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님의 서재
  • 주인공은 선을 넘는다
  • 오후
  • 14,850원 (10%820)
  • 2020-02-27
  • : 413

 

 

저자는 아나키스트를 자처하고 있다.

농담이 아니란다. 좀 알아보고 책을 시작하려고 검색을 해보았더니, 첫 문장에 무정부주의자라는 말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저자는 아나키스트와 무정부주의자가 다른 개념이라고 말하고 있다. 둘 다 지도자가 없다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것은 맞지만,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가 아니라 지배에 대한 저항, 권위에 대한 저항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덧붙여서 아나키스트의 시각에서 보자면 지구상의 모든 국가 심지어 공산국가마저도 우파에 해당하고 진정한 좌파는 아나키스트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아나키즘을 들고나온 이유는 우리 사회가 아나키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배제하더라도, 서로가 비난만 하고 누구도 바꾸려고 하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사회는 더욱 기존 체계를 견고하게 다지며 개인을 고립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아나키즘을 소개하려고 하는 책은 아니다.

11편의 영화를 통해 작가의 시각으로 캐릭터를 재해석하고 있다. 영화를 소재로 삼은 이유는 우리가 공유할 만한 삶은 예술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영화를 통해 삶과 태도의 문제인 아나키즘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몇 장의 프롤로그 내용이다.

저자의 의도를 이해하고 이 책을 읽어 나가야 넓은 시야가 보이기 때문에 프롤로그를 정리해 보았다. 이제 본격적인 영화 상영이다. 아니키즘을 알아보며 주인공과 함께 선을 넘어보자.

 

 

 

 

 

 

1. 주인공은 깨어 있다. 제럴드의 게임(2017)

갱년기에 접어든 부부가 숲속 깊은 별장으로 여행을 떠났다. 특별한 날을 위해 남편은 비아그라를 먹었고, 준비한 수갑 2개로 섹시한 속옷을 입은 아내의 양손을 침대 양쪽 기둥에 묶었다. 놀라지 마시라 상황극이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경련을 일으키며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아내는 깜짝 놀라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스티븐 킹의 소설이 원작으로 주인공이 어떻게 그 상황을 빠져나가는가를 보여주는 영화다.

저자는 생각이라는 단어를 꺼집어 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의 대부분은 무의식 속에서 행해진다고 말한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났을 때라야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도 주인공은 정신을 잃은 후에야 생존을 위한 생각을 해야만 하듯이.

 

그러면서 여행을 하면 저절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과 감정이 생긴다거나, 삶이 생존이었던 원시인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항상 위험을 생각했듯이,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아니키즘은 의식이 깨어 있는 것부터 시작이라는 말인가? 아니면 의식의 깨임이 선을 넘기 위한 시작점인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4. 역할 놀이를 끝낼 때. 해적 : 바다로간 산적(2014)

손예진, 강남길 주연의 영화. 막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명나라로부터 받아온 국새를 배를 공격한 고래가 삼켜버렸다. 관군의 협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고래를 쫓는 해적 두목 손예진과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산속으로 들어가 산적이 된 강남길이 그려내는 뒤죽박죽 영화로 기억하고 있다.

 

저자는 해적이라는 영화가 전통적인 사극에서 무게 있게 다루는 이성계나 정도전을 바라보지 않고, 고려니 조선이니 아무 의미 없는 캐릭터들의 냉소적 시각이 아나키스트적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우리가 배우고 있는 역사교육도 왕의 역사이거나 지나친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교육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아나키즘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도 제시한다. 명나라의 이탁오라는 유학자로 지방관리를 하며 평범한 삶을 살다가 54세의 나이로 관직을 그만두고 뜬금없이 자신이 이제까지 개같이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성인의 가르침을 읽었으나 성인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공자를 존경했으나 왜 공자를 존경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알지 못했다. 난쟁이가 광대놀음을 구경하다가 사람이 잘한다고 소리치면 따라서 잘한다고 소리 지르는 격이었다.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정말로 한 마리의 개에 불과했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서 짖은 것이다.”

유학자들이 생각도 없이 공자 왈 맹자 왈을 말하기만 하는 것에 비판하며 유학에서 금기시했던 모든 것에 대해 반문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학에서 반대하는 여성을 가르치고 누구에게나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주었고, 유교 외에도 불교와 이슬람교의 경전도 선입견 없이 받아 들였다고 한다.

 

저자는 말한다. ‘역사가 할 일은 우리 시대에 필요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이탁오 같은 이의 삶과 철학은 현대 시민에게 큰 의미가 있다.’

 

저자가 말하는 아나키즘을 조금 알듯도 하다.

 

 

 

 

 

 

아나키즘과 저자의 의도를 알고부터는 술술 읽힌다. 어떤 영화의 캐릭터로 어떤 새로운 관점을 지적할지 어떤 제안을 할지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그중에서 선거와 관련된 부부분이 흥미를 당겼다.

 

 

9. 선거가 끝나면 노예가 된다. 마나나의 가출(2017)

50대 여성인 마나나는 남편, 친정부모, 아들과 딸, 딸의 남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다.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 중인 그녀는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가정을 돌봐야 한다. 손이 많이 간다. 그녀는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쉽지 않다. 조용히 살던 어느 날 짐을 싸고 집을 나가겠다고 선언한다.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가족이 이런저런 질문과 위로를 하지만, 그저 자신만의 공간에서 조용히 좀 있고 싶을 뿐이다. 작은 공간에서 혼자 살아가는 마나나는 달라진 것이 없다. 학교에 나가고 가족의 대소사를 챙기고 의사소통을 한다. 아내와 엄마와 딸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저 자신만의 공간에서 살 뿐이다. 놀라운 것은 자신의 집을 나온 후부터 가족은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 시작했고, 자신도 가족의 일에 있는 그대로의 관점에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소극적인 사람들의 의견을 어떤 식으로 반영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자고 한다.

 

여러 재미있는 의견을 개진하다가 ‘선거는 민주적인가?’라는 물음을 한다.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목소리가 큰 사람이나 금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정치를 하고 있다고 한다. 대다수의 소극적인 사람들은 시끄러운 정치에 입을 닫아 버린다. 그럴수록 목소리 큰 사람들의 울림은 더욱 커진다. 즉 상류층이 선거와 정치를 독점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과연 소극적인 사람들 소수의견을 반영하는 정치인이 될까. 4년 5년 동안 다음 선거에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나 금전적 이익을 취하려고 하지는 않을까.

 

저자는 작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선거를 투표가 아닌 제비뽑기를 제안한다. (제비뽑기라니..) 교과서에서 배우는 민주주의의 시초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광장에서 모여 논의를 하고 투표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의 700여 공직 중 600여 자리가 제비뽑기로 선발되었다고 한다. 임기는 1년, 한번 공직을 맡은 사람은 다시 공직에 오를 수 없다. 대다수의 그리스 남성은 죽을 때까지 한 번씩은 관직을 맡았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도 추첨제를 한다면 어떨까로 확장한다. 지원자를 토대로 추첨을 하다보면 다양한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는 모집단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여러 문제와 절차들은 차차 개선하면 된단다. 뽑힌 이들이 제대로 일을 할까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기도 하고 타당해 보이기도 하다는 것에 놀랍다.

 

 

 

 

 

 

아나키스트를 자처하는 저자의 눈으로 차별, 페미니즘, 역사, 자본주의, 종교, 선거와 정치, 법, 죽음 등 독특한 시각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 생각했던 무정부주의나 과격한 행동으로 또는 사상으로 현재의 체재를 거부하거나 저항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현재의 시스템을 역사와 상황 바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보다 나은 세상과 사회를 위해서 때로는 합리적인 대안으로, 때로는 선을 넘는 제안으로, 때로는 실현 불가능한 말을 하고 있다.

 

아나키즘이라는 것도 결국 좋은 세상을 바라는 생각이라는 것을 느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아나키즘이라 머릿속에 그려질 듯 말 듯 하기도 하고, 느낀 점을 표현하는데도 어색하긴 하다. 하지만 책의 서두에 저자가‘ 나는 아나키스트다. 농담이 아니다’라고 시작했듯이. 책을 덮으며 머릿속에 돼 뇌여 본다. ‘아나키스트가 흥미롭다. 매력적이라 빠져들 것 같다. 농담이 아니다.’

 

나도 일상의 무의식에 생각의 눈을 뜨고 견고해져 가는 불합리한 기득권에 대항해 보고 싶다. 주인공들처럼 선을 넘어보고 싶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