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지음, 『청춘의 독서』, 웅진지식하웃, 2017 리커버판
목차를 보니 궁금했던 책들이 여러 권이었다. 나를 매혹하나 아직까지 읽지 않은 책들. 그 책들을 유시민의 설명, 그가 바라보고 경험한 세상, 그러니까 그의 인생의 프레임으로 먼저 보게 되었다. 『공산당 선언』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역사란 무엇인가』를 포함한 총 14권의 책… 20대 초반, 그에게 와서 그를 온통 뒤흔든 책들이다. 그 책을 읽은 지 적어도 20년, 멀게는 30년은 지났을 무렵, 저자는 그 책들을 어떻게 접하게 되었으며 그 책들이 어떻게 자신을 뒤흔들었는지를 말한다. 더불어 그 후의 시간 동안 그 책을 대하는 자신의 심정은 어떻게 변했는지, 책과 격렬하게 충돌했던 세상은 어떻게 변했는지도.
이 책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에게 도끼가 되어 주었다. 그게 꼭 나에게까지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지만 누군가 인상 깊게 읽었던 책 이야기를 읽는 건, 책을익숙하게 하고 책과의 거리를 좁혀 준다. 『청춘의 독서』는 각 작가의 이야기, 작가가 살던 시대 이야기를 저자 자신의 시대, 생각과 교차하며 들려준다. 더불어 시간차가 드러난다. 예전에 읽었을 때와 지금은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는지, 반대로 감동이나 충격이 여전함을 말한다. 저자에게 진실한 책읽기 경험이되 독설을 내보이거나 강요하는 것은 아니어서 내가 해당 책에 대해 크게 선입견을 갖게 하지는 않는다.
저자를 더 잘 알고 그에게 애정이 있었다면 그가 이야기해 주는 이 책들이 더 귀하게 느껴지거나 깊이 있게 다가왔을 것인데 저자에게 관심이나 애정이 남다르지는 않다. 다만 그가 말하기를, ‘내가 글을 잘 쓴다는 걸 알게 된 건 대학교 때이다’(정확하지는 않으나 이런 뜻의 문장이었다.『국가란 무엇인가』 서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쓴 글을 읽으며 빵 터졌다가 금세 그 문장에 동의한 적이 있다. 그는 생각을 편안하게 전달할 줄 알았다. 그의 문장을 읽으며 애국심이라는, 교육으로 익혀 완전히 체화되었으나 불편해지기 시작한, 그러면서 어찌할 줄 몰랐던 감정에 대한 좋은 답도 얻었다. 그래서 이 책이 기대되었다. 편안하게 생각을 전해줄 것이며 그것이 내가 가진 어떤 의문, 어떤 불편함을 덜어주거나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줄 거라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맞았지만 나와 저자는 생각을 두고 있는 주 관심 영역이 달랐다. 언젠가는 같은 지점에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독서에서는 아니었다. 그가 70-80년대 대학생이자 사회과학도답게 사회, 정치 현상에 자연스럽게 촉을 두고 반응하는 반면 나는 사람살이의 깊이, 수많은 정보는 섬기면서 주변 사람이나 자기 자신의 이야기는 모르는 현상, 대한민국 직장인의 현실, 도대체 인공지능 사회에서 나라는 직업인이 살 길은 무엇인가가 주된 고민거리이고 문제의식이며 풀어내고 싶은 주제인 사람이다. 그래서 같은 책, 내가 아직 읽지 않았어도 주제를 파악할 만한 이야기와 책에 대한 그의 관점과 나의 관점, 바라보는 방향은 크게 교집합을 갖되 미묘하게 달랐다.
저자가 언급한 책 중 유일하게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기억이 확실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 관한 글은 작가 솔제니친의 이야기, 당시 러시아 이야기를 들려주고 ‘노동하는 인간은 아름답다’는 소제목 꼭지로 마무리하고 있다. 난 내가 사무실 업무를 벗어나 현장 판매직을 하며 얼마나 생각이 바뀌었나를, 그의 글을 읽으며 알아차렸다.
‘노동하는 인간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말이고 맞는 말이다. 프리랜서로 일하며 기획하고 글 쓰던 시절, ‘어떤 시대라도 자기 일을 묵묵히 하며 생활과 노동에서 즐거움을 찾고 삶을 일구는 인간은 결국 승자다’라는 건 소중하게 떠받들던 주제이다. 그 평범한 생활과 노동 중에서도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는 일은 내 바람이었으며 책상 앞에서 글 쓰고 편집만 하던 시절에는 간절했다. 그래서 현장 판매직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일하고 있다. 앉아 있을 틈도 별로 없이 몸을 움직이며 반복 노동을 한다. 더위를 타기는커녕 땀도 거의 안 나서 여름 외출복 중에 반팔이 별로 없던 내가 매일 땀내며 1년을 일하고 나자, 이제는 저 제목 아래 쓰인 글에서 허虛를 느낀다.
저자는 몸 쓰는 노동으로 돈을 벌어본 적이 있을까? 하루 말고 일주일, 한 달, 일 년을 그렇게 몸 쓰는 노동으로 돈을 벌어본 적 있을까?
피상적으로 노동은 아름답고 어떤 상황에서든 노동의 순수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은 결국은 패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이 또한 학습된 관념이 아닌가 싶다. 육체 노동, 몸을 움직이며 하는 일을 책으로 읽고 활자에 감격하고, 머리로 상상하고 때로는 마음 깊이 동경하지만 결국 이들이 반복적 노동을 대하는 방법은 책의 언어처럼 고상하고 찬란하다. 솔제니친의 수용소 시절-보상도 바랄 수 없고 목숨 부지도 쉽지 않은-의 상황 속에서 노동의 기쁨만이 찬란하고 몰입할 만한 것일 수도 있겠다. 책 속 상황을 바탕으로 하는 문맥을 무시할 수는 없으나, 이제는 이 말에 무조건 동의할 수가 없다. 노동의 순수한 기쁨으로 빛나는 날도 있겠다. 디테일한 요령이 생기고 능숙해지는 것도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런데 늘 이렇게 일하는 이들에게 노동의 기쁨이 늘 그를 기쁘고 의미 있게 해 줄까? 이 대답에 답할 만큼 오래 반복 육체 노동일을 한 이들이 이런 글을 쓸까? 난 서비스직에서 종사한 지 고작 1년 됐을 뿐이다. 계속 몸을 움직이며 일하니 책상 앞에서 일할 때처럼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일은 줄었다. 그러나 당연히 또 다른 몸의 힘듦과 아픔이 있다. 정신적으로는 예전처럼 많은 모험을 하지 못한다. 발전 속도가 더디며 결국은 더 나아가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 막막해진다.
하나 더. 이 반복적이고 몸으로 하는 노동이 한때는 선택이었으나 이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점점 줄어듦을 느낄 때, 그래서 더는 내 원래 전문 분야를 더 확장할 수는 없는 걸까, 이제 내 나이는 내가 원하는 회사에 입사하기 어려운 걸까, 라고 조바심 내야할 때도 현장에서 몸을 움직이며 반복적으로 하는 노동이 즐겁기만 할까.
저자는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소개하며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고민하고 정리했지만, 나는 정작 솔제니친의 소설을 소개하는 글에서 지식인의 한계를 느꼈다. 저자는 폭력에, 권력욕에, 각성하지 않는 언론 때문에 세상에서 소외되는 계층, 소외되는 이념을 회복하거나 제대로 자리잡게 하려고 애썼지만 많은 것을 몸으로 하는 경험보다 활자와 머릿속 체계로 이해한 것은 아닐까. 반복적 육체 노동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만으로 인간은 존엄성을 지켜내라고 할 수는 없다. 순간 순간 몰입의 즐거움은 가능하겠다. 그러나 이런 삶은 소외와 노동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머무르는 꼴이며 이런 노동이 장기화될 경우 그건 노동하는 사람의 소외로 이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나는 그가 만들어준 시대에 산다. 감사한다. 그와 시대의 선배들 덕에 나는 사랑 고민만 하고 내 걱정만 해도 되는 세상에 산다. 그 사이 세상은 또 변했다. 분명 좋아진 것도 많고 예상했던 변화도 있다. 반면 예상하지 못했던, 그만한 여유가 없어 예상할 수 없던 변화도 있다. 그는 권력층, 정치, 언론의 횡포에 의한 소외, 개인의 소외를 걱정했겠지만 지금은, 나는 인간 자체의 소외를 걱정해야 하는 세대다. 도대체 인공지능이 어떻게 나를 먹여 살리거나 아니면 나를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바보로 만들지 걱정하고, 다들 대중매체에만 집중하고 정작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자기 생각이라고 말하는데 정말 그런 건지 의심해야 하는 세대다. (물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벌이가 탄탄하고 인간관계가 탄탄하다면. 그러나 지금 나처럼 불안한 처지라면 이런 생각을 놓을 수가 없다. 살 길을 찾는 문제는 쉬이 끝나지 않는다.) 이런 세상에서, 그때처럼 격동하되 기술적인 면에서 평범한 인간이 쉬이 따라잡지 못하도록 격동하는 세상을 체감한다면, 이 책들에 대해 어떤 소감이 나오고 어떤 조언을 해 줄지 듣고 싶다.
고전이 위대한 건 그 해석이 하나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라 다르고 물론 독자마다도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엄숙하게 느껴졌던 고전이 조금이라도 친숙해졌다면 이제는 독자의 독자로서가 아니라 일차 독자로서 읽고 내 나름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꼭 읽어보련다. 줄 그어가면서. 그가 이끌어준 내용만으로도 나한테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더 완결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20대의 나와 달라졌고 불과 한 해 전의 나와도 달라졌다. 이 책은 그런 것을 알게 한 책이다. 저자와 나는 다르고 나는 저자의 시대와 저자의 지식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런데 그 다름을 읽어내다 문득 내가 달라졌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그건 꽤 괜찮았다. 책을 읽으며 내 변화를 알아차렸다는 건.
책을 읽다가 몇 번을 멈추고 떠올려 보았다. 나라는 개인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을 담은 책은 무엇인지. 이 책의 저자 유시민처럼. 이 책의 부제는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이지만 그 시작은 개인이었다. 나는 인상 깊은 책이 두어 권 떠오르기는 했지만 그게 과연 나를 어떻게 변하게 했는가 물었을 때, 딱히 답하기가 어려웠다. 선하게 성장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인생 방향을 명확히 정해 놓거나 절대적 규칙에 기대지 않으려 했다. 그게 내가 지금 따라야 할 인생 방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인상 깊게 읽은 책에 기대어 내가 인생의 어떤 부분을 지향하고 있는가를 물었을 때,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어찌 살고 있는지 혼란스러워졌다. 그의 책을 보며 역으로 나는 내가 길을 잃었음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