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처음으로 완독한 책이다.
평소 워낙 책을 씹어 읽는 터라 책 한 권 읽기가 수월하지 않지만 이 작품은 출퇴근하면서 틈틈이 읽었음에도 3일만에 완독할 수 있을 만큼 쉬이 읽히는 책이다. 글은 쉽게 읽히지만 내포하는 주제나 읽은 이에게 던지는 메세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극적인 장치
연극이 시작되는 무대에 대한 묘사로 시작되는 첫 장은 읽는 이로 하여금 낯설음(우리가 희곡을 글로 읽는 경험을 몇 번이나 했을까)을 갖게함과 동시에 주인공 M의 시선에 바로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훌륭한 장치가 된다. 작품은 당장 연극 무대에 올려도 손색없을 정도의 희곡적인 요소를 담고 있어 글을 읽는 내내 마치 부조리 연극을 한 편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불안'에 관하여
이 책에서 일관되게 읽을 수 있는 정서는 '불안'이다.
이 사회를 움직이는 시스템에 대해 이해할 수 없음, 확신할 수 없음에서 오는 불안이 작품 전체에 짙게 베어 있다.
마흔 여덟 번 째 면접을 보러 가는 M은 자신의 손목 시계 시각조차 확신할 수 없는 지경이다.
- 불안은 근거도 필요하지 않았다. 만약 탈락했어야 할 내 이력서를 컴퓨터가 잘못 분류해 합격한 것이라면? 면접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회사 로고가 찍힌 다이어리 같은 걸 하나 챙겨 준 뒤 미안하지만 이만 돌아가 달라고 한다면? 바보같이 아무 항변도 못 하고 다이어리만 받아 가지고 온다면? 거기에 다음 면접 일자를 기록해야 한다면?
M은 손목시계로 시각을 확인했다. 그 시각 조차 믿을 수 없었다.(p.17)
- 내가 아무리 애써 봤자 면접엔 결국 통과하지 못할 거야. 그때처럼.(p.18)
주인공M의 불안은 마흔 여덟 번 째 면접을 떨어지면서 생긴 불안이다.
주인공 M의 시각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그가 느끼는 불안이 현재를 살아가는 나와 우리의 정서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근거없는 불안'을 자신의 존재이유로 삼는 유형,무형의 상품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라.
사회의 '훌륭한 부품'이 되지 못한 M의 불안한 심리적 상태는 에서 마흔여덟 번 째 면접에서 극적인 이야기거리가 된다.
1,2차 서류전형이나 필기시험은 나름의 정해진 기준과 점수가 있다. 피평가자가 그 평가 기준을 이해할 수 있고 결과를 수긍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면접'이라는 형식과 과정은 그 평가기준이 무척이나 애매모호하고 당시의 상황에 의존적이며 평가결과를 쉽게 수긍할 수 없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면접이 벌어지는 장소와 그 안에서의 상황은 평가를 하는 이와 평가를 받는 나의 위치와 입장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내가 상대방의 의도와 질문을 무조건 이해해야 한다. 내가 면접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말은 '그들'의 언어를 이해 못했고, '그들'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면접의 기준과 룰은 '그들'이 세운 것이므로 나는 어떻게든 그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3차 면접을 통과할 수 있으니까.
- 아무리 애써도 자기가 존재하는 곳의 시스템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면, 앞으로는 어떡해야 할까.(p.145)
신입사원 연수과정을 또 다른 평가과정으로 생각한 M은 집요하리 마치 철저하게 그들의 평가기준과 룰에 부합하려 애쓰지만 도무지 평가시스템을 이해할 수 없다.
2차면접을 통과했다는 기쁨보다는 마흔 여덟번째 면접을 겪으며 생긴 불안감이 더 컸던 탓일까.
작품 속 M의 마흔 여덟번 째 면접은 비극으로 끝난다.
희망을 잃은 세대의 절망
- 나는 어디에 있는 거죠?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요? 너무 어두워서 나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어요. 여기가 어딘지도 알 수 없어요. 그러니 그렇게 보고 있지만 말고 제발 알려줘요.(p.251)
뭉크의 <절규>를 연상케 하는 M의 마지막 독백은 나침반을 잃은 우리 세대의 절망을 대신 한다. 그 마지막 절규 앞에서 침묵하는 다수의 관객은 또 다른 우리의 이중 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새해, 故 박지리 작가를 소개해 준 사계절 출판사에 고마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