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 같은 수입된 사상 내지 판단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도처에서 이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들이 나오고는 있지만 이것이 어떠한 태도에 관한 것인지 그저 "우리 서로 싸가지 없게 대화하지 맙시다" 정도인지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다. 그러던 중 유투브 스타인 조던 피터슨이 이에 관한 토론에 참전한 내용을 다룬 책이 나온다니 꽤 흥미로웠다.
12가지 인생의 법칙도 이미 휘발되어 인생에 별반 영향을 끼치진 못했지만 나름 진지하게 읽은 느낌만은 남아 있다. 그러니 토론자 4명에 대한 배경지식은 조던 피터슨 밖에 없고 아무래도 그에게 감정이입을 더 할 수 밖에 없음을 부정할 순 없다. 사실 피터슨의 책과 유투브를 몇번 본 사람이라면 대략 예상이 갈만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논파당하는 상대방을 지켜보는 건 예상보다 흥미롭다. 피터슨의 주장을 긍정하던 부정하던 그 모습자체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직선의 미학을 지켜보는 경탄이랄까?
하지만 이 책은 유투브가 아니라 텍스트만을 전체로 한 것이라 아무래도 매체의 전달면에서 특유의 개성이 경감될 수 밖에 없으며 4인 토론과 시간제약이라는 룰탓에 본래의 주제가 뜬구름 잡기 식으로 전개가 되었다. 주제 자체가 함축할 수 없는 애매모호하고 넓은 영역이라서 깊게 들어갈 수가 없었고 주변부만 맴돌다가 그에 반박하는 형식이라 산만하다는 인상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간다. 예를 들면 느닷없이 토론자가 상대적 유명인사인 피터슨을 겨냥해 인종문제를 꺼내면 별다른 제지없이 그쪽으로 끌려들어간다.
결국은 토론자들은 제대로 주제를 겨냥하지 못한다며 토론 도중 스스로 자조한다.토론내용을 요약해 보자면 찬성측은 소수자들에 대한 올바른 태도는 계속되어야 하며 그것이 진보라는 것이다. 반대측은 정치적 올바름은 교조적이거나 원리주의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며 현재의 방식으로는 우파의 먹잇감 제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브랙시트,트럼프의 태동은 우파가 잘해서 라기 보다 좌파의 잘못된 전략으로 인한 부산물이라는 것.
이쯤되면 과연 이 책으로 얻을 것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토론 전 인터뷰와 본토론과 토론 후 인터뷰는 PC에 대해 제대로 정의해 주지도 않고 합의된 것도 없으며 번쩍뜨일 만한 예리한 맛도 없이 쓸데없이 강한 메타포나 비아냥만 던지다가 끝이 난다. 토론결과에 대한 투표가 그 단면을 말해준다.하지만 마지막 번역자의 의견은 담아들을만 하다. 포퓰리즘의 태동과 미디어의 세분화로 인한 정체성의 파편화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전은 국가에 기반한 정체성을 구축했다면 현재는 오히려 내 정체성에 반하는 자국인보다 내 성적 소수 정체성을 지지하는 외국인이 더 가깝다는 얘기다.
우려되는 점은 파편화된 미디어만큼 우파는 거대한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 같고 진보적 좌파는 파편화가 될 수록 극으로 치닫는 현상이다. 단체를 쪼개고 거기서도 구별될 정체성을 찾고 다시 쪼개고 또 쪼개고 극단에는 개인만 남는다. 좌파의 미덕인 연대라는 가치의 종말을 예상할 수 있달까? 정체성 정치와 정치적 올바름은 언제까지 진보와 공존할 수 있을까? 진영 내 균열을 극복하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아님 종말의 씨앗이 될까? 지리멸렬하고 치열한 내부투쟁을 한뒤 정리가 될까? 다른 질문만 쌓여갈 뿐이다. 다른 시각에 대한 질문유발이 목적이라면 이 책은 나름 성공이고 조그만 답이라도 듣고 싶다면 이 책은 기능할 수 없다. 그리고 조던 피터슨의 팬이라 상대를 폭격하는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 이 책을 선택한다면 그냥 유투브나 한번 더 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