 갈까?"라고 설득했다가 "혹시 누가 괴롭혀?"라고 묻기도 했다. 은혜는 입만 꾹 닫았다. 보경에게 설명하고, 그로 인해 위로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은혜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보경이 지금이라도 화를 내며 은혜를 두고 나갈 것 같아 두려웠지만 은혜의 마음은 문장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보경은 차분했고, 끈질겼다. 이런 건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대신 등 돌아 누워 있는 은혜를 끌어안으며,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말하라고 했다.

"이유도 묻지 않고 들어줄 테니까 아무거나 다 말해도 돼, 은혜야."

은혜는 한참을 망설이다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보경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다가 본인이 한 말을 어기고 싶지 않았는지 이유를 묻지 않고 그렇게 하자고 대답했다. 만일 보경이 이유를 물어봤다면 은혜는 이렇게 대답했을 거다. 돌아오는 길이 외로워, 엄마. 힘들지는 않은데 외로워. 외롭다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길을 외롭다고 부를 수 있을 거 같아.

보경은 홀로 학교를 몇 번 들락날락하더니 곧 은혜에게 이제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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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생활에는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다. 낯선 곳에 갈 때 초행자가 당연하게 헤매는 것처럼 낯선 상황에서 아주 조금 당황할 뿐이지 그것은 곧 해결될 문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은혜가 모든 길을 헤쳐나갈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불가능이 없는 시대라지만, 은혜는 도달할 수 없는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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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는 거 아니고?

….

여기서 도망친다고 다른 뾰족한 수가 있어?

도망치면 왜 안 되는데?

뭐?

나도 피곤해서 좀 쉬게. 그게 나빠? 나라고 꼭 매사에 열정적으로 도전해야 돼? 왜? 남들은 안 그러잖아. 네가 말하는 보통 사람들은 피곤하면 쉬고, 힘들면 도망치고 하는 거잖아. 나도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짜증 나 죽겠으니까.



그때는 도망치는 기간을 정해뒀어야 한다는 걸 몰랐다. 정확한 날짜를 정해두지 않으니 돌아가는 날이 점점 미뤄졌다. 가끔 세상은 은혜가 들어갈 틈 없이 맞물린 톱니바퀴 같았다. 애초에 은혜가 들어갈 수 없게 조립된 로봇 같았다. 그런 세상에 제대로 한 방을 날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을 때마다 분에 못 이겨 경마장을 찾았다. 투데이는 은혜만의 대나무 숲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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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하고 말고가 지금 꼭 중요하냐고 물으려던 연재의 대답을 자르며 지수가 대답했다.

"네, 친한데요. 왜요?"

"아니, 둘이 노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담임의 표정이 떨떠름했다.

"학교가 노는 곳은 아니잖아요, 공부하는 곳이지. 아무튼 저희 그럼 가볼게요."

지수가 연재의 손을 붙잡고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연재는 자신이 하려고 했던 대답보다 지수의 대답이 적절했다고 생각했다. 사실이 아닐지언정 덕분에 담임은 군소리 덧붙이지 못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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