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지하에는 안마의자 몇 대가 놓여있는 직원 휴게실이 있다. 마땅히 같이 밥을 먹을 사람이 없을 때 나는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 그곳으로 향한다. 배가 고프기는 하지만, 삼삼오오 떠드는 그 인파속에서 혼자라는 그 무게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꼭 중학생에서 전혀 성장하지 못한 것 같다. 혼자 먹느니 굶는것이 차라리 나아 보였던 그 때. 나이가 40줄을 향해 가지만 여전히 군중들, 서로 안면을 아는 군중 속에서 혼자인 것, 아는 얼굴들 사이에서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혼자인게 부끄럽지 않아.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그래서 나는 지하실로 몸을 숨긴다.
불이 꺼진 깜깜한 휴게실에서 칸막이로 나뉜 안마의자 속으로 몸을 숨기고 나면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쉰다. 핸드폰을 켜서 인터넷 세계로 빠르게 빠져들고 나면 더이상 내가 배가 고픈지도, 내가 출근을 한 건지도,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누군가 알까? 나는 그렇게 점점 작아지고 세상 속으로 숨어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나만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이 아닐 것이다. 회사 문화는 코로나를 기점으로 하여 정말 빨리 바뀌어서, 이제는 회식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점심시간에 직원들이 함께 밥을 먹는 것조차 드문 일이 되어버린 것 같다. 나는 내가 혼자있는 것을 좋아하고 개인주의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적당히 해야 말이지, 정말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혼자 동떨어져 있게 되자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에 사무쳤다. 저자가 정의한 '외로움', 그게 절절히 느껴졌다. 내가 중요하지 않은 듯한 기분, 내가 세상에서 외면 받는 기분, 내가 세상에서 존재하는지조차 잘 모르겠는 기분. 이런 기분을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나마 내가 다니는 회사는 변화에 느린 편이어서 여전히 직원들이 고정적으로 출근하는 자리가 있고 여전히 뜨문뜨문 회식은 진행되고 여전히 같이 일하는 과 단위로 밥을 먹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변화의 물결은 정말 빨라서, 자신들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전혀 입을 열지 않는 직원들이 많다. 사생활의 벽을 강하게 둘러놓은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실시간으로 책을 보면서 돌아보게 된 점도 적지 않다. 책에서는 서로 모를 수록 적대심과 경계심이 강하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다. 굳이 먼 곳에서 따질 것도 없이, 직장에서도, 서로 잘 모르는 사이일 수록 잘못을 상대방에게서 찾기가 쉽고 상대를 비난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것은 내가 속하게 된 지 얼마 안된, 개인주의가 팽배한 이 부서에서 겪은 감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서로 잘 모를 수록 비난하고 싶고, 적대적이게 되고, 그럼으로써 나는 더 외로워지고, 그래서 상대방이 내민 손마저 경계하며 뿌리치게되는 악순환. 그것은 세계적인 흐름이고 로봇을 포함한 AI 기술의 발전은 이것을 더 가속화시킬 것이다. 저자는 말미에 희망회로를 돌리며 공동체의식을 되찾기 위한 여러가지 대응 방안을 제시하였지만, 그것은 몰려오는 거대한 파도 앞에 지어진 모래성처럼 변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인간은 결국 편리한 쪽으로 가게 되어있다는 말처럼, 결국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짓누르는 외로움을 가장 편리한 방법으로 해소시켜주는 방향, 그 방향으로 가고 있고 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외로움의 건강한 해결은 부유층의 특권으로, 그리고 하층민일 수록 외로움은 상업적 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한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수요로, 그것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그렇게 존재하게 될 것 이다.
나치즘을 추종한 사람들의 "주요 특성은 [...] 야만과 퇴보가 아닌 고립과 정상적 사회관계의 결여"임을 발견한 아렌트는 "사회에 자기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에 개인적 자아를 투항함으로써 목적의식과 자긍심을 되찾으려 한다"고 주장한다.- P69
우리가 병원에서 만난 다른 환자에게 미소 짓지 못하게 하는 것, 버스에서 다른 승객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단지 도시 생활의 분주함과 속도만이 아니며, 심지어 현대의 사회적 규범만도 아니다. 휴대전화 스크롤을 내리고 영상을 시청하고 트윗을 읽고 사진에 댓글을 다는 매 순간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과 함께 있지 않으며, 우리가 더 큰 사회의 일원임을 느끼게 해줄 다양하고 일상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회를 스스로에게서 뺴앗는다.- P154
앞서 봤듯이 이처럼 남에게 우리를 보여주고 우리 존재를 확인받는 소소한 순간이 진정 중요한 순간이다. 단순히 스마트폰을 몸에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동이 변하고 우리가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변한다.- P154
"일단 외로움이 확고한 정서로 자리 잡으면 [...] 사람들이 당신에게 말을 걸기 어려워한다. 당신도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당신은 점점 스스로에게만 집중한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함께 교류할 만한 바람직한 상대가 아니라고 느낄 온갖 종류의 일이 벌어진다." 결과적으로 당신은 성공에 필요한 도움과 자원을 얻기 어려워진다고 보고서는 설명한다.- P202
실업 문제와 관련해 국가가 제공하는 지원은 금전적인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정부는 로봇의 노동력 대체 속도를 늦추기 위해 조치를 취해야 하며, 앞서 나는 이러한 조치로서 로봇세 도입을 제안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현재 민간 부문이 직면한 어려움을 고려해 정부는 직접적으로는 대규모 공공사업을 통해, 간접적으로는 재정 정책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대량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노동을 통해(다만 존중받는 일자리여야 한다) 동료애와 목적의식, 그리고 가장 좋은 경우 공동체 정신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P369
아울러 우리는 여유를 갖고 걸음을 멈추어 더 대화할 필요가 있다. 그 상대는 이따금 서로 지나치지만 한 번도 말을 걸지는 않았던 이웃이어도 좋고, 길을 잃은 낯선 사람이어도 좋고, 외로워 보이는 누군가여도 좋다. 일이 너무 많고 바쁠 때라도 말이다. 헤드폰을 쓰고 휴대전화 화면의 스크롤을 만지작거리는 것이 평소 습관이더라도 자신을 질식시키는 디지털 프라이버시 고치를 박차고 나와 주변 사람과 어울려야 한다. - P393
우리 아이들에게 점심시간에 혼자 앉아 있는 친구에게 같이 있어주길 바라는지 물어보라고 권하라. 우리 역시 항상 책상에서 혼자 점심을 먹는 직장 동료에게 같은 질문을 건네보자. 우리 사회에서 남을 돌보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우리의 파트너에게도 우리의 직장 동료에게도, 심지어 알렉사 같은 우리의 새로운 AI 도우미에게도 고맙다고 더 자주 인사하자.- P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