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님의 서재
  • 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 이금이
  • 14,400원 (10%800)
  • 2020-03-25
  • : 9,541

 

알로하 나의 엄마들, 도입부 줄거리.

 

1917년 조선, 나라도 망했고, 개인도 먹고살기조차 어려운 시절. 더욱이 여자들에게는 희망은 사치였으랴. 먼 이국땅에서라도 그것을 얻어보고자 18살의 버들, 홍주, 송화는 신랑 사진 하나만 보고 포와(하와이)로 시집을 가게 된다. 부산에서 떨어진 김해의 어느 시골 어진말에서 살던 이들은 조선에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지, 좁은 어진말에서는 희망이 없는지, 기울어진 지붕 아래에서 희망이 사치인지, 암울한 현실에서 돌파구를 찾고자 각자의 사연을 훌훌 털고 머나먼 이국땅으로 새로운 세상에 부풀어 올랐다.

 

‘버들’은 마을에서 서당을 하는 아버지의 배려로 글공부를 했고 어엿한 양반댁 장녀였다. 그러나 의병으로 나선 아버지와 큰 오빠가 왜놈에게 죽은 후 가세가 무너져 어머니와 삭 바느질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신세다. 포와로 가면 쓰러져가는 지붕을 벗어나고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푼다.

 

‘홍주’는 장사로 큰 부자가 된 집안의 딸이다. 양반 명문가에 무리하게 시집을 보내려다 건강이 좋지 않은 서방을 만나 한 달 만에 과부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버들이 포와로 간다는 말에 평생 과부로 늙어 죽지 않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함께 하기로 한다. 좁은 어진말을 벗어나 좀 더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

 

‘송화’는 무당인 할머니가 조선 땅에서 손녀가 무당이나 기생을 하느니 머나먼 나라에 가서 손가락질이나 받지 않고 지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포와로 보내려 했다. 송화의 어머니도 미친년 소리를 들어가며 동네에서 돌팔매질 받아가며 지내다 물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 손녀만은 조선에서 무당이라는 신분 속에서 벗어나 신세계에서 평범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할머니의 희망이었다.

 

세 여자는 사진결혼을 통해 하와이로 가고 있다. 사진결혼이란 구한말 먹고 살기 어려워 미국으로 사탕수수농장에 이민 간 1세대들이 대부분 남자 들이었는데, 독신이 길어지다 보니 도박이나 술에 빠져 일에 지장을 주자, 사진을 찍어 중매쟁이에게 보내 결혼하는 걸 미국 정부가 허락한 것이다. 100년 전 우리의 아픈 역사일까, 새로운 희망을 찾아 떠난 이들일까. 꿈을 찾았을까, 허황 된 꿈이었을까. 새로운 신분을 얻었을까, 새로울 게 없는 세상이었을까. 무엇보다 세 여자 앞에 마주하게 될 세 남자들은 어떤 이들이며, 어떤 운명과 마주하게 될 것인가.

 

 

 

알로하 나의 엄마들 후기

 

그네들의 삶을 엿보며 여정을 따라갔습니다.

일본의 무력에 무릎 꿇은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조선의 사회 구조에 더 깊이 엎드려 살아가야 하는 여성들은 더 암울했을 겁니다. 극 중 어진말에서 가세가 무너진 양반가의 딸로, 졸부로 양반이 되었지만 한 달 만에 과부가 되어 돌아온 딸로, 천 하디 천한 무당의 딸로 살아가는 세 여자에게 왜놈인들 임금인들 어떤 의미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저 살아야 했기에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야 했기에 물려받은 신분을 떨쳐야 했기에 무엇이든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선택은 사진결혼이고 하와이로의 시집이 희망이었을 것입니다.

 

두 달 만에 도착한 하와이는 이들에게 희망의 땅도 새로운 세상도 아니었습니다.

먼저 떠나온 사탕수수 농부들의 삶에 필요한 여자였을 뿐입니다.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아이 낳아주는.. 조선에서의 삶보다 더 고된 하루의 연속이었습니다. 백인의 재력을 앞세운 인종 차별은 조선의 신분 체계와 다를 게 없기도 했습니다.

 

달라진 것도 있습니다.

조선인끼리는 신분은 높낮이가 없었고 심지어 남자들과 겸상을 했고 남편과는 별로도 부업으로 일도 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도 남편과 같이 갈 수 있었고 여성들끼리의 모임도 결성하기도 했습니다. 제일 좋은 점은 자신들의 자녀들은 남자든 여자든 동등하게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딸들로 하와이에 와서 자신들의 딸은 다른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살 기회가 있었던 것입니다. 희망은 한 세대를 거쳐서 서서히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들을 키우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하와이 내에서도 격동의 조선과 같이 이념과 노선의 경계가 있었고 그것이 여성들을 갈라놓기도 했습니다. 남편들이 쓰러지면 여자들이 일해야 했고 어떤 이는 조선의 독립운동을 위해 하와이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생계가 남자의 손이 아닌 여자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생각하던 희망의 땅은 아니더라도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백인들의 집 청소를 하거나, 바느질을 하고, 세탁소를 하기도 하면서 고생한 만큼 돈을 벌수 있는 기회는 여성들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엄마들은 자신들을 희생하며 가족을 돌보고 자녀들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삶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조선의 딸들은 하와이의 엄마가 되었고 하와이의 딸들에게 희망을 넘겨주었습니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가슴 아픈 역사 속에서 꿋꿋이 살아가야 했던 예전 엄마들의 이야기이지만, 현재의 우리의 엄마들도 여전히 희망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자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습니다.

 

 

 

"창비 사전서평단으로 책을 미리 읽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