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 머나먼 중남미 어딘가에 있는 나라, 축구를 잘한 것 같은 나라
사전 정보는 이게 전부다.
<휴전>을 읽으면서 무심결에 카뮈의 <이방인>이 떠올랐다. 우루과이와 알제리. 분명 다른 대륙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풍기는 느낌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알제'에서 일하는 뫼르소와 '몬떼비오'에서 일하는 마르띤.
물론 몬떼비오의 태양은 알제의 태양처럼 뜨겁지않고 따뜻해서 죽음을 향한 네번의 노크소리를 들리지 않는다.
다행히 마르띤은 뫼르소보다 더 많은 권태를 참아내고 정년퇴직을 앞둔 쉰 살이 되었다.
쉰 살까지 산 다는 것도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죽어가는 시간의 전쟁이 종전을 향해갈 무렵, 잠시의 휴전이 찾아온다.
늘 그렇듯, 세상일은 참 뻔히 흘러가는 듯하다가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곤 한다.
어제와 오늘이 별 반차이가 없던 어느 날, 갑자기 내일이 기대되는 하루들이 선사된다.
그것이 휴전이다.
삶이라는 전쟁에서의 휴전.
1월 26일 일요일.
28일,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내가 마침내 기도를 하게 되었다.
"이 상태가 지속 되기를" ... 그러나 끝내 하느님은 매수할 수 없는 존재임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7월 6일엔 여전히 이렇게 쓰고 있다. '문득 난 깨달았다. 그 순간이, 일상의 그 작은 조각이 지고의 축복임을, 그것이 행복임을.' 그러나 곧이어 경계의 말을 덧붙였다. '그 절정은 섬광처럼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가는 찰나에 불과하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 순간을 더 길게 늘일 권리는 없다' ... 마음 속으로는 그 순간은 확장할 수 있으며, 절정은 하나의 점이 아니라 끝없이 펼쳐진 고원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어쩌다가 참전하여, 전쟁을 치르는 것이 일상이 되다가 어느날 갑자기 휴전을 맞이한다면 어떨까?
처음엔 "정말 휴전이 왔는가", "왜 갑자기 휴전이 찾아왔을까?"라는 의구심이 들다가도 휴전이 주는 편안함에 서서히 물들 것이다.
휴전의 어느 날, 무의미하던 도시는 갑자기 의미를 갖게된다.
8월 27일 화요일.
여행을 한다 해도, 이곳을 떠나 풍경과 기념물, 도로 그리고 예술품에 경탄할 기회를 갖는다 해도, 그 무엇도 '사람들'만큼 나를 매혹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는 것, 도처에서 행복과 비통함의 표정을 확인하는 것, 그들이 자신들의 덧없음, 자신의 하찮음, 자신들의 삶을 의식하지 못한 채 거침없이, 심지어는 울타리에 갇혔다는 의식도 없이, 그리고 자신들이 울타리에 갇혔다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고 얼마나 서두르는지를 알아채는 것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지금껏 나는 마뜨리스 광장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틀림없이 그 광장을 수도 없이 가로 질렀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분수대를 우회하려고 방향을 틀 때마다 걸핏하면 욕설을 퍼부었을 것이다. 물론 전에도 분명 분수대를 본 적은 있다. 하지만 걸음을 멈추고 그것을 관찰하고 느끼고, 그 특징을 끄집어내 꼼꼼하게 검토해본 일은 없다. 위압적이고 견고한 영혼의 시청사와 깔끔하게 단장된 위선적인 얼굴의 대성장, 힘없이 흔들거리는 나무들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하나의 확신, 즉 내가 이곳, 이 도시에 속해있다는 결정적인 확신에 이른 것 같다.
이런 생생한 묘사로 하여금, 몬떼비오라는 도시가 살아난다. 거리를 걷는 주인공과 그 주변인물들이 도시를 다니면서 도시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우루과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아마 이 책을 읽고난다면 몬떼비오에 다녀온 것만 같은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2월 3일 월요일.
그녀는 내 손을 잡곤 했는데,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를 기꺼이 받아들인다고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곤 했는데, 그녀와 입을 맞추고 잠자리를 함께하는 것보다, 그 무엇보다 그게 사랑이었다.
바로 사랑이 휴전이었던 셈이다. 새로운 사랑으로 새로운 희망과 삶의 의미를 찾았던 마르띤.
드디어 소설 말미에서 그는 명예퇴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명예퇴직과 함께 더 이상 일기를 쓰기 않기로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그래서 더이상 그가 어떻게 살아갔는지는 알 수 없다.
모든 인생사가 그러하듯, 죽음이라는 종전이 있기까지는 우리는 수없는 전쟁을 치뤄야한다. 젊을 때의 열정적이고 소모적이었던 단기전, 나이가 듦에따라 맡게되는 무기력한 장기전 그리고 이따끔식의 휴전들. 그런 과정이 파도처럼 밀려오다보니 점점 감각은 마비가 되가는 것 같다. 주인공이 다시 삶의 의미를 찾아갈때, 즉 마비가 풀릴 때 느끼는 생생한 감정들은 '찰나'에 느낀 것이었을지라도 오랜 시간 지속될 것이다.
인생은 마치 마취약을 맞고 안맞을 때 같다. 휴전은 마취된 우리의 상태를 잘 보여준다. 곧 마취가 풀릴 걸 알면서 마취의 상태때 만큼은 뭐든 걸 할 수 있다고 믿으며 교만해졌다가 서서히 다시 겸손해지는 그 과정.
멈춰진 일기, 그 이후... 는 어쩌면 마르띤이 아닌 우리가 채워야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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