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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y Haskell님의 서재
  • 한 치 앞도 모르면서
  • 남덕현
  • 11,700원 (10%650)
  • 2017-01-23
  • : 290

‘슬픈 것들이 타 죽기에 딱 좋은 빛깔’의 ‘노을이 코앞까지 번져올’ 때 책을 덮었다. 창밖 아카시아 나무의 까치둥지가 붉다. 바람이 거센지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며칠 전부터 부지런히 집을 짓던 까치들은 어디로 갔을까? 완성된 집이라고 보기엔 뭔가 어설퍼만 보인다. 북풍한설이 얼마나 매서운데 깜냥없이 지금 집을 지을까? 하릴없이 방구들에 누워 창밖의 둥지를 헤아려본다. ‘고작 저 높이와 빈약한 벽 하나로 은밀한 사적 영역을 지키겠다는 의지는 얼마나 가련한가.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면 나의 집도 저만치 가련하리라.’는, 점(占)집 처마 밑에서 비를 긋는 작가의 상념이 문득 서럽다. 어쩌면 사람이 태어나 사는 일도 제 ‘깜’ 모르고 집 한 채 짓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며, 그 처마 밑에서 비긋기를 기다리며 담배 한 개비 피우는 일이거나, 한모금의 담배연기처럼 사라져가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여기 이렇게 집 한 ...채를 짓는 사람들과 비긋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담배 한 개비 물어 태우는 사람들이 나온다. 뭔가 어설프고, ‘드잡이면 어떻고 막무가내면’ 또 어떤 사람들이 ‘핵교서 정식으루다 배우든, 핵교 담장 배까티서 야매루다 배운 처지든’ 피아(彼我)의 구분 없이, 새둥지 나뭇가지 엮이듯 얼기설기 엮여 ‘의미가 아닌 소리’를 자아낸다. ‘핵교 담장’은 ‘살아온 내력이 진실을 직관하는데’ 아무 경계도 되지 못한다. 그저 내가 있으니 너가 있고, 너가 있으니 내가 있으므로 우리 함께 ‘말반죽’을 치대며 소리를 내고 어울렁 더울렁 장단 맞춰 살아갈 따름이다. 그러다 종당에 그의 시 「기도•2」(시집 『유랑』)에서처럼 ‘인간의 삶이란 급히 떨어지는 한 방울 눈물 같아서, 스스로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을 겨를이 없으니, 당신이 옆에서 어, 어 떨어진다, 떨어진다, 큰소리로 외쳐주시면 그때서야 툭 하고 숨을 놓으’면 그뿐인 것이다.
소리를 내어주고 들어주는 일 모두 공명(共鳴)일 것이다. 웃음을 내어주고 들어주는 일, 울음을 내어주고 들어주는 일도 모두 공명일 것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삶이니 그저 웃을 수 있을 때 웃고, 울 수 있을 때 함께 울 수 있기를, 작가가 들려주는 삶은 그렇게 공명하는 삶이 아닐까?

거미 한 마리 벽을 타고 지나가는 어스름이다. 부지런히 상념을 물어다주는 개 한 마리가 내 옆에서 목덜미를 긁는다. 어디선가 제 몸보다 긴 나뭇가지를 물고 까치가 날아왔다. 정월의 보름달이 가까운 날이다. 곧 ‘달 밝으니 만 가지 근심이 따라 밝아지’는 밤이 되리라. 만 가지 근심이 밝아지다 보면 ‘인간의 삶에 대한 가장 완전한 질문으로 이끄는 직관의 문’도 따라 열릴 듯하다.
바람길 솔솔 난 둥지는 허물어질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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