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답사는 유홍준 교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일본편」제 1권 규슈지역을 중심으로 2013년 12월11일부터 13일까지 창비출판사 및 일본관광청의 지원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사진은 파나소닉 루믹스 GF6로 촬영되었습니다.
후쿠오카 공항에 내리자마자 이슬비가 내린다. 살포시 내리는 이슬비와 함께 방문한 곳은 야요이시대 유적지를 복원한 사가현의 요시노가리 역사공원이다. 2300년 전 고조선과 삼한 시대 사람들이 집단 이동해 청동기문명과 벼농사를 전해주어 일본의 야요이 시대(기원전3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 까지 600년간)가 열리게 된 현장이다. 입구에는 귀엽게 생긴 이곳의 마스코트와 큼지막한 토기가 우리를 반겨준다. 공원에 들어서 맨처음 보이는 것이 도리이다. 요시노가리 공원은 3개의 마을에 걸쳐 있어 그 규모가 엄청나다. 이 모든 것들이 모두 한반도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데 아주 먼 옛날이지만 자부심이 느껴진다. 오락가락하는 비에 제법 불편하기도 했지만 천수각에 올라 광대하게 펼쳐진 공원을 보자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왕이 살던 곳, 의식을 치르던 곳과 옹관묘역 등 공원내 여러곳을 둘러보는데 반갑게도 하늘에 쌍무지개가 뜬다. 아마도 이번 답사는 좋을 것 같다.
작지만 소박한 정원이 꽤 멋지던 소바 가게에서 점심을 먹고 향한 곳은 히젠 나고야 성터다.(혼슈지방의 나고야와 다르다) 이곳에 오니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 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쌓은 성이다. 한때 검은 야욕을 꿈꾸며 화려한 모습으로 그 위용을 자랑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저 폐허가 된 성터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도착해서 나고야성 박물관부터 들렸다. 일본 열도와 조선 반도의 교류사 및 한일 문화 교류라는 설립목적과 전시테마에 맞게 조선과 관련된 것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을 둘러본 후 히젠 나고야 성터에 올랐다. 이곳 천수각 터에는 현해탄과 백제 무령왕이 태어났다는 가카라시마가 보인다.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 내가 조금만 더 말랐다면(?) 가카라시마 까지 날아갔거나 현해탄에 퐁당 빠져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다음번에 이곳에 들른다면 현해탄을 건너오는 연락선을 타고 오는것도 또 다른 재미일 것같다. 히젠 나고야성의 강한 바람에 등 떠밀리듯 하산한 뒤 단체사진 한 컷 찍고 숙소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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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차
이마리 도자기 마을 - 아리타(도산신사, 이삼평비, 이즈미야마 자석장, 고려신사, 이삼평 묘소, 덴구다니 가마터, 백파선비, 규슈도자 문화관)
이마리 도자기 마을
어제의 빡빡한 일정으로 이마리 도자기 마을은 이틀째 아침 일찍 출발했다. 이 마을은 나베시마 가마가 있던 곳으로 폐번치현이 된 이후에도 아직 30여개의 가마가 남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산을 뒤로 두고 작게 형성된 마을이 꼭 동화속에 나오는 마을 같다. 마을입구며 다리며 심지어 화장실 까지 도자기로 장식되어 있다.
이른 아침이라 마을이 조용하다. 작은 길을 따라 오르니 어디서 작고 귀여운 종소리가 들린다. 저절로 울리는 종이다. 뒤에는 물따라 흐르는 이름 모를 통나무가 물이 다 차면 내려갔다 올라갔다는 반복하는데 운치 있다.
부지런한 주인장이 운영하는 가게에 들러 어여쁜 도자기들을 보니 눈이 호강한다. 한국의 도자기와는 또 다른 멋이 있다. 아기자기한 것에서부터 아주 큼지막한 장식물까지 답사객의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여기저기서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어여쁜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그 몸값이 너무 비싸 눈에만 담아 두고 온 것이 내내 아쉽다. 저 멀리 도공무연탑이 보인다. 가까이 가서 책에 나온 그대로 사진을 찍고 이곳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도자기를 만들고 이름 없이 사라져 갔던 그들에게 편안한 안식이 있기를 조용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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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마을을 뒤로 하고 아리타로 가는 길목에 잠시 차를 상생교에 세워두었다.이곳은 아리타의 도자기가 유럽으로 수출되던 곳이기에 이국적인 분위기가 있다. 초입에는 네덜란드 상인의 주문으로 아리타에서 도자기로 만들었다는 술독을 타고 있는 인물상의 복제품이 보인다. 날씨 좋은 날에 그 옛날 우리 도공들이 만든 도자기를 일본에서 수출하고 있었다고 상상을 하니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다. 지금의 일본 도자기는 조선의 도공이 만들어 놓은 것이나 다름없는데, 우리는 그동안 무얼 했단 말인가?
아리타 (이즈미야마 자석장, 석장신사(고려신사), 이삼평비, 덴구다니 가마터, 도산신사, 백파선비, 규슈도자 문화관)
아쉬움과 뒤로하고 향한 곳은 일본자기의 고장 아리타이다. 쿠로카미산(흑발산)이라는 산속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마을이며 자기의 시조로 추앙받고 있는 이삼평이 조선에서 끌려온 뒤 이곳에서 자기를 생산했다. 첫 행선지는 이즈미야먀의 자석장이다. 차에서 내리니 선인 도공의 비가 보인다. 이 비는 아리타 자기의 발전을 위해 수고한 도공 선조들을 기리며 아리타야키 창업 350년을 맞아 설치되었다고 한다. 바로 옆이 자석장인데, 책에서 사진으로 본 것은 작아보였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크다. 이삼평이 이곳에서 백토를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을지 알만하다.
자석장 바로 옆에는 석장신사(고려 신사라고도 부른다)가 있다. 자석장이 발견된 후 도공과 광산 석공이 세운 마을 신사이다. 고려신 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돌과 고려견이 있다. 이곳에는 이삼평의 조각상이 있는데 엄청 잘생긴 조각상 이다.
신사를 뒤로 하고 이삼평 묘소로 향한다. 가마터에서 안쪽 깊숙한 공동묘지에 있다. 일본의 신사와 그 묘지문화가 익숙하지 않지만 이삼평의 묘소를 보고 있자니 외국에서 끌려온 사람에게 출신에 상관없이 그 능력을 존중하고 이런 후한 대접을 해 주는 일본의 모습에 적잖이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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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덴구다니 가마터다. 자석장과 마찬가지로 책에서 본 사진과는 많이 다르다. 실로 엄청난 규모이다. 그 규모만큼 엄청난 양의 자기를 생산했을 것이다. 꼭대기에 올라 바라보니 이곳에서 자기를 굽고 있을 도공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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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장소는 도산신사다. 이삼평의 묘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도산신사는 1658년에 세워졌으며 1971년 아리타 요업 300주년을 기념하여 도자기의 발전의 공로자인 이삼평을 도조로 추앙하여 신사에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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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상점을 구경한 뒤 향한 곳은 백파선 비가 있는 법은사다. 백파선은 이삼평의 아내로 96년간 도자기와 함께한 조선 사기장의 대모이다.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가 백파선을 모티브로 제작 되었다고 하니 문근영을 떠올리며 백은사로 향한다. 오호~그런데 법은사를 찾아가다 책의 오류도 찾게 되었는데 우리 답사단은 함께 온 출판사 직원분에게 새 책을 달라고 귀여운(?) 협박을 해본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부랴부랴 규슈 도자기 문화관으로 향했다. 폐관시간이 다 되어 약 30여 분간 제 3전시실의 유물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일본의 다양한 도자기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기에 일본 도자문화를 눈으로 알고 싶으면 꼭 방문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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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차
미즈키 수성-다자이후 텐만궁
미즈키 수성
새벽같이 일어나 뜨끈한 온천욕을 즐긴 뒤 호텔에서의 마지막 아침식사를 먹었다. 답사의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온천 한 방울, 밥알 한 알에도 아쉽기만 하다. 짐을 챙겨 로비에서 차를 기다리는 동안 이제야 친해진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흐린 날씨가 답사의 마지막 날을 아쉬워하는 내 마음 같다.
답사의 마지막 장소는 다자이후 미즈키 수성과 덴만궁이다. 미즈키 수성은 백촌강 전투에서 패한 후 일본으로 망명한 백제인들이 신라와 당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성이다. 동문의 기초석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황량한 성터뿐이다. 성터 언덕에 올라 그 옛날 백제인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성을 쌓았을까 하는 마음속 의문은 지금의 성터를 바라보며 느껴지는 내 마음과 같지 않았을까? 여건이 된다면 수성과 연결된 오노성(대야성)을 방문하고 싶은데 일정에 포함되지 않아 다음번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친절하시지만 정해진 일정만 수행하는 운전기사분의 칼 같은 성정이 야속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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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후 덴만궁
이제답사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할 덴만궁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답사한 곳은 그리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기에 한산 했는데, 이곳은 일본 내에서도 유명한 관광지라 사람들이 북적댄다. 신사까지 올라가는 길목에는 관광 명소답게 먹을거리, 살거리들이 나의 눈과 입을 붙잡는다. 한국 유학생이 파는 카스테라부터 거대한(?)키티 인형까지 신사로 가는 내 발까지 붙잡는다. 꼼짝없이 붙들려 전투적으로(?) 기념품을 사수한다.
덴만궁 초입에는 만지면 복이 들어온다는 소 동상이 있다. 헤이안 시대의 유명한 학자인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학문의 신으로 모시는 신사인 만큼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이 녀석을 더듬대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새 내손은 나도 모르게 그녀석 한 켠에 살포시 올려져 있다.
신사의 본전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과거, 현재, 미래를 의미하는 세 개의 붉은 다리를 지나야 한다. 겨울이라 매화니 벚꽃이니 꽃구경은 할 수 없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경치라 카메라 셔터 누르기에 바쁘다. 본전에 다다르니 마침 의식을 행하는 모습과(1~2만엔 정도를 내면 본전 안에 들어가 의식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흰색 상의와 붉은색 하의를 입은 무녀들이 보인다. 애니메이션이나 일본 드라마에서나 보던 것을 실제 보니 신기하기만 하다.
본전 뒤편 식당에서 일본에서의 마지막 점심을 먹었다. 점심 도시락에는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야끼모치(찹쌀떡)가 있었는데 달달하며 쫄깃한 것이 아주 맛나다.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에 거대한 연리목과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걸어놓은 붉은색의 쪽지들과 표주박이 커튼처럼 걸려있다. 모두들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내려가는 길목에서도 여전히 내 눈은 기념품 가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키티 인형, 작은 도자기잔, 카스테라, 복고양이 그리고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한 숯 도마와 세라믹 칼까지 사든 내 두 손은 아직도 모자라 자나~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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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서 2박3일간의 ‘쟁이와 함께하는 겁나 재미난 답사’가 끝났다. 이제야 겨우 안면을 트고 사람들과 친해졌는데 벌써 이별이라니 정말 아쉽다. 수능을 막 끝낸 고등학생부터 퇴임 후 고미술과 함께 제2의 인생을 즐기고 계시는 전직 교장선생님 그리고 대학생, 직장인들까지 모두들 좋은 사람들만 있어 더욱 재미진 답사가 되었다. 특히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그저그런 생활을 하고 있던 직딩인 나에게 일 년의 마지막 자락을 지나고 있는 즈음에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아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다.
이런 좋은 기회를 주신 창비출판사와 일본 관광청에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며, 우리 역사를 역사책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생활에 끌어내 주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유홍준 교수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덧붙여 그 옛날 타국에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겨주신 선조들에게도 우리의 문화적 자부심을 갖게 해주신데 대한 존경의 마음과 진작 우리는 그 문화를 지켜내지 못한 죄송스런 마음도 함께 전해드립니다.
덴만궁에서 봤던 중학생들이 내 나이쯤 되면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조금 더 긍정적인 발전을 이루어 더욱 활발한 교류와 유대가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가지며 쟁냥의 답사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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