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이 던진 고뇌라는 질문
무척이나 동양적인 제목에 이끌려 책을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고타마 싯다르타, 즉 부처에 대한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고타마가 등장하긴 하지만 그건 아니었고, 동명이인의 싯다르타라는 자의 삶의 여정을 그린 소설이었다. 작품 해설을 보니 해세 본인의 삶이 굉장히 투여된 자전적 소설이라는 이야기가 얼핏 있었다. 그 말은 결국 이 책 또한 삶의 고뇌에 대한 절대 진리라기보단, 헤르만 헤세가 본인의 삶을 통해 찾아낸 본인만의 대답을 그려낸 것이란 얘기다. 아니 사실, 고뇌에 대한 절대 진리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하다. 각자의 생이 던진 질문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을 만들어 가는 것이 삶이니까. 모두에게 통용되는 진리란 그 자체로 진리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
굉장히 공감가는 부분도 있었고 아리송한 부분도 있었다. 그렇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말은 불신하고 사랑할 수 없지만, 사물들은 사랑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싯다르타의 말을 듣고 있자니, 결국 나도 비슷한 결론을 내리고 있지 않나 싶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한참 고민하던 때, 잘 읽지도 않는 자기계발 서적까지 들추어가며 생을 고민하던 때, 수많은 명강사의 가르침과 명언들을 핸드폰에 저장하며 흔들리던 때를 보내다가 문득 든 생각이 이 모든 것은 결국 흩어져갈 '말'에 불과하고 생은 현재에 있다는 것이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명언들, 격언들, 가르침들을 꽁꽁 가슴에 묶어두고 싶었지만 그것들은 결국 살짝 구기면 바스러져버릴 말들이었고 중요한 것은 내 생에 대하여 내가 세울 진리이자, 태도였다.
이것은 내 삶이기 때문에, 그것은 나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삶의 원칙을 세우게 되면, 그 외의 것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이다. 스스로에게 솔직한 태도로, 내가 가장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원칙을 세운다면, 여러 명언을 가슴에 품지 않아도 충분히 스스로의 삶을 충만하게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것은 참으로 단순하고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결국 방황의 시간이 없었다면 그만큼 스스로에게 설득력과 진실함을 지니지 못했을 나의 결론이다.
현재는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모종의 약소한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삶이 크게 변화하지는 않는 듯싶다. 그저 덜 신경쓰고, 덜 흔들리고, 쉽게 기뻐하고, 쉽게 털어내려 노력하고 있다. 이 삶이 언제까지 얼마큼의 평온함을 내게 가져다줄진 모르겠지만... 부디 나도 생의 쇠락, 나의 쇠락 뿐만 아니라 모든 삶의 쇠락을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는 상인들이 장사하는 것을, 귀족들이 사냥하러 가는 것을, 상을 당한 이들이 고인들 때문에 통곡하는 것을, 기생들이 몸을 파는 것을, 의사들이 병자들을 위해 애쓰는 것을, 승려들이 파종하는 날을 정하는 것을, 연인들이 사랑하는 것을, 어머니들이 자식들에게 젖을 먹이는 것을 보았다. 그가 보기에 모든 것이 가치 없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고, 모든 것이 악취를 풍겼다. 모든 것이 거짓의 악취를 풍겼으며, 모든 것이 의미 있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처럼 보였다. 그 모든 것은 어쩔 수 없이 썩어 없어질 것이었다. 세상은 쓰고, 인생은 번뇌였다.- P21
오, 고빈다! 나는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허비해 왔고, 아직도 그것을 끝내지 못하고 있네. 우리가 ‘배움‘이라고 부르는 그런 일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네. 오, 나의 친구! 오직 깨달음이 존재할 뿐이지. 그것은 어디에나 있네. 그것은 아트만이야. 그것은 내 안에 있고, 자네 안에 있고, 모든 존재 안에 있네. 그래서 나는 깨달음 앞에서는 알고자 하는 것, 배움보다 더 사악한 적은 없다는 것을 믿기 시작했네.- P29
이 세상이 선한지 악한지, 이 세상에서의 삶이 괴로운지 즐거운지는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겠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본질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단일성, 모든 사건의 연관성, 크고 작은 모든 것이 동일한 흐름과 법칙, 생성과 소멸되는 일에 포함되어 있다는 바로 이것이 당신의 고매한 가르침에서 밝게 드러났습니다.- P46
"저는 손님께 뱃삯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선물을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손님은 다음번에 제게 선물을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싯다르타가 명랑하게 말했다.
"물론이지요, 저는 모든 것이 다시 돌아온다는 것도 강으로부터 배웠습니다. 사마나 당신 또한 다시 돌아오실 것입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당신의 우정을 뱃삯으롱 하겠습니다. 신들께 제사를 올릴 때면, 잊지 말고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P65
싯다르타는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웠고, 많이 들었을 뿐 별로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카말라의 말을 기억하면서, 그는 결코 상인에게 종속되지 않았다.- P87
"나도 당신과 마찬가지입니다. 당신 또한 아무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사랑을 기교로써 행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어쩌면 사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소인배들은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비밀일 것입니다."- P97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을.‘
그는 생각했다.
‘모두 스스로 맛보는 것은 좋은 일이야. 속세의 쾌락과 부가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이미 어렸을 적에 배웠다. 나는 그것을 오래전에 알았지만,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것을 제대로 체험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것을 단지 기억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마음으로, 위로 알고 있다. 내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P127
아니, 진실로 구하는 자, 진실로 찾고자 하는 자는 아무런 가르침도 받아들일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이미 찾은 자, 그 사람은 그 모든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고, 모든 길, 모든 목표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영원 속에 살면서 신성한 것을 호흡하는 수천의 다른 모든 사람들과 결코 다를 바 없었다.- P144
당신이 아들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의 아들만은 번뇌와 고통과 환멸을 겪지 않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당신의 아들이 그런 것들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당신이 아들을 위해서 열 번을 죽는다고 해도, 그것으로 아들의 운명을 조금도 덜어 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P158
그는 카마스바미를 보았고, 하인들, 떠들썩한 술자리, 노름꾼들, 악사들을 보았고, 새장 속에 갇힌 카말라의 쏙독새를 보았고, 그 모든 것을 다시 한 번 살려 냈고, 윤회를 호흡했고, 다시 한 번 늙고 피곤했으며, 다시 한 번 혐오감을 느꼈고, 다시 한 번 자신을 없애고 싶은 욕망을 느꼈고, 다시 한 번 그 성스러운 ‘옴‘의 힘으로 자신을 치유했다.- P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