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J & 요니 P 알아?
응, 케이블에서 봤어. 진짜 커플인가?
친구들과 수다떨면서 나왔던 대화.
그리고, 예상치도 않게 그들의 책을 읽게 되었다.
Two heads are better than one.
둘이라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혼자라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패션디자이너라는 일은 화려해 보이지만 사실 몹시 고된 일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보는 건 완벽한 콘셉트를 따라 만들어진 무대 위, 화려하게 메이크업을 한 모델들이 디자이너의 옷을 입고 런웨이를 걷는 그 순간이다. 그 컬렉션을 위해 위해 콘셉트를 잡느라 세상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던 날들이나, 밤새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디자인을 하고 옷을 만들던 시간은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만들어 세상에 내보이고 평가를 바는 일은 외롭고도 고독한 작업이다. 그만큼 불확실하기 때문에. 아무리 무대에 오르기까지 모든 걸 쏟아부어 만들어도 사람들이 한번 봐줄지, 좋아해줄지 옷을 만드는 순간 우리는 모른다. 모델들이 우리 옷을 입고 걷는 순간에도 우리는 알 수 없다. 그 불확실함을 견디며 그저 믿을 수밖에. 그런 일이다. 밖으로 보이는 만큼 그보다 많은 시간을 치열하게 준비한다. 부딪히고 깨지는 일들이 부지기수다. 혼자였다면 어디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우리가 함께했기 때문에 서로에게 의지하고 좀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나누며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올 수 있었다. yoni
'Two heads are better than one.' 이 문장을 보는 순간, 책 앞부분에 쓰여 있던 문장임을 깨달았다. 책으로 만나기 전, 케이블 채널에서 본 스티브와 요니 그들은 정말 하나로 보였다. 개개인이 아닌 하나로 보이던 그들이었는데 책으로 보니 ‘스티브’의 삶, ‘요니’의 삶을 알게 되었다. ‘스티브’는 데이트 신청을 ‘동물원에 가자’고 하는 남자구나. 노랑 머리에 짙은 아이라인의 ‘요니’는 속은 나처럼 여린 여자구나. 등, 그래서 더욱 친밀하고 재미있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그리고 위의 문장이 나온 후반 부에 결국 하나인 그들의 이야기, 부러웠다. ‘나도 누군가와 그렇게 꼭 잘 어울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디자이너들도 모든 예술가들처럼 늘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거장이라 불리는 디자이너들도 언제나 별 다섯 개의 평점을 받는 건 아니다. 좋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이번 컬렉션은 포기하자.
우습게도 내려놓으니 편안해졌다. 쇼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압박감도 크고 일이 안 풀리더니 쇼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나자 술술 풀리는 것 같았다. steve (175쪽)
내려놓는다. 사실 내려놓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조금만 더, 조금만 하면 될 것 같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스티브와 요니도 그랬을 것이다. 한창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 때에 포기하고 내려놓는 것, 아마 그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또 다르게 생각하면 그건 다시 시작할 용기와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내려놓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용기, 그리고 자신감. 스티브와 요니는 함께 했기에 그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디자이너로 살 텐데 지금 1, 2년이 나중에 어떤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조급해하지 말자, 우리.”
스티브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이것 말고 뭐가 있었을까? 그건 내 진심이었고 돌이켜보면 정말 맞는 말이기도 했다. 처음에 스티브의 몸 상태에 대해 들었을 때 어쩔 줄 모르고 울기만 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검사 결과가 악성 종양은 아니었다는 것. 수술을 해야 했고 또 회복을 위해 1년여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살 수 있었다. 그러면 됐다, 살아만 있다면 몇 년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스티브가 디자인을 못 하게 되는 일은 없을 거야, 나는 그렇게 스스로 마음을 다독였다. 스티브와 나는 젊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무엇보다 우리의 꿈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 이 긴 레이스에서 1등이 아니면 어때. 완주할 수 있으면 되지. 조급해하지 말자.’
그때의 내 마음이 그랬다. yoni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늘 경쟁하는 구도에 놓여있다. 1등을 원하는 사회 속에 살다보니 늘 바쁘고 조급하기 마련이다. 특히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현재의 20대와 관련해서 본 글에 ‘IMF시대를 겪으며 10대 때 패배를 학습하게 되었고, 그래서 더더욱 ‘경쟁’에 치열하게 달려들고 있다.‘ 라고 적혀 있다. 나 역시도 빨리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는 것을 목적으로 20대 초반을 보냈다. 그리고 그것이 20대 초반의 가장 큰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그것을 이루고 나니, 20대 중반의 삶의 목표는 무엇이었나 싶다. 성취감에 취해 기뻐하기보다는 목표의 상실감에 더욱 무기력하고 뒤늦은 방황을 했다. 그렇게 보낸 시간들이 아깝고, 내 스스로에게 미안하기까지 하다. 조급해하지 않되, 열정적으로 달려드는 것.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며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며 배운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 눈이 즐겁다! 예쁜 옷들, 길쭉 길쭉한 모델들, 그리고 영국 어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