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읽었던 러시아 소설 중 보기 드물게 마음 편한 결말을 맞은 소설이 아닐까싶다.
아니, 물론 밝은 내용의 러시아 소설도 많겠지마는, 유명한 소설이 일단 죄와벌, 안나카레니나 이런 소설이다보니...
어쨌든 초반에 지역과 사람이름에 익숙해 지느라 약간의 장벽이 있었지만 중후반부부터는 아주 술술읽혔다. 주로 스토리 위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비교적 단순하여 읽는 데 복잡하진 않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든다. 주인공의 입장에서, 좀 넓게 보자면 러시아 기득권 귀족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히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지만, 서민의, 평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떨까? 어느 시대에건 반란은 이유없이 일어나지 않고, 그렇게 들고 일어난 반란이 득세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시대가 평민들에게 살기 힘든 시대라는 것을 의미한다. 작중 반란을 일으킨 푸가쵸프는 몇 요새를 점령하며 모스크바에까지 진군한다. 한차례 진압을 당한 뒤에도 그는 죽지않고 살아남아 또 한번 반란을 꾀한다. 결국 잡혀 처형당하지만, 글쎄. 일개 농민인 푸가쵸프가 개인의 능력만으로 그렇게 득세할 수 있었을까? 아마 그가 전하는 이야기, 그가 약속하는 미래가 일반 농민들, 살기 힘든 군인들에게 무척이나 달콤한 이야기로 들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편승은 곧 처참한 현실의 방증이었으리라.
그러나 여전히 기록은 기득권의 몫이라 귀족의 입장에서 쓰인 이야기가 이렇게 전해지고, 예카테리나시대였다면 농민에 가까운 나는, 푸가쵸프가 아니라 오히려 귀족의 입장에 이입해 그의 처형에 마음을 쓸어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