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심리학자들이 ‘휴리스틱(heuristics)‘이라고 부르는 지름길을 택한다. 이는 한꺼번에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처리할 필요가 없도록 세상을 범주화해서 인식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이 틀을 상호작용하는 사람과 자신 사이에 투명 필름처럼 덧입힌다. 다시 말해 자신의 성장 환경에서 습득한 편견을 바탕으로 상대가 어떤 사람일지 짐작한다. 우리는 남성을 사회 지도자와 연결 짓고, 여성을 가사와 연관짓는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틀을 사용한다.- P12
사람들은 여전히 이공계 과목을 공부하는 여학생 수가 충분하지 않다고 우려를 표한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사람이 여학생의 뇌는 수학과 과학을 공부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학생의 인문학 성적이 부진하다고 안달복달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은 OECD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 조사한 72개국 중 단 한 국가도 빠짐없이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보다 훨씬 앞섰다. 이들 국가에서 여자아이의 수학 능력은 평균적으로 남자아이와 같았고, 과학 능력은 약간 뒤떨어질 뿐이었으며, 읽기 능력은 훨씬 앞섰다. - P42
편향은 무의식적일 때가 많고 강물의 흐름처럼 눈에 보이지 않기에 그 존재를 부정하고픈 유혹에 빠지기 쉽다. 자기에게 편견이 있음을 인정하려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남성들은 슈나이더와 트랜스 여성들처럼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남성으로서 특권을 누려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편향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바레스가 <<네이처>>에 실린 영향력 있는 논문에 썻듯이 말이다.
"성차별이 자기 경력에 해가 되는 경험을 직접 해 보지 않는 한 사람들은 성차별의 존재를 도무지 믿지 않는다."- P72
노르웨이 사회학자 외스테인 훌터는 「남성에게 무슨 득이 된다는 거지?(What‘s in It for Men?)」라는 제목의 훌륭한 논문에서 성평등 수준이 높은 유럽 국가 그리고 미국의 주에서 남성이 누리는 혜택을 열거했다. 성평등 지역에 사는 남성은 이혼율이 낮았고, 폭력 사건에 의한 사망률이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들 지역에서는 남성 자살률과 여성 자살률의 격차가 적었다. 더불어 배우자나 자녀를 폭행할 가능성도 낮았는데, 이는 자녀가 성장한 뒤 폭력을 저지를 위험도 줄여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성들의 행복도가 더 높았다.
"성평등 수준이 높아지면 여성은 혜택과 특권을 누리지만 남성은 지금껏 누리던 혜택과 특권을 빼앗긴다는 것이 가장 흔한 오해예요."
홀터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성평등 수준이 높은 지역에 사는 남성은 다른 지역의 남성에 비해 행복할 가능성이 두 배 높았고, 우울할 가능성은 절반 밖에 안 됐다. 이 효과는 계층이나 소득 수준과는 관계없었다.- P112
지미 카터가 옳았다. 거의 모든 종교에서 끊임없이 여성을 차별하는 것은 여성이 희생되더라도 우월한 지위를 고수하기로 결심한 남성들의 이기심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기이하게도 이기심은 바로 황금률이 금기시하는 죄이다. 모든 종교는 이기심이 나쁘다고 가르치는데, 종교 기관은 권위 있는 자리에 여성이 오르지 못하게 막으면서 권력을 유지하려는 남성들의 이기적인 소망을 지켜준다. 이런 현실을 바꾸지 않는 한 계속해서 낡은 고정관념이 신자들의 마음 속을 파고들 것이다.
그러면 남성은 여성이 열등하고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라는 믿음을 정당화할 것이다. 게다가 그런 믿음은 남성에게 득이 된다. 그리고 여성은 종교의 가르침과 세상이 불합리하다는 자각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할것이다.- P293
"백인 여성은 흑인 인권 운동이 일어났던 시기부터 백인 남성과 함께 공화당에 투표해 왔어요. 이건 어찌 보면 인종과 관련된 문제에요. 하지만 가부장적 거래와도 관련 있어요. ‘가부장적 거래‘란 여성이 가부장제 내에서 개인적으로 얻는 이득을 위해서 자기가 속한 여성 집단의 정체성이나 이익을 희생시키는 것을 말해요. 공화당을 지지하는 여성에게 가부장적 거래란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현실과 관련이 깊어요."
헬드먼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특히 교육 수준이 낮은 여성 중에는 권력을 추구하는 여성을 위협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여성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의 것으로 규정된 권력자의 자리를 추구한다는 건 전통적인 성 역할에 기소장을 제출하는 행위나 다름없거든요. 흔히들 가부장제를 지탱하는 건 남성이라고 생각하지만, 사회의 성별 규범을 후대에 전달하는 건 결국 주부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이에요."- P306
그렇다면 이러한 증오심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이처럼 유해한 여성 혐오의 근원은 무엇인가? 우선 이런 현상이 대체로 남성의 ‘남성성이 위태롭다.‘고 느끼는 남성들이나 자신감이 굉장히 부족한 소수의 남성에 국한된 현상이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들은 여성이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고 느낀다. 특히 자신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여성이나 남성의 영역을 침범하는 여성 때문에 자신의 남성성이 위태롭다고 느낀다. 그들 중 일부는 섹스 상대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소위 ‘인셀(비자발적 독신주의자)‘로, 이들은 자신을 거절한 여성을 탓한다.- P383
「감성적인 남성(Men:An investigation into the emotional male)」의 저자 필립 호드슨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여성 혐오와 가장 관련 높은 부류는 자신감이 부족하고 걱정이 많은 마초들이에요. 거세는 말 그대로는 남성 성기를 잃는다는 뜻이지만, 더 광범위하게는 남성성의 상실을 의미하죠. 그러니까 여성이 남성보다 더 큰 권력을 갖는 것, 자기 생각에 여성에게 허용돼야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권력이 허용되는 것, 여성이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영역에서 권력을 갖는 것이 문제라고 보는 거예요. 이런 부류의 남성은 힘 있는 여성을 대할 때 역할 모델로서 동경하거나, 명령을 내리는 상사로서 순응하거나, 독단적으로 군다며 짜증을 내는 게 아니에요. 여성들에게 위협감을 느끼는 거에요. 그들이 느끼는 위협감에는 분명 성적인 요소가 깃들어 있어요. 그들은 내심 이런 상태에서 자신이 성적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해요.- P384
"남성의 인격에 분열이 생기는 것은 남자아이가 어머니와의 동일시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할 때 어머니와 동일시하던 정체성을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이 정체성을 억압하고 부정하고 억눌러도 어머니를 향한 갈망과 의존성과 짝사랑은 늘 내면에 살아 있죠. 남성성 스펙트럼의 극단으로 갈수록 남성은 여성을 두려워해요. 그래서 여성을 통제하는 일이 중요해지죠.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 바로 자신의 남성성과 억눌린 갈망, 채워지지 않은 의존성, 취약성을 여성 때문에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P387
필립 호드슨은 일부 남자아이와 남성이 소위 ‘자궁 선망‘에 시달린다고도 말했다. 호드슨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남자아이는 누나나 여동생과 비교할 때 자신에게는 생물학적으로 부족한 점이 있다는 걸 깨닫게 돼요. 여자아이는 자라서 과학자나 왕립학회 총장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의 뒤를 이을 아기를 낳고 어머니가 될 수도 있어요. 아기를 낳는 건 물리적 창조 행위고, 성취감이 따르는 일이죠. 반면 남자아이는 아기를 낳을 능력이 없기 때문에 창조의 신비에서 배제되죠. 진화 심리학의 표현을 빌리자면, 남성의 정자는 여성의 난자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남자아이들은 테스토스테론의 이끌림에 따라 세상에서 자아를 실현하고 자기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서 어떤 형태로든 권력을 추구해요. 후세에 이름을 남기고 자기가 존재했음을 입증할 방법은 그것뿐이니까요."- P388
그리고 호드슨은 이런 말도 했다.
"제가 보기에 남성 성기를 선망하는 건 여자아이가 아니라 남자아이예요. 남성들은 침대 안팎에서 끊임없이 실력을 겨뤄요. 서열에 집착하고 임원용 주차 구역을 차지하려고 전전긍긍하죠. 점수를 매기고 기록해 두고요. 남성은 여성의 생물학적 창조성을 의식하든 못 하든 부러워하고 분하게 여겨요. 바깥세상에서 경쟁으로 내몰리고 여성에게 거절당할까 봐 겁에 질려 있어요. 제임스 본드나 슈퍼맨이나 사이먼 코웰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젊은 남성에게는 임신할 능력도 주어지지 않죠. 그래서 남성은 지구라는 행성, 그들의 형제들 그리고 자신을 다스리기 위한 힘겨운 여정을 떠나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자신과 같은 영역에서 발언권을 주장하는 여성의 노력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어요."- P389
로라 베이츠는 악질적인 여성 혐오 메시지를 증식시키는 남초 커뮤니티‘매노스피어(manosphre)‘를 깊이 조사한 후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Men Who Hate Women)』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녀는 남초 커뮤니티에서 공유되는 메시지가 10대 남자아이들에게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이 커뮤니티가 11세 정도밖에 안 된 어린 남자아이들을 굉장히 영리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모집하고 교육한다는 점이었어요. 이들은 바이럴 유튜브 영상에서부터 인스타그램 밈, 커뮤니티 구성원에게 보내는 슬라이드쇼, 보디빌딩 웹사이트, 게이밍 생방송 스트리밍, 개인 채팅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채널을 통해 10대 남자아이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요. 이들은 페미니스트들이 정부의 핵심에 파고들어 백인 남성을 적극적으로 차별하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해요.(중략)- P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