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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무라 교타로
책 후미에 옮긴이 이연승 님의 말을 인용하자면, 일본의 국민 추리 소설가로 1930년생 올해 90세라는 나이에도 지금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며 무려 600여편 2억 부가 발행되었다고 한다. 주로 철도 등의 교통수단을 활용한 트릭 및 알리바이를 활용한 ‘트래블 미스터리’가 그의 고유 명사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살인의 쌍곡선’은 초기에 쓴 크래식 본격 미스터리의 정수로 일컬어지는 작품으로 나시무라 교타로 스스로 베스트 5로 꼽는 작품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많은 후배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그중에서도 ‘십각관의 살인’을 쓴 아야츠지 유키가 대표적이다.
(그렇게 유명한 작품이 왜 이제야 발표된 것일까)
살인의 쌍곡선(한스미디어)
니사무라 교타로는 책을 시작하며 독자 여러분께 말한다. “이 추리소설의 메인 트릭은 쌍둥이를 활용한 것입니다.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 로널드 녹스가 제시한 ‘탐정소설 십계’를 보면 그 열 번째로 ‘쌍둥이를 활용한 역할 바꾸기 트릭은 사전에 독자에게 알려야 공정하다’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중략) 자 이로써 출발점이 같아졌습니다. 그럼 추리의 여정을 시작해 주십시오”
(명백한 독자에 대한 작가의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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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 줄거리
교코와 모리구치 커플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일반 회사원인 둘은 전철을 타고 출퇴근하며 자주 마주치다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설 연휴 계획을 생각하고 있을 때쯤 한 통의 우편물을 받게 된다. 도후쿠 지역의 호텔에서 개업 3주년 기념으로 도쿄에 거주하는 몇 분을 무료로 초청하는 이벤트에 당첨된 것이다. 해발이 높고 적설량이 많아 스키를 타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안내장에는 모든 비용을 호텔에서 부담한다고 적혀 있고 왕복 열차표까지 동봉되어 있었다.
도착한 역에서도 설상차로 2시간을 들어간 외진 곳에 있는 호텔은 그야말로 눈의 세계였다. 교코와 모리구치 커플 외에도 4명의 초대 손님이 더 있었는데 모두 20대 중반의 나이였다. 교코(여, 회사원, 타자수), 모리구치(회사원), 아야코(여, 마사지전문점 종업원), 야베(철강회사), 이가라시(범죄학 대학원생), 다지마(택시 운전기사). 젊은 호텔 주인장은 초대된 6명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는 사람에게 상금이 있다는 묘한 말을 남긴다. 첫날 저녁 시간 모두 모인 둥근 식탁의 중앙에 등산용 칼이 강하게 꽂혀있는 것이 발견되는데...이들의 앞날은 어떤 운명이 있을 것인가.
비슷한 시각 도쿄에서는 연쇄 강도 사건이 발생한다.
주점 주인이 가게 문을 닫으려고 할 때 깃을 세운 갈색 반코트 차림에 손에는 흰 장갑을 낀 젊은 남자가 술을 사기 위해 들어왔다. 포켓 사이즈의 위스키를 고르더니 손에서 권총을 꺼내 현금을 달라고 위협했다. 다음 날 가구점과 슈퍼마켓에서도 동일한 복장의 남자가 연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고, 가게 주인들의 협조로 비교적 쉽게 몽타주가 만들어졌다.
173cm 정도의 키에 갈색 반코트를 입고 흰 장갑을 끼고 권총으로 위협하는 범인은 똑같은 복장으로 시내를 활보하다 경찰에 검거된다. 사건이 일단락된 것으로 생각한 ‘미야지’ 형사는 경찰서로 돌아와 취조 하던 중 다른 곳에서 같은 복장의 또 다른 범인이 잡혔음을 알고 의아해한다. 잠시 후 경찰서에 모인 두 명의 범인은 똑같은 복장에 똑같은 얼굴을 한 쌍둥이임이 밝혀진다. 문제는 누가 범행을 했는지 특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목격자들은 누구를 특정할 수도 없고, 지문도 없다. 쌍둥이의 알리바이조차 모호하지만, 모호함이 더 혼란을 가중할 뿐이다.
전혀 상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공간과 앞으로 벌어질 본격적인 사건은 쌍곡선처럼 접점이 없어 보이지만 결국은 대칭된다는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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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살인의 쌍곡선 책은 일본 추리소설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는 니시무라 교타로의 작품으로 크로즈드 서클, 쌍둥이, 미싱 링크, 알리바이 공작 등 본격 요소를 골고루 담은 본격 미스터리의 고전이자 교과서라고 내세우고 있습니다. 작가는 쌍둥이 트릭을 메인으로 사용한다고 공언하며 외딴 설원의 호텔에 발생하는 살인사건과 도쿄에서 발생하는 쌍둥이 형제의 강도 사건을 짧고 임팩트 있게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총 19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9단계의 구성은 꽤 괜찮아 보입니다.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두 사건을 교차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깔끔하면서도 정교하게 짜놓은 추리와 구조이라는 느낌입니다. 각 단계를 지날 때마다 사건이 점점 진행되고, 일정 단계를 지나서부터는 단서가 점점 투척이 되고 있습니다. 내가 몇 단계에서 추리를 맞췄는가를 알아보는 재미도 있겠습니다. 아마도 작가도 그런 비슷한 의도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비교적 빠른 단계에서 추리를 맞췄습니다. 노트에 정리하며 책 읽는 중간 자주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읽는 것을 멈추고 정리가 될 때까지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앞부분으로 돌아가서 다시 읽기도 수도 없이 반복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꼼꼼한 정리의 힘 덕분인지 범인을 특정하고 범행방법을 정리해 보았으며 범행동기도 추리해 내는 성과를 얻었습니다. 승리의 기쁨은 잠시 누렸지만 뭔가 빠진 느낌입니다.
의문이 듭니다. 본격 추리소설은 작가와 독자의 대결이라고도 하지만, 맞췄을 때의 짜릿함이 속았을 때의 감동보다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고민도 됩니다. 앞으로 추리소설을 읽을 때 능동적으로 추리할 것인지, 수동적으로 작가의 글에 따라갈 것인지 말입니다. 행복한 고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