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섯째아이
여름도 마찬가지였다. 두 달 동안 가족들이 모였다가 헤어지고 다시 모였다. 불쌍한 브리짓은 가족이라는 이 기적에 집착하며 여름 내내 거기에 있었다. 사실 데이비드와 헤리엇도 그랬었다. 자신의 관심이 느슨해지는 순간 어떤 은총이나 선함의 계시를 놓쳐버릴까 두려워하기라도 하듯 이 소녀가 항상 조심하면서 존경하고 더 나아가 경외하는 듯한 얼굴을 할 때, 두 사람은 그 얼굴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자신들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그들을 어색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너무 과했다....... 지나쳤다. 그들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이봐, 브리짓, 너무 기대하지는 마. 인생은 그렇지 않아!」하지만 올바르게 선택만 한다면 인생은 그럴 수도 있다. 왜 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풍부하게 가진 것을 그 소녀는 가질 수 없다고 느껴야만 하는가?- P43
루크가 설명했다. 「벤이 우리하고 아주 달랐기 때문에 데려간 거야」
그 다음날부터 가족들은 물에 불린 종이꽃처럼 피어났다. 벤이 얼마나 짐이 되었는지, 얼마나 그들을 억눌렀는지, 애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는지 헤리엇은 깨달았다. 또한 부모가 알려고 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실을 애들이 자기들끼리 말하고 있었으며 벤과 타협하려고 애쓰고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이제 벤이 떠나자 애들의 눈은 빛났고 활기로 가득 찼고 해리엇에게 사탕이나 장난감 같은 작은 선물을 갖고 와서 「이건 엄마에게 줄 거예요」라고 말했다. (중략) 그리고 데이비드도 그들 모두와, 특히 그녀와 함께 보내려고 직장에서 며칠 휴가를 받았다. 그는 그녀에게 조심스레 대했다. 다정하게. 마치 내가 아프기라도 한 것 같네. 그녀는 반항적으로 생각했다. 물론 그녀는 내내 어디선가 죄수가 되어 있는 벤을 생각했다. 어떤 종류의 죄수일까? - P104
그날 저녁 그녀는 벤과 함께 있었고 다른 아이들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데이비드는 그녀를 떠나 다른 방으로 옮겼다. 이때 그녀는 가족 생활을 위해 벤을 재교육시키면서 자신이 벤으로부터 그들을 방어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가족들은 그녀가 자기들 모두에게 등을 돌리고 벤과 함께 낯선 땅으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고 느낀다는 것을 그녀도 알았다.- P121
「전 제 자신을 비난하지 않아요」헤리엇이 말했다. 「당신이 그 말을 믿기를 기대하지 않지만요. 하지만 이건 정말 불쾌한 농담이에요. 난 벤이 태어난 이후 줄곧 벤 때문에 비난을 받아 온 것 같아요. 난 죄인처럼 느껴요. 사람들이 내가 죄인처럼 느끼도록 만들어요」이렇게 불평하는 동안 ㅡ 신랄했지만 헤리엇은 목소리를 낮출 수 없었다 ㅡ 쓰라린 세월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길리 박사는 책상에 앉아 쳐다보았다. 「이건 정말 희한해요. 이전에, 아무도 그 어떤 사람도 나에게 <네 명의 정상적이고 똑똑해 보이는 멋진 아이들을 갖다니 넌 정말 똑똑하구나! 그 애들은 모두 네 덕분이야. 훌륭한 일을 해냈어, 헤리엇!>이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어요. 아무도 이제까지 그런 말을 안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아요? 하지만 벤에 대해서는 ㅡ 전 그저 죄인이죠!」- P140
그 동네의 현대식 중학교가 벤을 받아준다는 유일한 학교였다. 벤이 중학교에 가기 직전에 함께한 여름 휴가는 거의 과거의 휴일과 흡사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했다. 「그 불쌍한 사람들. 우리 거기에 가요, 적어도 일주일이라도......」 불쌍한 데이비드......항상 그런 수식어가 붙는다는 것을 헤리엇은 알았다. 때때로 불쌍한 헤리엇, 그러나 그 경우는 드물었다. 대개는 항상 무책임한 헤리엇, 이기적인 헤리엇, 미친 헤리엇...... .- P158
벤이 살해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은 여자, 그녀는 입 밖에는 내지 않았지만 마음 속으로 이렇게 격렬하게 자신을 옹호했다. 자신이 속한 사회가 신봉하고 지지하는 가치관으로 판단해 볼 때 그녀는 벤을 그 장소에서 데려오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살해당하는 것으로부터 그 애를 구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기의 가족을 파괴했다. 그녀 자신의 인생에 해를 끼쳤다....... 데이비드의 인생...... 루크와 헬렌과 제인, 그리고 폴의 인생에도. 특히 폴의 경우가 가장 나빴다.- P158
그녀는 그를 통하여 인간성(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던 간에)이 무대를 차지하기 수천만 년 전에 정점에 도달했던 종족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꼈다. 벤의 종족은 위쪽 땅 위에서는 빙하시대가 진행되는 동안 땅속 동굴속에 살면서 어두운 심연의 강물로부터 생선을 먹거나 냉혹한 눈 위로 몰래 나가 곰이나 새를 잡았을까? 아니 사람들, 자신의(헤리엇의) 조상들마저도 잡았을까? 그의 종족이 인간 조상들의 여인들을 강간했을까? 그리하여 새로운 종족을 만들었고 그 종족은 번성하다가 사라졌는데 어쩌다 그들의 씨가 여기 저기 인간의 모체에 남겨졌다가 벤처럼 다시 나타나는 것일까?(그리고 아마도 벤의 유전자가 태어나려고 애를 쓰고 있는 어떤 태아 안에 이미 있는 것은 아닐까?)- P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