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명인간 '만수'의 지독한 아이러니
며칠을 바쁘다는 핑계로 이리 미루고 저리 미뤄 두었던 성석제작가의 장편소설 '투명인간'에 대한 개인적 감상문을 이제서야 올립니다.그 사이 같이 소설을 접한 분들의 리뷰가 하나 둘 올라왔지만 하나같이 제 생각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사실 직장에서 일은 하고 있었지만 그동안 머리의 한 켠에서는 늘 묵직한 고민을 끌어않고 혼자 끙끙대고 있었습니다.미리 고백하자면 부끄럽지만 소설 '투명인간'을 읽기 전에는 성석제작가의 이전 작품을 한 편도 접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함부로 글을 쓸 수가 없었네요.그래서 이 글은 '투명인간'소설의 텍스트중심의 단편적 소감일 수 밖에 없습니다.
소설의 후반부의 몰입감은 엄청났습니다.처음 소설의 시작을 툭 던져놓은 작가는 글을 읽는 이로 하여금 투명인간 만수의 퍼즐을 하나, 둘 맞춰가도록 유도합니다.남은 몇 조각 퍼즐을 들고 끙끙대던 독자는 마지막 몇 페이지에서 난해한 퍼즐이 순식간에 맞춰지는 희열을 갖습니다.강한 마지막 impact까지.
이 소설은 우리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또는 볼 수 없는) 투명인간 '만수'의 이야기입니다.3대에 걸친 '만수'의 이야기는 굵직굵직한 우리나라 근 현대사의 주요한 서사적 사건을 통해 등장인물간의 긴장과 소설에 대한 몰입감을 갖도록 합니다.작가의 이름 앞에 '이야기꾼'이라는 수식어가 왜 붙었는지는 이 소설만 읽어봐도 단박에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소설 속 이야기를 잠시 할 까 합니다.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지금도 계속 머리에 맴도는 풀리지 않는 숙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늘 풀리지 않고 꺼냈다 덮었다를 반복하는 고민의 지점을 이 소설 '투명인간'은 정확히 다시 끄집어내고 있었습니다.
"너, 이런 생각 하고 있었지?" " 그건, 이런거야." 하면서 술술 기막히게 풀어냅니다.
계속된 개인적 성찰과 고민, 그리고 시간의 화해의 제스쳐를 받아들여도 조금씩 풀릴지, 아니면 평생 안 풀릴지도 모를 화두를 투명인간 '만수'를 통해 순식간에 풀어냅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다 듣고난 뒤 은근히 성석제 작가의 이야기에 심산이 꼬입니다.
제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 투명인간 '만수'의 지독한 역설을 봐라. 그렇게 고생을 해가며 동생들과 주변의 인물들 뒷바라지를 했지만 그 동생중 하나는(석수) 서울국립대 법대를 나와 안기부 기관원이 됬다.그리고 그 동생은 살기위해 스스로 '투명인간'이 되지 않았는가?
사회,경제,신체적 억압을 받는 '투명인간'들은 어디에?
마지막 몇 페이지의 '만수'와 기관원이 된 동생'석수'의 대화는 이 소설을 지나가는 핵심적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습니다.그중에서도 '만수'의 이야기는 성석제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대신 전하는 것 같습니다.
- 지금 이 세상이 이렇게라도 굴러가는 것이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누군가는 노력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 그렇게 하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만수'의 말대로 지금의 이 세상이 이렇게라도 굴러가는 것은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누군가'는 노력하고 있습니다.하지만 이 말이 투명인간'만수'의 입을 통해 나오는 순간 저는 '만수'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 이 세상이 이렇게라도 굴러가는 것이 단지 '만수' 당신 같은 '투명인간'들 덕분이었을까요. 주요한 정치적 이슈나 사건, 사고, 선거때마다 묵묵히 제 할일하는 '투명인간'들 덕분에 이 세상이 이렇게라도 굴러가는 것인가요?.
제 물음에 '만수'는 이렇게 답합니다.
- 자세한 건 아들에게 물어봐야겠다. 어쨌든 뭔가를 하고 있고 해야만 한다. 투명인간도 사람이고 투명인간이 되고 난 뒤에도 보통의 세상처럼 해도 되는 일, 안되는 일의 한계가 있더라. 우리는 천사나 악마 같은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냥 인간이다. 뭔가를 바꾸기 위해서는 서로를 알고 연대를 맺고 뭔가 바꾸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교통사고가 나기 직전에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것처럼.
'만수'의 이야기에 동의합니다.
'만수'는 투명인간의 종류가 여럿 있다고 합니다. 저는 '만수'가 구분하는 '투명인간'의 종류에 사회구조속에서 폭력적으로 억압된 '투명인간'을 포함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조카'태석'이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사회,경제적, 신체적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의도적으로 시스템에서 발려내는 폭력적 업압으로 '투명인간'이 된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이 '투명인간'들은 '자살'이라는 절망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궁지로 내몰리기도 합니다.
- 아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죽는 건 절대 쉽지 않다. 사는게 훨씬 쉽다. 나는 한번도 내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내게는 아직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니까. 그 사람들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지지하고 지켜줘야 한다. 내가 포기하는 건 가족까지 포기하는 것이다. 내 생명보다 더 귀한 사람들, 어머니, 누나들, 나의 아내, 동생들, 나의 아들, 그리고 돌아가신 나의 조부모, 아버지, 형님까지 모두 그렇다.
가족에 대한 사랑, 여러분의 생각은?
'만수'는 끝까지 가족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습니다.결국 '만수'를 통해서는 제가 원하는 대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 아직 '만수'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안되어서 그럴지도 모릅니다.그때까지는 다시 해묵은 숙제로 남을 것 같습니다.
성석제작가의 '투명인간'은 독자에게 여러가지로 생각할 화두를 던져주고 있는 소설임에 틀림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