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제목 그대로 '제이 개츠비'라는 한 젊은이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궁전 같은 저택에서 매주 화려하고 성대한 파티를 여는 수수께끼의 인물, 개츠비. 사실 개츠비는 가난한 집 출신으로 오로지 첫사랑인 데이지에 걸맞은 남자가 되기 위해 각종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여 막대한 부(富)를 쌓았고,우연히라도 그녀를 만나고자 매주 파티를 열었다.
그러나 문제는 개츠비 인생에서 이루어야 할 유일한 목표인 데이지가 그다지 이상적인 인물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무책임하기 그지없고 속물같은 그녀에게 자신의 낭만과 이상의 꿈을 맡긴 것은 커다란 실수였다.(그 불안한 꿈을 끝까지 믿고 목숨까지 잃는 개츠비, 이 바보 멍충이)
하지만, 데이지는 개츠비가 세상에서 처음 만난 '멋진' 상류층 부잣집 아가씨였고, 개츠비 자신도 그녀의 목소리는 ‘돈 냄새'로 가득 찼다고 말한 점을 미뤄 볼 때 개츠비는 이미 데이지가 완전무결한 장미는 아니었음을 알고는 있었던 듯하다.
사실 등장인물 중 화자인 닉을 제외하고 - 소위 말하는 전통적 부자 - 모든 인물에게는 도덕적 결점이 있다.마지막까지 오지도 않을 데이지의 전화만을 기다리다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 이르러 비로소 나는 개츠비의 '위대함'을 어렴풋이 깨달았고, 나의 마음은 연민으로 가득 찼다.
"다들 썩었어." 나의 외침이 잔디밭을 건너갔다. "너는 그 빌어먹을 인간들 다 합친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인간이야." 그렇게 말했던 것이 지금도 기쁘다. 처음부터 끝까지를 그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게 내가 그에게 해주었던 유일한 찬사였다.
P190 김영하 역 (2009,문학동네)
닉이 어찌나 고맙던지. 그래서 '나 대신 이렇게 개츠비한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고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닉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는지 모른다.
《위대한 개츠비》의 열성팬으로 유명한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책을 읽어 보긴 했는데, 무라카미씨가 말한 거처럼 이 책이 그렇게 대단한 책인지는 잘 모르겠어요."라며 의문의 표정을 짓는 사람이 종종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무라카미는 《위대한 개츠비》이 왜 대단한 작품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이유를 도리어 모르겠다고 한다.
'대체 뭐가 그렇게 대단하지?'와 '아, 역시 대단해!'를 순차적으로 느낀 한 명의 독자로서 나는 우선은 한 번 이 책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설사 당신이 '에이 이게 뭐야, 낚였네!’로 결론을 내린다해도 영미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칭송받는 작품을 일단은 읽어 봤다는 점에서라도 의미 있는 독서 활동이 될 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이야기하면서 번역 이야기를 빼 놓을 수는 없을 듯하다. 김영하 작가의 번역본 출간으로 이처럼 번역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 출판사 마케팅 전략으로까지 이어진 매우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김영하 작가, 김욱동 교수 그리고 김석희 번역가의 역저 순으로 읽어 보았는데, 나는 역시 영미문학연구회 번역사업단이 정확하게 번역하였다고 평가한 유일한 번역본의 역자, 김욱동 교수님의 손을 감히 들어 주고 싶다. 작품에 대한 철저한 분석에 기반한 친절하고 정중한 번역이었다.
김영하 작가의 경우, 본인이 소설가임을 전면으로 너무 내세웠고, 젊은 개츠비를 지향했다고는 하나, 인물에 대한 분석과 연구가 부족하게 느껴진 대사 번역과 정갈하지 못한 문장에 크게 실망하였다. 또한, 가독성을 위했다고는 하지만, 문장을 너무 자주 잘랐고 때론 뭉뚱그려 번역한 부분이 눈에 보여 솔직히 잘 한 번역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김석희 번역가의 경우, 다소 고리타분할 수 있는 김욱동 교수님의 번역과 소설가의 강점을 내세운 김영하 작가의 번역의 중간 지점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역자 후기를 읽으면서 어디선가 봤던 문장이라는 생각에 여기저기 들춰보니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후기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점을 발견하였다.
두 사람이 작가에 대해 조사하며 같은 텍스트를 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출간 연도와 프랑스어, 영어, 일본어 번역을 하고 있는 초능력자 김석희 번역가임을 생각할 때, 아무래도 의심의 무게는 김석희 번역가에게 기울어진다. 출판사 홍보 당시 '한국 최고의 번역가, 김석희'라는 문구를 내세웠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뭔가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