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스터리츠 감상
cozmic 2024/12/1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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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스터리츠
- W. G. 제발트
- 10,800원 (10%↓600)
- 2009-03-20
- : 4,135
“하지만 기억, 당연히 기억은 육체와 별개로 존재하지.”
윌리엄 포크너, 『야생종려나무』 中
기억은, 기억을 되짚는 행위 속에서 새롭게 탄생한다. 의식이라는 광야에 펼쳐진 수많은 기억들, 물론 절대다수는 잊혀진 기억들이다. 사람은 과거를 잊으면서 살아간다. <아우스터리츠>는 망각되는 과거를 텍스트 속에 붙잡으려는 노력이다. 화자는 한명, 이름 없는 주인공이지만 독자는 실질적 화자를 아우스터리츠로 인식한다. 이 이중서술을 통해 지나간 순간을 되찾으려는 자와, 새로운 순간을 창조하는 자, 두 인물의 대비가 드러난다. 기억은 노스탤지어적 관념이다. 기억, 즉 과거에 대한 상념에 빠질수록 흘러간 시간들에 대한 기쁨보다는 멜랑콜리가 더 많이 포착된다. 아우스터리츠는 무의미하게 흘러간 순간들을, 허무적 관점이 아니라 모두 아주 중요하고 소중한 편린들로서 간직하고 찾아나선다. 그러나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버린 과거의 윤곽은 현재에서 바라볼 떄 흐릿하다. 부모와 자신에 대한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 아우스터리츠로서는 어떤 특정 공간, 시간, 관념들을 떠올릴때 불안해진다. 진짜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단지 그림자일 뿐, 진실에 다가가지 못한다. 자기인식이 불가능한 존재,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고자 떠나는 모험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허공 속에 떠도는 불확실한 이미지들의 연속, 그것이 바로 아우스터리츠가 느끼는 사실이자 기억이다. 옛 시대의 아름다운 건물들은 흉물스러운, 새로운 시대의 건축에 의해서 파괴되고 뒤덮인다. 개개인을 지배하는 시대의 흐름에서 절규를 내질러봐도 나오는 것은 단지 소리없는 비명 뿐이다.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는 것을 겪는 것은 아우스터리츠만이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독자도 경험할 것이다. 건축과 건물들은 작품의 하나의 모티프로서, 소설 전체가 회백색의 건축물인듯한 느낌을 준다. 제발트가 건설한 짧지만 압도적인, 두 사람의 구술과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아우스터리츠>는 독자에게 잃어버린 과거와, 동시에 현대 문학에 보내는 하나의 레퀴엠으로써 기억 속에 자리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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