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었지만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았다. 법의학자의 시선으로 본 살인사건들.
죽은 자들은 더 이상 말이 없지만, 그들의 몸이 대신하여 말해주고 있다.
법의학자들은 시신을 보면서 그날의 상태는 어떠했는지, 그의 죽음에 대해서 하나씩 단서를 붙잡고 찾아간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숨을 참으며 읽게 되었다.
한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며 읽으니 저절로 상상이 되었다.
15년 동안 2000여 구의 시신을 관찰한 관찰자로서 그는 죽은 자들을 대신해서 말해주고 있다.
그는 수많은 재판장에서 법의학자로서 한 사람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들을 이야기한다.
아주 객관적으로 사실만을 말하려고 한다고 했는데,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한 사건의 피해자 아버지가 법정에서 나오는 그를 붙잡고 자신의 딸아이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서 묻는 장면이 있었다.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할까... 했지만,
그는 법의학자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아주 담담하게 했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빠른 죽음은 아니었을 겁니다."
딸의 죽음을 재판장에서 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있어야만 했던 부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 그의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
두 사람의 감정이 모두 기입되어 가슴이 찡하기도 했다.
이런 격한 직업이 있나...
하지만 또 이런 사람들이 없다면 더 이상 죽은 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의사들이 하는 농담 중에 이런 것이 있다고 한다.
"외과 의사는 모든 걸 할 수 있지만 아는 게 없다.
내과 의사는 아는 건 많지만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
법의학자는 모든 걸 알고 할 수 있지만, 이미 늦었다."
하지만 그는 이 말이 틀렸다고 말했다.
법의학자가 하는 일은 죽은 이들이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상이라고..
어제까지만 해도 살아 숨 쉬던 사람들이 누구이며 무슨 일로 죽음을 맞이한 것인지...
그들의 죽음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법의학자들이 하는 일이라고 했다.
매일 시신을 봐야 하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일반 사람들 같으면 제정신으로도 살기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죽음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며
그것을 통해 죽은 자와 산자 모두를 살리는 일이라고..
살아있는 자들은 거짓말을 하지만 죽은 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법의학자라는 직업은 정말로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직업인 것 같다.
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을 풀어주기 위한 사명.
그 사람이 부자이던 가난한 사람이던 죽음 앞에서는 가지고 있던 계급장도 없다.
높은 사람이건 낮은 사람이건 어느 한 사람의 죽음도 무시되지 못하게 하는 직업인 것 같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갈 때면 오히려 가족들에게 더 잘하게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더 신경 쓰게 된다는 법의학자들.
매일 마주치는 죽음 앞에서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고,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작가의 말에 존경심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