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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는 일상
  • 가해자들
  • 정소현
  • 13,500원 (10%750)
  • 2020-10-25
  • : 1,587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집살이는 대물림된다는 얘기가 있다. 시집살이를 호되게 당한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었을 때, 똑같이 새로 들어온 며느리를 못살게 군다는 얘기이다. 이는 비단 시집살이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긴 하다. 가정폭력을 당하며 자라온 아이가 커서 부모가 되었을 때, 똑같이 폭력적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거나, 아니면 어느 집단에서건 끊기지 않는 '군기문화' 등도 맥락을 같이한다. 재미있는 점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 이러한 상황 속에 속한 개인에게 본인의 이야기를 하라고 한다면, 백이면 백 본인은 결백한 피해자라 호소할 것이며, 그 스스로도 스스로가 억울한 피해자라고 굳건히 믿어 의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작중 윤서의 어머니는 밝고 싹싹하며 애딸린 이혼남하고도 결혼하는 것도 모자라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산 아주 비범한 인물이지만 결국엔 시어머니의 냉대와 남편의 무관심에 견디다 못해 병을 얻고 만다. 들리지 않는 소음에 시달리는 불치병이다. 이 병은 자신 스스로를 갉아 먹는 것도 모자라 주변인들까지 좀먹어버리고 마는데, 자세히 보면 그들은 하나같이 외로움에 시달리던 이들이다. 


책에는 가해자이지만 알고보면 그도 피해자였던, 가슴답답하고 외로운 이야기를 지닌 인물들이 계속 등장한다. 시발점이었던 1111호 윤서 엄마는 애딸린 이혼남과 결혼하는것도 모자라 시어머니도 모시고 살았지만 수년 간 시어머니의 냉대와 남편의 무관심에 점점 병들어갔다. 1112호 옆짚 여자는? 육아오 가사에 동참하지 않고 싱글때처럼 저 편한대로 사려는 이기적인 남편때문에 홀로 직장을 다니며 아이를 육아하다가 결국 1111호처럼 병이 생기고 말았다. 그렇다면 소름끼치던 1111호 남편의 엄마, 그러니까 1111호 며느리를 냉대하던 시어머니는? 작중에서는 소름끼치고 이기적이고 무정한 인간으로 나왔지만 그가 그렇게 된 데에는 그 또한 젊었을 시절, 모진 시집살이를 겪고 남편의 냉대에 속앓이를 했을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쯤되면 여성의 삶이란 무엇인가, 반문하게 된다. 


내가 겪은 것을 꼭 되갚아 주어야만 하는가. 



나는 집에 혼자 남았다. 이렇게 되고 보니 엄마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외로움이 만들어낸 실체도 없는 소리가 엄마의 삶을 잡아먹었다. 나도 머지않아 그것에 먹힐 거다. 옆집 아줌마는 무슨 소리를 듣는 건지 엄마처럼 계속 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P112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피해자라고 말했다.
이상하게도 가해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 상황이 무서워 그곳을 영영 떠났다.
- 작가의 말-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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