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불확실함 투성이이다.
3살 때 생애 처음 가출을 한 뒤로 세상은 무서운 곳이라는 걸 경험했었다. 그 뒤로 단 한 번도 불안이나 걱정이 내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다. 새 학기가 돌아올 때마다 친구가 생기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되었었고, 새로운 환경으로 바뀔 때마다 늘 고민이 끊이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엔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지난 뒤 생각해 보니 고민한 시간만큼 잘 되기도, 그렇지 않기도 했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에 그 경험은 늘 성장의 기반이 되었다.
IMF를 지나 팬데믹 상황이 거의 종식되기까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불안과 계속해서 싸워야 했다.
언제 다시 경제적 위기가 올지도 모르는 상황, 코로나는 완전히 종식되는 것인지, 마스크는 계속 벗고 다녀도 될 것인가. TV에서 생중계되는 여과되지 않은 상황들을 보면서 생겼던 트라우마, 언제 다시 격리될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서서히 위축되어 갔었다. 이대로 세상이 끝나버릴 것 같아서, 점차 무기력해졌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시간 속에서 나를 구원해 준 건 길고양이 돌보기와 비대면 온라인 라이브 방송과 음성 기반 채팅, 영화를 같이 보는 와치 파티였다. 나 혼자만 불안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갔고, 무언가에 몰두하면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루틴을 찾아가고 있었다.
아직 불안함을 간직한 채 오프라인 활동을 서서히 확장했던 작년은 모든 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동네에서 개최하는 여성 영화제의 시민기획단, 홍보활동과 동네를 더 잘 알기 위해 신청했던 시민기자단, 펜화 클래스에 처음으로 도전해서 작품을 전시하기까지 어느 활동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잘 할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고, 사람들과의 소통이 쉽지 않았다. 비대면 상황에서 피할 수 있었던 대인관계의 어려움이 다시 시작되었고, 아무리 좋은 에너지를 지닌 분들과의 만남이 많았어도 내항인 인 나는 피곤했다.
하지만 힘든 시간을 버티고 나니 결실을 맺을 수 있었고, 무언가 해냈다는 뿌듯함이 생겼다.
모든 활동이 마무리되었던 작년 후반쯤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고민이 크게 다가왔었다.
그 이후로 한동안 나는 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다시 무언가 하기 시작하기로 맘먹기 전까지 책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서 생각을 정리했었고, 우선순위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떠올리기 시작했다.
작년에 활동하면서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감성 글쓰기 수업을 듣기로 했고, 무엇을 하건 부모님과의 시간을 가장 우선으로 하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불안을 벗어나서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지나고 보면, 내 안의 불안과 고민은 대다수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것들이었고, 인생의 방향성을 선택하는 역할을 해왔다. 사람들은 대다수 불안이나 고민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강력한 수단이기도 하다. 불안한 마음에 잠식되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무렵 읽었으면 좋았을 법한 책인 <불안이 불안하다면>에서는 불안에 대한 선입견을 뒤집어준다. 불안함을 느끼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인류는 불안 덕분에 생존할 수 있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전달해 준다.

© EBS 위대한 수업
최근 EBS 위대한 수업에서는 정신건강 특집으로 <우울장애>,<불안장애>,<성격장애>, <트라우마>를 다뤘었다. 팬데믹은 지나가고 있지만, 그에 따른 상흔은 깊이 남아있기에 이런 프로그램이 반가웠다.
이중 보르빈 반델로의 <불안장애>의 첫 강의였던 "불안은 언제부터 병이 되는가?"가 딱 이 책과 유사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책을 읽기 전 이 영상을 보면서, 불안을 조금쯤 이해하게 되었다.
40년간 불안장애를 연구해 온 반델로 교수는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던 건 '불안' 덕분이라고 말한다.
불안에 민감했기 때문에 야생동물과 위험한 상황에서 살아남고 자손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
그런데 인간을 안전으로 인도하던 불안은
오늘날 왜 병이 되었을까?
일반적인 불안과 병적인 불안은 어떻게 다른가?
© EBS 위대한 수업
최근 다시 마음이 불안해지면서 아무것도 작성할 수 없었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급했다.
처음부터 차분하게 읽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결론에 해당되는 3부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중 10장이자 마지막 장인 <올바른 방법으로 불안해하기>부터 바로 읽었다. 성질이 급한 분들은 3장부터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1, 2부는 3부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전반부일 뿐이다.
올바른 방법으로 불안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궁극적인 것을 배우는 일이다.
<불안의 개념>, 쇠렌 키르케고르
세 가지 원칙
1. 불안은 미래에 관한 정보다.
불안에 귀를 기울여라.
2. 불안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당분간은 그냥 내버려 두어라
3. 만약 불안이 유용하다면
그 불안으로 목적성 있는 무언가를 하라.
삶을 살아가면서 어렵게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된 지식이 함축되어 있는 책이었다.
인생이 원래 불안과 함께 하는 것이라는 걸 일찍 알았으면, 좀 더 과감하게 많은 걸 시도하면서 살았을 것 같다. 결국 인간은 불안 안에서 자유로워진다. 젊은 세대에게 주제넘게 조언은 못해줘도, 내가 어떤 경험을 겪으면서 살아왔는지는 이야기해 줄 수 있다.
불안할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불안 사용 설명법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는 책이어서 신선했다. 돌아보면 할 수 있을까 없을까 초조해하면서 무언가에 몰두했을 때, 더 나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고, 다독이게 되었다.
길고 어두운 터널 속에 나 혼자 지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가장 응원해 줬던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처음 책을 집었을 때, 불안함이 어떻게 자유로움과 연결이 되나 의문을 많이 품었었다.
책을 읽으면서, 힘겹게 깨달았던 진리를 담아놓았음에 감탄했던 책이었다.
불안을 구제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를 구제한다.
책 속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스타워즈 - 보이지 않는 위협>으로 불확실성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 부분이었다. 영화를 좋아하기에 이런 설명은 정말 공감이 많이 갔다.
스타워즈에서 아나킨은 사랑하는 파드메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불확실성을 거부하는 선택을 한다. 다스 시디어스는 아나킨의 불안을 감지하고 다크 포스는 불안과 분노로 파고들었다. 결과적으로 젊고 유능했던 제다이 아나킨은 다스 베이더로 흑화 하면서, 악의 편으로 돌아섰다.
걱정 마시라, 우리의 뇌는 다스베이더로 흑화 되는 걸 막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알 수 없는 위협에 대한 대비로 우리는 생존해왔기에, 불확실성은 인류 생존의 열쇠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 Disney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해서, 서평이나 영화리뷰 등이 밀리기만 했었던 이유도 완벽주의자와 완성주의자에 대한 설명으로 이해가 되었다. 책을 읽기 전에 내가 도달했던 결론도 역시 같았다.
완벽하게 무언가 하려고 아무것도 못하기보단, 일단 완성부터 한 뒤 고치는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결론을 이번에 들었던 글쓰기 기간 동안 깨닫게 되었다.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것보다는 엉망진창인 글을 조금씩이라도 작성하는 게 더 낫다는 진리를 체험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은 뒤에도, 한동안 손 놓아버린 책 리뷰를 쓰기가 쉽지 않았지만 마감에 늦어도 어쨌건 작성해 본다.
이 글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인지 헷갈리리지만, 결국 못 쓸 거라는 생각에 잠식되지 않고 마지막까지 쓰려고 시도했던 나 자신을 셀프 칭찬해 본다. 불안과 너무 오랫동안 함께해서 이제는 익숙하지만, 잘 사용하진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노력해 봐야겠다. 고민과 불안에 잠식되지 않도록.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가장 불안한 세대들에게 추천해 본다.

저자인 트레이시 데니스 티와리의 강연을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쯤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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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