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손미향 코치님.
우연이라고 하면 우연. 필연이라고 하면 필연일 수도 있는 만남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면 계속 듣고 싶고 알면 계속 알고 싶은 분이라고 할까?
그래서 찾아서 읽게 된 책이다. 아... 역시... 이렇게 멋진 분이셨구나.
줌을 통해서만 뵈었지만, 책을 통해서도 역시나 멋진 분이셨다.
나도 일에 대해서 정말 관심이 많다. 크리스천 코칭과 더불어 커리어 코칭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다.
그리고 일년살기 모임 안에서도 능력 있는 여성분들이 너무 많기에 그분들과 더불어 많은 일들을 만들어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보면서 한 비영리 제단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일을 하신 분들이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정말 사명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하나님과의 꾸준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사명을 계속 물으셨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 갔다.
같은 여성으로서도 너무나도 멋진 손 코치님.
코칭을 통해서도 그분은 계속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말을 몇 번이고 하셨다.
이미 몸에 베이신 것 같다.
역시 하나님은 이런 분을 사용하시는구나...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사용하시는지 이분을 보고도 알 것 같다.
순종. 부모와 하나님께 순종한 코치님. 결과는 좋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우리가 말을 쉽게 하지만 의외로 하기 어려운 것이 순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나의 생각이 있고, 나의 자아가 깊게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책을 읽고 나의 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도 늘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나의 사명은 무엇인지, 나의 소명은 무엇인지... 조금 더 기도해 봐야겠다.
순종하라는 말씀과 더불어 나 자신도 쓰임 받는 도구로서 잘 성장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평생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남고 싶다.
< 다시 읽고 싶은 글귀>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지 말고 세상을 변화시키도록 '돕는 자'가 됩시다.
내게 몇 가지 확신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부모와 보스는 하나님이 정하신다는 것이다. 내게는 선택권이 없다. 하나님이 정하신 부모와 보스는 나와 잘 맞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때는 왜 저런 사람이 보스가 되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나 역시 경험한 바였는데, 명백한 것은 마음에 들지 않던 그 사람의 성향과 인품이 내 모난 부분을 고치고 깨닫게 했다는 것이다. 눈물로 기도하며 나 자신을 돌아볼 때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그들을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 믿고 무조건 순종했다. 결과는 좋았다.
과연 마케팅 PR의 세계는 단순한 홍보가 아닌 마음을 움직이고 특별한 인상을 심어주는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임을 경험할 수 있었다.
누가 시킨다고 올 수 있는 게 아니다. 숙박비용과 건축 비용을 자비로 내고 와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간다며 당당히 말하던 그들을 머무는 내내 행복해했다. 몸은 고되고 힘들어도 서로 격려하고 격하게 환영하며 기꺼이 시간과 돈, 마음을 주었다. 봉사란 돈을 받는 아르바이트가 아님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자원봉사는 돈을 받고 하는 아르바이트가 아니다. 이렇게 자비량으로 시간과 돈을 온전히 들이는 것이 진짜다.
펀드레이저는 수금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단체의 미션을 사랑하는 친구들을 찾아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펀드레이징은 프렌드 레이징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비영리 분야에서 활동하는 내내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기준이 정확히 잡히자 어떤 모습으로 일에 임해야 하는지 확실해졌다. 그것의 종착점은 해비타트의 모금 원칙은 3M, 즉 후원금 (MONEY), 현물, 자원봉사를 개발하여 미션이 있는 조직에 리더를 세우고 떠나는 것이었다. 함께 일하던 실장이 전도사였는데, 그의 꿈은 크리스천 기업을 만들고 그들이 먹고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든 후 떠나, 또 다른 기업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삶이란 혼자서 주도권을 잡는 게 아니다. 아무리 내 삶이라도 나 혼자 끌고 가는 게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소통하며 연결되어 만들어간다.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섭리라고 생각한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알게 된 사실인데, 마흔이 되던 해 내 미션이 무엇인지 기도하던 중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라는 말씀을 읽으며 깨닫게 된 진실이기도 했다. 주님도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콜라보레이션을 추구하셨음을 알았다. 꼭 그래야 했을까 싶은 상황이나, 꼭 만나야만 했을까 싶은 사람을 통해서 말이다.
팀 켈러 목사님의 [일과 영성]이라는 책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사역을 '일'로 말한다. 성경에서 창조(=일)는 갈등의 결과가 아니라 계획된 것이다. 그러기에 피조물로 창조된 우리에게 일터를 허락하신 데도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이 있다.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는 일터를 창조해 가는 계획을 주셨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일터에서 창조하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할 때, 하나님께 솔로몬이 구한 지혜를 구한다. 다윗을 이어 왕위에 오른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일천 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은 그의 제사를 기쁘게 받으시며 무엇을 원하는지 물으셨다. 그때 솔로몬은 지혜를 구하는데 영어성경을 보면 솔로몬이 구한 지혜는 wisdom이 아니다. 그가 구한 지혜는 Discering Heart 즉 분별력 있는 마음이다. dikscerning에는 분별력 있는, 안목 있는 눈치 보는 등의 의미가 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건 '식별할 수 있는 마음'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눈치를 보는 마음' 이었다. 때때로 아니 매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데, 언제나 사람의 눈치를 본다. 초기의 솔로몬은 그 마음을 구하여 하나님께 칭찬받았다.
하나님은 만나는 사람을 통해서도 영감을 허락하신다. 사람을 만나 가치를 공유하고 미션을 세어 가는 일을 하다 보면 매 순간 영감이 필요하다. 자료와 데이터가 있지만 사실에 근거한 일은 밋밋하고 건조하다. 그러나 영감이 있을 때는 따뜻하고 푸근하다.
주님은 일터에서 철저히 기도의 힘을 배우게 하셨다. 기도는 나를 낮추는 겸손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다. 세상은 더 높아지려 하고, 더 많이 가지려 하고, 힘을 더 발휘하려고 하지만, 기도는 한없이 낮아지는 자리로 나아가게 한다. 아무런 힘도 없는 부족한 나를 인정하고 모든 것을 주관하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리가 기도의 자리다. 그런데 그때 반전이 일어난다. 나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인정할 때 불가능은 가능으로 바뀐다. 그래서 일터에서 기도가 더욱 필요하다.
지금도 꽤 많은 멘티들이 물어온다. 어떤 일을 하는 게 좋을지. 어떤 직장에 들어가는 게 좋을지, 자신의 일을 잘 선택했는지를 묻는다.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하나,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주님 앞에서 '가치 있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나를 가꾸는 것은 어찌 보면 애티튜드의 첫걸음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가장 나중에 창조하신 것은 인간을 가장 사랑하셨기에 모든 환경을 만드신 후 누리게 하시려는 것이며 가장 늦게 창조된 우리는 환경의 일부로서 아름다운 창조물에 아름다움을 보탤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세월 속에 체화된 애티튜드는 기억에서 인재를 선택함에 있어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하고, 관계 가운데 살아야 할 시대에 관계를 아름답게 지속시킬 수 있는 키워드다.
한 번도 힘든 일 없이 탄탄대로를 걸었다면 지금의 나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깨지고 다듬어지면서 빚어 쓰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고난이라는 도구로 다듬어 가신다. 또 고난을 통해 우리와 더 깊이 교제하신다. 힘들지 않으면 묵상이 없다. 그래서 이제는 어려운 일이 다가오면 생각을 바꾼다. '어떤 점을 고치시려고 이 상황을 허락하셨을까?' 다행히 이제는 내공이 조금은 생겨 뭔가 문제가 생긴다 싶으면 '주님, 제가 또 뭘 잘못했나요?'라고 바로 묻는 뻔뻔한 은혜가 생긴 듯하다. 내가 그 부분을 고치면 바로 빙긋이 웃어주실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떤 직업을 갖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직업을 통해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다만 그들 중에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도 있고 거부하는 이도 있기에, 알아듣지 쉽게 우회하여 말하기도 한다. 나는 그것을 '돕는 은혜'라고 말한다. 우리는 의외로 도와달라는 말을 잘 못한다. '도와드릴까요?'라는 말에도 익숙하지 않다. 그럼에도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건 아마도 일을 허락하신 하나님이 일과 일터를 통해 누리게 하신 은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