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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소설은 음악을 듣는 장면을 자주 묘사합니다. 제르포가 즐겨듣는 웨스트코스트 블루스가 주를 이루는데, 궁금하여 유투브로 검색하며 음악을 틀어놓고 읽었더니 음악의 분위기와 책의 분위기가 묘하게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듣는 음악이 분위기를 주도했을 수도 있겠네요). 제목을 웨스트코스트 블루스로 지은 이유가 주인공이 즐겨 듣는 음악이라서라기보다는 전반적인 분위기를 음악적 느낌으로 풀어 보려고 한 게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이 범죄 소설은 평범한 중년이 어느 날 우연히 누군가를 구해주었고 그게 빌미가 되어 추적자 둘로부터 쫓기게 되면서 겪는 상황과 역경을 다루고 있습니다. 도입부에서 제르포가 알론소를 죽이고 그의 개도 죽였다며 가볍게 툭 던지듯 시작하지만, 전혀 가볍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둘 사이에 연결점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제르포가 추적자들을 피해 다니며 그들을 물리치는 과정과 알론소 마저 응징하기까지 그 이유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왜 알론소가 제르포를 죽이려고 암살자를 보냈는가를 생각해보며 제르포가 마주한 상황과 그의 내면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1977년에 출판된 이 소설은 1970년대의 프랑스의 시대적 상황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급진적 노동운동과 파업, 자동차, 영화, TV, 상품 브랜드 등 그때의 다양한 모습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옮긴이도 신경 썼던 부분이라고 합니다) 당시 작가가 묘사한 최근의 모습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은 과거로 불리지만 그 묘사의 전달 만큼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때로는 과거의 일이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기도 한다.’라는 소설의 첫 문장을 다시 찾아보게 됩니다.
웨스트코스트 블루스는 가볍게 읽고 덮어두기에는 아까운 소설입니다. 옮긴이가 B급 범죄소설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인물이라고 말하듯 문장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문장을 가지고 노는 듯한 구성과 스피디한 전개가 특징입니다. 느릿느릿 전개되는 듯하다가도 훅 치고 들어오는 다음 강력한 문장이 읽은 이의 마음을 금세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습니다. 200페이지의 짧은 구성임에도 간결한 문체로 스피디하게 전개하고 있어 마지막 장을 덮을 때에는 500페이지는 읽은 듯한 배부름이 느껴집니다.
소설의 첫 두 페이지와 마지막의 두 페이지는 메르세데스를 운전하는 주인공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데 다소 철학적인 문장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 두 부분만 보아도 ‘범죄 문학의 예술적 대가’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