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창 시절 홍차의 매력에 빠지게 해준 만화가 있었다. <홍차왕자>라는 작품이었는데, 도입부에 나오는 주문을 실제 따라 해볼 정도로 매력에 푹 빠져서 읽었었다. 자정에 홍차를 우려내면, 보름달이 비치는 컵 속에서 홍차왕자가 등장해서 3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동화책 같은 만화책이었다. 책을 읽을 당시엔 티룸이나 디저트 전문 카페가 아직 유행하기 전이었다. 만화책에 나온 포숑의 애플티나 얼그레이를 직접 사서 티포트로 우려낸다던가, 레시피를 따라서 차를 우려내기도 했었다. 기술 부족으로 떫은맛이 나는 홍차에 별 매력을 못 느끼게 되었고, 친구들도 별 관심이 없어 빠르게 흥미를 잃어갔다.
홍차의 나라 영국의, 그다지 미덥지 않은 민화.
밤 12시, 백자 컵의 다즐링.
보름달이 비치는 컵 속을 은 스푼으로 한 번 저으면,
달은 일그러진다.
그리고ㆍㆍㆍ.
홍차왕자 1권

© 株式会社白泉社
홍차는 기호품으로 생소했던 시절을 지나, SNS나 동호회에서 친절한 지인들을 통해서 차와 디저트의 세계에 가까워졌다. 더불어 매년 열리는 카페쇼라는 행사도 알게 되었고, 티룸과 홍차 전문점에도 푹 빠지게 되었다. 관련 책과 예쁜 카페에서 즐기는 우아한 애프터눈 티 세트, 티포트와 찻잔을 하나둘씩 모으면서 행복했다. 취향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티타임이나 맛있는 디저트를 즐기는 시간은 소중했다. 스트레스 해소와 함께 나를 비우고 채우는 시간이었다. 하루 중 아침 시간이나 오후 3시경에는 1인용 머그잔에 허브티나 과일차를 우려 마셨다. 바쁘고 피곤할 때, 잠시 휴식엔 늘 차와 케이크나 스콘이 함께 했다.
누군가와 이야기하기 위해, 혼자 편안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공부나 일을 하던 중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
문득 멈춰 서고 싶을 때나 뒤돌아보고 싶을 때에도
카페를 찾는 사람들은 분명 여러 가지 이유로 모여들 것입니다.
도쿄 카페 멋집 - 들어가며 중
여행을 많이 가지 못해서 국내에서만 티룸이나 홍차 전문점 등 예쁜 카페를 많이 갔었다. 그중에서도 디저트의 강국인 일본의 티룸이나 홍차 전문점은 늘 선망의 대상이었다. 일본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얼마나 설레었었는지. 그중에서도 <양과자점 코안도르>,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라는 영화와 드라마는 멋진 디저트 카페에 초대받은 기분이 드는 작품들이었다. 한때 디저트 만드는데 관심이 생겨서 제과제빵과 쇼콜라티에 과정도 배웠었다.


© 구글 검색
주변 친구들의 일본 여행 후 카페와 디저트 사진을 보면서 많이 부러웠었다. 다시 여행 가고 싶은 요즘, 나에게 멋진 카페와 디저트를 함께 즐기고, 소개해 주는 지인과 함께 가고픈 카페 리스트가 담긴 책을 보게 되었다. 머물고 싶은 공간 <도쿄 카페 멋집>, 무엇보다 일본의 카페 전문 인플루언서인 공상찻잔 도라노코쿠의 취향 저격 리스트들로 가득하다. 맛, 멋, 감성을 모두 사로잡은 빈티지 카페 75곳이라니 절로 궁금해지는 리스트다. 아기자기한 동화 속 카페, 유럽을 여행하는 듯한 앤티크 카페, 달콤한 위로를 주는 작은 아지트 카페, 색다른 맛과 경험을 즐기는 도쿄 찻집, 시간 여행을 선물하는 클래식 찻집, 책과 음악이 어우러진 레트로 카페 총 6개의 챕터에 나눠진 카페들의 사진과 글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그대로 멈춘 기분이다.



전반적으로 레트로, 빈티지 느낌이 드는 색감과 구도의 사진들과 공간의 특징을 잘 살린 문장들.
특색 있는 디저트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책 중간중간에는 찻집 100배 즐기기라는 꿀팁을 정리해 놓기도 했다. 저자가 인스타 인플루언서이기도 한 만큼, 간단한 촬영 노하우도 담겨있다. 대다수 자연광을 이용한 사진이어서 그런지, 자연스러움과 동시에 분위기 있는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다. 카페 전문 인플루언서를 노린다면 한 번쯤 참고해 봐도 좋은 구성과 내용이었다.

마지막으로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보면서, 살짝 울컥했다. 동네에 분위기 좋고, 내 타입의 카페가 있어도 코로나를 지나가면서 하나둘씩 사라져있더라. 홍차 전문점이나 티룸은 한때 유행을 지나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카페 쇼를 나가도 늘 확장되는 커피 관련 업체들에 비해서 서서히 축소되는 느낌인 차 관련 부스를 보면 마음 아파질 때가 많다. "오래오래 그곳에 남아줬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쓴 책인 만큼 도쿄 여행 갈 때, 도움이 되길 바란다. 로컬 에디터 과정 들으면서, 사는 지역에 좋은 장소를 많이 접하면서 탐구하게 되었었다.
지역에 숨은 나만 알고 싶은 공간이 있다면, 널리 알려서 사라지지 말게 하자.
찻집이라는 장소가 참 좋습니다.
찻집은 오랜 시간 사랑하고 사랑받아 온 하나의 문화로,
무리해서 서로 간섭하지 않지만 누군가와 공간을 공유하는 감각은
이상하게도 마음을 편안하게 만듭니다.
공상찻집 도라노코쿠가
이 책을 만들며 바란 점은 찻집이
'오래오래 그곳에 남아 있으면 좋겠다'는 것뿐이었습니다.
도쿄 카페 멋집 - 나오며
이 글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