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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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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리자베스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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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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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까지 발현되는 인간중심 사고방식과 상상력의 한계



SF장르로 분류된 콘텐츠를 가만히 보다보면, 약간의 상상력만 가미되어 있어도 SF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 안에는 정말 한 범주에 묶을 수 없는 다양한 작품들이 있어서 그 중에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고르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에 기본적으로 흥분하지만, 이런 류의 작품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작품이냐 하면, 인간을 닮은 지적인 외계생명체가 등장하는 종류이다.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뚜렷하다. 나는 그 인간의 시혜적인 마인드가 싫다. 이미 일상 생활속에서, 수많은 매체에서 접하고 있는데 그걸 내가 좋아하는 장르에서까지 그 기만적인 모습을 굳이 보고 싶지 않다. 한편으로는 작가의 한계가 뚜렷이 보여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구체적으로 따져보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외계 지적인 생명체가 인간을 웃도는 지적능력 또는 인간은 가늠할 수 없는 능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발전수준이 인간보다 뒤쳐졌다는 설정이 너무 웃기고 기만적으로 보인다. 작중에서 오필리아는 <종족>의 말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지만 <종족>의 파란망토는 오필리아가 놀랄 정도로 정확히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고, 그들 <종족>은 인간의 발명품을 이해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별다른 가르침 없이 그들은 기계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소통하고, 습득한다. 이것부터가 굉장히 모순적이지 않은가? 지적인 능력은 인간을 상회하고, 인간은 알 수 없는 자기들끼리 거의 초능력에 가까운 소통능력을 지녔는데 인간보다 발전 수준이 낮다는 사실이?? 굉장히 기만적이라 할 수 있다. 참으로 웃긴 점은 대개 이런 지적생명체를 구상해내는 작가들은 그들에게 뭔가 인간이 가지지 못한 가치를 부여한다는 거다. 예를 들어 평등이나 존중이나.. 뭐 그런 가치들 말이다. 이런 가치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내말은, 이렇게 이상적이고 능력도 인간을 상회하는 외계생명체가 어떻게!! 인간보다 발전 속도가 더뎌서 더 우매한 생명체인 인간이 이들에게 가르침을 선사하는 그런 우스꽝스런 그림이 그려지냐 이말이다. 우리로 치환해서 보자면, 우리보다 추론능력이 떨어지는 침팬지가 발명해낸 뛰어난 문명을 우리가 감탄하며 침팬지들로부터 문명을 배우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얼추 그림이 비슷할것이다. 우습지 않은가? 

이런 면에서 나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읽을 때도 약간의 조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누구냐 그... 갑각류를 닮은 외계생명체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결국 눈이 보이지 않고 방사선인가...할튼 우주의 필수 요소를 이해하지 못해 그들의 우주발전 기술에 결함을 보였다. 그걸 주인공은 보완해주며 가르쳐줬고. 이렇게 우주에서조차 우리가 최고로 발전했을거란 그 근거없는 자신감에 나는 상당히 거부감이 든다. '지구에서도 우리가 최고의 지적 생명체이니 우주에서도 마찬가지일거야! ' 하는 생각이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드러나는게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외계지적생명체의 등장이 아닐까 한다. 웃기는 점은 이런 그 인간 스스로에 대한 오만함에 대한 보완책인지 뭔지 작가들은 대체로 이런 외계생명체에게 우리에게 없는 특수한 능력과 사상적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작품이 더 우스꽝스러워지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금 말하지만 인간보다 지적능력이 우수한데 인간보다 발전이 더디다고 상상할 수 있는가? 이건 마치 아이큐 50인 사람으로부터 아이큐200인 사람이 가르침을 받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큼이나 어이없고 모순적인 상황과 다름없는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이 아무런 울림이 없었던 것은 아니긴 했다. 결국 작가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가치, 늙고 나이든 여자를 천대하는 것에 대한 반박과 그 후세대를 양육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 등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외계생명체를 도입한 부분이 썩 내키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좀더 아쉬운 부분도 있다. 작가들은 대체로 SF란 장르를 통해서 소외된 계층에 대한 가치와 이들에 대한 환기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가치의 중요성에 비해서 그닥 내용이 신선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도는 좋았다고 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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