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가기, 강가에서 낮잠자기, 낚시로 잡은 물고기 구워먹기, 새우와 크로와상과 쫀득쫀득한 쌀밥 먹기, 수영하기, 춤추기, 당신이 골라주는 구두와 속옷과 향수 사기, 신문 읽기, 가게 진열장을 한참동안 바라보기, 지하철 타기, 열차 시각 확인하기, 둘이 앉는 자리를 당신이 다 차지하고 있다고 투덜대며 옆으로 떼밀기, 빨래 널기, 파리 오페라 극장에 가기, 베이루트와 비엔나 가기, 시장 보러 가기, 수퍼마켓에 가기, 바비큐 해 먹기, 당신이 깜박 잊고 숯을 안 가져왔다고 볼멘소리 하기, 당신과 동시에 양치질하기, 당신 팬티 사 주기, 잔디 깎기, 당신 어깨 너머로 신문 읽기, 당신이 땅콩을 너무 많이 먹지 못하게 하기,.....
마틸드가 그녀의 그와 하고 싶어하는 일입니다. 이 외에도 놀랍도록 많은 사소한 일들을 그녀는 그녀의 사랑과 함께 하고 싶었지만, 끝내 둘이 나누지 못한 목록이 되고 말지요. 그녀의 남자는 너무도 책임감이 강하고 고지식한,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할 남편이었기 때문이죠. 운명적 사랑이란 걸 믿지 않던 그에게 평생 단 한번 찾아온 사랑이었지만, 그는 결국, 자식에 대한 책임과 도리로서 아버지의 위치를 지킬 것을 결심하고, 그의 사랑도 그렇게 잃고 맙니다.
그리고 가슴 속 깊은 곳에 그의 이야기를 묻어둔 채 늙어갑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새로운 사랑을 쫓아, 자신의 며느리와 두 손녀들을 버리고 떠나가는 일이 그의 앞에 벌어지기 전까지 말예요. 깊은 고통과 슬픔에 잠긴 며느리에게 그는 조심스럽게 그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자신의 지난 세월을 조금씩 꺼내어, 깊이 묻어두었던 그의 하나뿐인 사랑이야기를...
조금씩 조금씩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이야기에 마음이 풀려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그래서 마지막에 시아버지가 주방을 나서다 말고 돌아서서 '내가 마지막으로 얘기 한 마디 더 해도 되겠니?' 라고 물었을 때, '나는 듣고 싶지 않았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겠죠. 어느덧 남편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있는 자신을 말예요. 이 소설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그래서 이 소설을 압축함과 동시에, 우리가 택한 삶에 정답은 정말 없는 거구나, 느끼게 해 주네요.
줄거리만 보면, 흔하디 흔한, 중년남성의 바람피운 이야기이지만, 난 감히 이 소설을 내가 만난 최고의 연애소설이라 이름 붙이겠습니다. 만인에게 이해될 수 있는 설득력을 가진 사랑보다, 이해는 안 되어도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사랑이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닐까요? 물론 눈에 거슬리는 면도 많이 발견돼요.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대화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소설인데, 시아버지의 말투가 너무 자상하게 느껴지거든요. 번역의 문제인지 알 수 없지만, 무뚝뚝한 캐릭터인 시아버지의 성격과 너무 괴리가 느껴졌어요. 하지만 이런 것쯤 작게 느껴질 만큼 제 마음을 흔든 소설이 참 흔치 않아서 별 다섯 개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