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 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예술들은 그 나라만이 지닌 역사적인 배경은 물론이고 독특한 전통을 이어오는 이들의 노력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바, 이 작품을 대하면서 다가온 것은 인간과 예술의 관계다.
가문을 이어받으며 그 책임감과 예술적인 기교나 활약면에서 한 인간으로서 고뇌는 물론 자신 스스로가 채찍질하며 견뎌낸 그 세월의 풍파를 그린 작품은 일본의 가부키를 배경으로 다룬다.
나가사키 야쿠자 가문의 아들인 키쿠오는 신년행사에 연습한 가부키 무대를 펼치고 이후 상대 야쿠자 가문의 공격으로 사망한 아버지를 둔 뒤 단체는 다른 곳으로 소속된다.
이런 키쿠오의 방황과 무대를 주의 깊게 보던 당시 자리에 합석한 배우이자 유명한 가부키 배우인 한치로 한나는 그를 제자로 맞아들인다.
나가시키에서 오사카로 온 키쿠오는 그곳에서 같은 나이의 스승 아들인 슌스케를 보게 되고 이후 둘은 혹독한 가부키 세계에서 남자로서 여장배우를 향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던 차 공연을 앞두고 스승의 사고로 그 자리를 대신할 배우는 슌스케란 공식을 깨고 스승은 키쿠오를 지명하면서 이후 두 사람의 운명은 갈린다.
서서히 가부키 배우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는 키쿠오와는 달리 집을 떠나 생사조차 불분명한 상태로 있던 슌스케의 존재, 작품은 이들의 청소년기부터 중장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가부키의 성공과 그늘, 그 자리를 지키고 배우로서 무대를 사랑하는 이들의 처절한 노력이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긴 세월 속에 담아낸다.
가부키에 대해선 일부분 알고는 있었으나 저자가 다루는 무대 뒤의 분장실과 무대 위에 오르기까지 여장배우로서 진정한 남자인 나의 존재를 버리고 남자이되 여자로서의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하는 고도의 기술과 각 공연의 막마다 무대 주인공의 세밀한 감정표현과 동선들의 모습들은 실사 현장을 보는 듯하게 그려진다.
조폭 관련 아들이란 대중들의 시선과 그 시선을 견디며 원치 않은 자리라도 가부키 공연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나서야 했던 키쿠오의 인생 파노라마는 당시 조폭과 연예계의 연관관계는 물론이고 오로지 가부키에 대한 것만 생각하던 키쿠오란 인물 주변인으로 살아가는 가족들의 고뇌는 무대와 무대 밖의 동인인의 삶을 비교한다.

여기에 일본전후를 통한 미디어의 발전과 함께 점차 시들해져 가는 가부키공연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과 공연과 영화계, 예능을 넘나들며 절치부심하는 배우로서의 자존심은 전화위복이자 화의 진원지도 될 수 있다는 굴곡진 인생의 모습을 보인다.
전 2권을 통해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라면 슌스케가 다시 돌아와 함께 공연하던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먹먹함과 뭉클함을 던지게 하는 춤사위의 숨겨진 아픔들, 그의 삶에서 키쿠오와는 또 다른 가부키 배우로서의 한 길을 걸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인생은 어쩌면 두 사람이 공연하되 한 몸이듯 표현해야 하는 가부키 공연 작품을 작가는 전. 하권에 등장시킴으로써 여운을 남긴다.
마치 변사가 들려주듯 문장의 흐름이 독자들에게 안내하듯 들려주는 방식을 이용하고 있기에 가부키 작품 소개와 이에 공연하는 모습들을 느낄 수가 있다는 점이 신선했는데 아무래도 일본인이 아니기에 작품 내용에 익숙하지 않은 점은 이 작품들을 알았다면 더욱 재미를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원숙미와 노련미를 갖춘 가부키 배우로서 무대를 떠나고 싶지 않은 키쿠오의 간절한 소망은 예술 속에 스스로 자신의 몸을 구속하며 그 안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굴레임을, 작품 속 표현처럼 비단잉어로 비유한 문장으로 잘 드러난 부분이다.

-“꺼내 줘 꺼내 줘 하고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몸부림을 치는데 모두가 알아채지 못하고, 아니 모두가 모르는 척을 하고 가만 내버려 두었던 그 잉어는, 어느새 그 작은 수조 속에서 맑은 강물을 상상하기 시작했던 거겠지요. 맑은 그 강물에서 마음껏 헤엄치기 시작했던 거겠지요.” 하권 p336
무대 위를 벗어나 자신의 춤사위로 모든 것을 그린 키쿠오, 그 장면을 상상하면서 읽은 느낌은 아름답다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와 비교해 보는 시간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