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_김애란_문학동네_2017년 06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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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춤과 움직임, 그 사이의 시차
멈췄던 사람들의 한 걸음
소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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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멈춤과 움직임, 그 사이의 시차
상실을 맞닥뜨린 사람을 본 적 있는가? 무엇인가를 잃은 사람들은 그 자리에 멈춘다. 동시에 그들의 세상도 정지한다. 야속하게도 세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움직인다. 멈춤은 점점 깊어지고, 움직임은 점점 멀어진다. 멈춤과 움직임, 그 시차 속에서 이들은 아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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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췄던 이들 그리고 걸음 하나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은 우선 잃음에 대한 이야기다.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부(<입동>), 늙은 개를 떠나보낸 아이(<노찬성과 에반>), 한 시절을 함께 한 연인과 이별하는 여자(<건너편>), 계곡에 빠진 제자를 구하려다 떠난 남편을 생각하는 여자(<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등 이들의 이별은 제각각이지만 모두 ‘헤어짐’을 겪는다. 그리고 그 순간 이들은 가고 있던 곳을, 가야할 곳을 잃는다. 방향을 잃은 이들은 멈출 수밖에 없다. 멈춘 이들은 묻는다.
“나, 어디로 가야 할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답은 ‘잃어버린’ 존재에 대한 지각이다. 어딘가에 있을 듯한, 여전히 그대로일 듯한 생각을 뒤로하고, 사라졌음을 인지한다. 이들은 잃은 것들에 대해 작은 인사를 읊조린다. 그리고 방향은 모르지만 다시 일어서 작은 한 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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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이야기
『바깥의 여름』 속 사람들은 모두 소수다. 잃는 사람은 소수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은 다수다. 소수가 느끼는 이 아픔은 공동체의 아픔이 아니다. 소수의 아픔은 하나하나 각각의 슬픔이 돼서 독자에게 다가온다.
작가는 소수의 이야기를 배척의 이야기로 전이시킨다. 소수 언어 사용자들의 언어(<침묵의 미래>), 다른 소수를 보고 웃는 늘 소수였던 혼혈 아이(<가리는 손>), 더럽고 치사한 사회에서 다수를 지향하지만 소수를 벗어나지 못하는 시간 강사(<풍경의 쓸모>) 등을 통해 다수와 소수, 그리고 소수 안에서 다시 나눠지는 다수와 소수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동안 ‘다수는 옳다’라는 무의식을 지녔던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압정 하나에 손을 찔리는 따끔함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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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그리고 지금
그동안 소수의 이야기에서 존재했던 아픔 그리고 그 아픔 뒤에 있었던 소수에 대한 배척은 이제 더 이상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4월, 유례없이 컸던 이 아픔은 소수의 아픔을 넘어 우리의 아픔이 되었다. 그리고 이 아픔이 소수의 것으로 배척되지 않기 위해, 기꺼이 아픔을 나눴다. 작가 역시 이 아픔을 피하지 않았다. 아픔을 겪은 그들과 아픔을 나눈 우리의 발걸음이 『바깥은 여름』 안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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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우리 오늘 도배 끝나면 다음주에…… …… 그 돈 헐자. 빚 갚아야지. ... 그러곤 속으로 ‘오늘은 아내가 일어나는 날이구나, 이제 막 일어서려는 참이구나……’ 생각했다. 그러니 오늘은 내게도 영우에게도 중요한 날이라고. -<입동>, pp.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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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이제 그만 울어라’며 줄기 긴 꽃으로 아내를 채찍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 나는 멍하니 아내 말을 따라 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 -<입동>, pp.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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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에 고인 땀을 보니 문득 에반을 처음 만난 날이 떠올랐다. 손바닥 위 반짝이던 얼음과 부드럽고 차가운 듯 뜨뜻미지근하며 간질거리던 무엇인가가. 그렇지만 이제 다시는 만질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을 옥죄었다. ... 찬성이 선 데가 길이 아닌 살얼음판이라도 되는 양 어디선가 쩍쩍 금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찬성과 에반>,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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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되지 못한 나머지 풍경이 하얗게 날아갔다. -<풍경의 쓸모>,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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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밖같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풍경의 쓸모>,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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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 듯 저 손, 동영상에 나온 손, 뼈마디가 굵었진 손으로 재이가 황급히 가린 게 비명이 아니라 웃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말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재이에게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가리는 손>,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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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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